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궁궐 날적이’로 국학 대중화

“만약 대통령의 모든 언행이 날마다 기록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달마다 묶어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한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실패한 개혁은 안 됐을 겁니다. 공식적인 것에서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국민에게 다 드러 나는데요.”

묵향이며 한지 향이 그윽한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산하 일성록(日省錄) 색인작업실. 이경구(32·국사학과 박사과정)씨는 이 작업실의 막내 연구 원이다.

“일성록은 하루를 되돌아본다는 말뜻 그대로, 왕의 동정과 국정 처리 사 항이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학자로서도 비범했던 정조 대에서 부터 시작해 순종 때까지 이어졌던 제도이죠. 1백50년간의 기록이 5백년 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보다 그 폭이야 좁지만, 분량은 더 많습니다 . 내용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당대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고요 .”

이씨가 여섯명의 선배 연구원들과 일성록 색인 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조선후기 역사를 전공한 그에게 일성록은 자신의 실력을 가늠 해 보고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단다.

“조선 후기에는 실록과 일성록 외에 지금의 국무회의 기록이랄 수 있는 비변사 등록, 대통령 비서실 기록인 승정원 일기 등 많은 사료가 있어요. 실록은 이미 완역되었고 나머지 사료들도 부분적으로 번역되었지만 일성 록은 방대한 양과 한문으로 쓰여진 이유로 소수의 전문 학자들만 볼 수 있었죠. 저희들의 작업이 끝나면 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물론 대중들 에게도 유익한 역사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5년여의 시간을 이 작업에 바칠 계획이라는 그는 “공부하는 것도 바쁘고 또 생계 문제도 있고 해서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간을 만나며 제가 경험한 80년대를 반추할 수 있다는 것이 수확이라고나 할까요.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바로 그것이겠 지요.”

이씨는 젊은 역사학도답게 재밌는 제안도 내놓는다. “영상시대에 맞게 비디오 카메라로 대통령을 담아내는 ‘신 일성록’은 어떨까요?”

김상준/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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