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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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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쿠리티바시 곳곳에 있는 원통형의 등대는 주민을 위한 세심한 행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브라질 남부 쿠리티바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도시 한가운데 ‘등대’가 위 치한 이상한 풍경을 보곤 놀라게 된다. 한두개도 아니다. 원통형의 이 등 대는 도시 곳곳에 32개나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쿠리티바시에선 등대를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등대는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아니다. ‘지혜의 등대’로 이름 붙은 이 등대는 도시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일 뿐이다. 하지만 쿠 리티바시 시민들은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설치된 이 소형 시립도서관을 ‘ 등대’라고 부르는 데 인색하지 않다. 모양이 등대를 닮았기 때문이 아니 다.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를 자랑하는 브라질 빈민들에게 이 도서관 은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한 행정의 표본으로 자리잡아
실제로 ‘지혜의 등대’는 저소득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시 외곽 ‘바이호 노보’ 구역에 위치한 ‘알시올리 필료 지혜의 등대’에서 근무하는 사서 프리실라 페레이라는 “현재 1주일에 6백권의 도서가 대출 되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또 “도서관의 설치로 길에서 배회하던 청소 년들이 특히 크게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지혜의 등대’는 원통형의 탑과 2층 건물로 이뤄져 있다. 건물 1층에는 도서가 배열돼 있고, 2층에는 학습을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마련돼 있다. 항상 시립초등학교 옆에 건설돼 있고, 두개의 문 중에서 하나는 학 교와 연결돼 있어 학생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하나의 출입 구는 지역 빈민들의 출입을 위해 길거리로 향해 있다.
남미 최대의 상업도시 상파울루에서 남쪽으로 4백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1백40만명의 쿠리티바시는 이미 외국에 잘 알려진 곳이다. 쾌적하고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환경도시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셀리아 호소우메 시 공보처장은 “독일·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쿠리티바시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 다녀갔다”고 전한다. 여러 국제 기구 등을 통해 쿠리티바시가 모범 도시로 알려지면서 교통정책·녹지정 책·사회복지정책 등을 배우기 위해 각국의 지방자치 단체 정책입안자· 학술연구원, 심지어는 방송 취재단까지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쿠리티바의 전 시장이며 현 파라나주 지사인 자이메 레르네르는 “쿠리티 바의 도시계획 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가장 근간이 된 것은 ‘인간 중심의 행정’이었다”고 못박으면서 “이러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어떤 압 력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환경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강 조한다.
자이메 레르네르는 지난 70년대 시장에 임명되면서 환경과 서민을 중시한 도시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자연을 이용해 시내 곳곳에 녹지공간을 만들었고, 빈민층까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세웠다. 또 이후 대다수 서민들을 위한 교통정책, 저소득층을 위 한 생필품 할인판매 정책, 환경교육기관의 건설 등 쿠리티바시가 추진하 는 ‘시민을 위한 정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밤에는 경찰관 배치해 범죄감시 한다
하지만 이렇게 쿠리티바시가 세계적인 환경도시가 된 데 주민들의 참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주민들의 참여가 없다면 무용지 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민들을 이렇게 시정에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주민들을 생각하는 세심한 행정이며, ‘지혜의 등대’는 그중에서도 대표 적인 사례일 것이다.
낮 동안 지역주민들의 ‘지식 터득의 장’이 됐던 지혜의 등대는 밤 9시 가 넘으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시 경찰관이 배치돼 빈민가에서 서민 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치안의 등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쿠리 티바시 주민들은 등대의 보호 속에서 편안히 하루를 마감한다.
언뜻 보면 평범한 것 같지만, 모양과 기능, 그리고 그 명칭을 면면이 살 펴보면 기발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민을 위해 더 나은 정책을 구 상하는 매일매일의 고심이 없었다면 이 창조적 발상은 나올 수 없었을 것 이다. 그리고 이런 세심함이야말로 빈부격차의 나라 브라질의 한 도시를 세계적인 환경도시로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브라질 쿠리티바=김학유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