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포르노에 도전한다

캐서린 맥키넌 지음·신은철 옮김, 개마고원 펴냄, 8천원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맥키넌(미시간대 법학과 교수)의 <포르 노에 도전한다>(Only words)는 포르노에 관한 매우 논쟁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의 성 평등권이,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인 정돼온 ‘표현의 자유’보다 더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할 헌법상의 권리라 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여성의 사회적, 성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포 르노라는 ‘표현행위’는 법적으로 규제되어야 마땅하다는 논리로 이어진 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성패권적 해석

1980년대 초 지은이와 같은 ‘관점’이 제기되기 전에는 두 가지의 대표 적 관점이 맞서 있었다. 하나는 윤리도덕적 잣대이다. 즉 포르노를 비롯 한 각종 외설표현물들이 “여성을 상품화시키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유해 하기 때문에” 사회윤리와 도덕의 수호 차원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오늘날 다수 문화권의 보수주의자들이 가진 전통적 시각이다. <즐거 운 사라>의 마광수씨,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장정일씨를 구속시킨 주된 논리는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포르노라 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인만큼 이를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밀로스 포 먼 감독의 영화 <래리 플린트>는 미국에서 이런 견해가 법적으로 관철되 는 20여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요지는 <허슬러>가 아무리 저질의 도 색잡지이고, 그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오로지 돈을 위해 포르노를 만드는 악덕 출판업자라 하더라도 그를 처벌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일부라도 표현의 자유를 양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잃게 되고 나아가 인간의 기본권은 근본적으로 위 협받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지은이는 성 평등권의 논리에 더해 여성의 성평등권 보장을 위해 포르노 에 대한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지은이에 따르면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 정신은 사회적 약 자의 보호에 있다. 그런데 성별에 기초한 불평등이 정착된 사회에서 약자 일 수밖에 없는 여성을 모욕하고, 학대하고, 나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암암리에 정당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포르노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보호받아야 할 어떤 가치도 사상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포르노를 규 제하는 것은 결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도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동유럽 사 회주의가 몰락하고 서구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선 뒤 가장 창 궐한 것은 포르노산업이었다. 오늘날 가난하고 직업없는 동유럽의 여성들 은 전세계 매춘굴과 포르노시장에 ‘팔려나가고 있다.’ 유고 내전에서 세르비아 군인들이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 여성을 집단 강간할 때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포르노를 보았으며, 포르노에 나오는 것을 여성에게 강요 했다. 이것이 단지 스스로 판단능력을 가진 성인 여성의 ‘선택’의 결과 일 뿐이라고 할 것인가.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는 것은 남성패권 적인 헌법해석에 불과하다. 포르노도 하나의 ‘표현’이라는 주장은 남성 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정당화시키는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현실화, 즉 법제화시키기 위해 미국 내의 진보적인 도시들을 골라 포르노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운동을 전개해, 1985년 인디애나폴리스시에서 처음으로 포르노 규제 조례를 통과 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지은이는 포르노의 범위를 다음 8가지로 제 시했다. 1. 여성이 성적 대상, 물건, 상품으로 비인간화되어 묘사되는 경 우 2. 여성이 모욕이나 고통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는 경우 3. 여성이 강간, 근친상간, 기타 성적 공격을 당하는 것을 즐기는 성적 대상 으로 묘사되는 경우 4. 여성이 결박당하거나 신체적으로 상해를 당한 상 태에서 성행위 대상으로 묘사되는 경우 5. 여성이 성적으로 종속되거나 노예화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 6. 음부, 유방, 둔부를 포함해서 여성 의 신체 일부가 부분화되어 그것이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경우 7. 여성이 물건이나 동물들에 의해 삽입되어 묘사되는 경우 8. 여성이 타락하거나 모욕을 받거나 상처를 입거나 고문당하는 시나리오 속에서 여성을 음탕하 고 열등하거나 피흘리고 멍들거나 상처를 입은 상태로 직접 묘사되는 경 우.

그러나 이 조례는 미 연방고등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제시된 포르 노의 범위가 모호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 였다.

지은이의 이 주장은 법원에서뿐 아니라 여성운동가를 포함한 미국의 진보 주의자들 사이에서 첨예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통해 흑인 인권신장 등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온 대다수 진보주의 자들에게 지은이의 주장은 자칫‘쇠뿔 꺾으려다 소를 잡는’ 논리적 함정 에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표현의 자유가 없이는 여성의 평등권 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진보진영의 보편적 입장이었던 것이다.


성표현의 한계 설정하는 데 의미있다

이처럼 지은이의 주장은 미국 내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로부터 지지 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책의 해설을 쓴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방과)에 따르면 1992년 캐나다 연방대법원이 “남녀평등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특정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 개되고 있다. 여성의 성평등권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길 이 열린 것이다. 과연 이런 법해석이 미국과 여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유명작가가 외설표현 문제로 법정구속되는 한편에서, 자신의 성기 를 정면에서 보여주는 여성 누드모델이 ‘해외진출 성공사례’로 미화되 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이 책의 논점은 그야말로 ‘물건너 나라의 배부른 논란’쯤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인간의 기 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남녀평등권을 신장시키고자 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예술적) 성표현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좀 더 이성적 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이 책은 유용한 시사점들을 제공할 것이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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