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자연의 울림을 들어보세요”

현성기씨는 마흔두살의 신인가수다.

15년 전 그는 가수가 될 뻔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려던 8 2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결사대’란 트리오를 결성해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받고 음반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음반 발매 일주일 전 그에게 청 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사랑하던 누이동생이 살인강도에 의해 희 생됐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술만 마시던 그는 모든 일을 포기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그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돌아다니며 사람들 의 웃음과 눈물을 담는 비디오 촬영기사가 됐다. 86년에는 만화가게 사장 이 됐다. 그러다 우연히 시험을 보고 MBC 코미디 작가가 됐다. 1년 반 동 안 <청춘만만세>란 코미디 프로를 쓰다가 ‘못 웃겨서’ 쫓겨났다. 그냥 고향인 경기도 시흥으로 내려갔다. 농사를 짓고 산 지 10년, 그를 둘러싼 산과 들과 하늘이 애써 잊고 지냈던 음악을 마음 속에서 되살려 냈다.

“우리 동네에 소래산이 있어요. 나는 늘 그 산에 올라가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를 보며 그 굴곡을 따라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다 그는 득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논일을 하다 땀을 식히기 위해 나무 밑에 갔다가 매미소리를 들었어요. 얼마나 섬세하고 최선을 다하는 지…. 음악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어느 날 그의 논 한가운데 길이 나게 됐고 전 재산인 보상금 1억원을 털 어 <유어셀프>를 만들었다. “음악은 내 본능이라 떠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15년 만에 먼길을 돌아 다시 가수가 됐 다.

그의 노래를 우연히 들은 사람들이 다른 가수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세웠 고 사람들은 그를 마음에 담아두게 됐다. 무대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 람이 된다. 때로는 흥이 나서 마이크도 던져버린다. 온전히 자기 안으로 들어가 그 안의 모든 것을 토해낸다. 그가 부둥켜 안고 살아온 굴곡진 인 생은 그의 노래가 됐다. 윙윙 울어대는 블루스라고 하기엔 그의 노래는 너무 달관해 있고, 소박한 포크록이라고 하기엔 끈끈한 뭔가가 있다. 그 는 6월17~29일 대학로 충돌 소극장(02-764-5715)에서 자신의 무대를 갖는 다.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실종됐다가 여러 날이 지나 그가 돌아왔다. 산 에 들어가 산의 봉우리를 따라 기타를 연습하다 왔다고 했다.

“산 봉우리를 보며 그 하나하나의 울림을 가슴에 담고 자연의 흐름을 그 대로 베낍니다. 모든 산은 나에게 악보죠. 자연의 소리를 담아 노래하고 싶습니다.”

박민희 기자/ 한겨레 문화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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