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여름영화! 할리우드의 유혹

(사진/<제5원소>)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이 되면 극장가에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행진이 시작 된다. 여름 시즌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들로서는 최고의 호황기이다 . 80년대 이후 할리우드는 1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익(미국내 수익)을 올리 는 높은 제작비의 블록버스터영화를 만드는 전략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전략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블록버스터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몇년 전의 3천만~4천만달러 정도에서 7천만달러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멜 깁슨 등 일급 스타를 잡기 위해 1천만~2천만달러의 출연 료를 제시하는 것도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랑과 영혼>의 기록 누가 깰 건가

할리우드의 제작비 경쟁은 시장을 넓히는 효과도 가져왔다. 작년 여름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중에서 <미션 임파서블> <트위스터> <더 록> <인디펜 던스 데이>가 모두 1억달러 고지를 훌쩍 뛰어넘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영화시장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는 도박이다. 할리우드가 추산하는 영화의 흥행성공률은 약 25%. 4편을 만들면 한편 정 도만 흥행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1억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리는 영화는 대략 1년에 10편 내외다. 그럼에도 할리우드가 이 도박에 뛰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영화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 이 그것이다. 흥행의 보증수표 짐 캐리의 <케이블 가이>는 비평과 흥행 모두 참담한 성적을 올렸는가 하면, 소문없이 개봉한 저예산의 공포영화 <스크림>은 1억달러 고지를 거뜬히 뛰어넘었다.

올해 미국에서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줄잡아 10여편. 국내에서도 < 잃어버린 세계> ^<배트맨과 로빈> <멘 인 블랙> ^<헤라클레스> <스피드2< < 콘 에어> <에어포스 원> <라이어 라이어> <제5원소> 등 10여편이 개봉 예 정이다. 미국에서는 여름영화인 멜 깁슨,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음모이 론>과 조디 포스터의 <접촉>은 국내에서는 가을 개봉으로 넘어갔다.

지난 6월14일 가장 먼저 개봉한 <잃어버린 세계:쥬라기 공원>은 국내관객 동원 최고기록인 <사랑과 영혼>의 2백80만 돌파를 목표로 돌진중이다. 미 국에서는 10일만에 1억4천만달러를 벌어들여 신기록을 세웠지만 둘째주 수익률이 60% 이상 뚝 떨어지며 <쥬라기 공원>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편에서 4년이 흐른 뒤 공룡생산공장이 있는 이슬라 소르나섬을 찾아간 말콤의 모험이 펼쳐진다. 공룡을 잡아 동물원을 만들 려는 공룡사냥꾼들은 악전고투 끝에 포획에 성공하지만, 도망친 티라노사 우루스는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다양해진 공룡들은 울음소리는 물 론 움직임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쉴새없이 공룡이 사람을 습격 해도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쫓겨다니다가 운좋게 살아날 뿐 이니 맥이 빠질 수밖에. 한쪽이 너무 약하면 긴장감이 사라지는 법이다. ‘특수효과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란 진리를 떠올 리게 하는 영화다. 그래도 공룡을 만나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관객이 라면 말리지 않겠다.

얀 드봉은 <스피드>와 <트위스터>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감독이다. 이번 에는 <스피드2>를 들고 나섰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거의 없다는 사실 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세번째 작품으로 <l스피드>를 택했다. 키아누 리브 스와 헤어진 산드라 블록은 역시 경찰인 제이슨 패트릭과 사랑의 유람선 을 타지만, 다시 악령이 찾아온다. 선박회사에 불만을 가진 테러리스트가 유람선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든 것이다. 거대한 선박이 항구로 뛰어드는 장면에 매혹되어 <스피드2>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얀 드봉의 말은 사실 이다. 라스베이거스 대로를 활주로 삼아 비행기가 동체착륙하는 <콘 에어 >의 클라이맥스와 함께 올해 가장 화끈한 액션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끈한 액션 펼쳐지는 만화같은 영화

(사진/<콘 에어>)

작년 <더 록>을 보았다면 당연히 <콘 에어>을 주목할 것. 뮤 비디오 스타 일의 빠른 액션과 편집, 적절한 유머와 비장함의 조화, 숀 코너리와 니콜 라스 케이지의 탁월한 연기력이 어우러진 <더 록>은 새로운 액션영화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더 록>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콘 에 어>는 죄수 호송기 ‘콘 에어’를 탈취한 흉악범에 맞서는 전직 해병대원 의 무용담이다. <더 록>에서는 머리만 굴리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번에 는 몸으로 치고받는 확실한 액션을 보여준다. 존 말코비치, 존 쿠잭, 빙 레임즈 등 호화판 출연진도 눈길을 끈다.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액 션영화에도 인간적인 면모가 중요하다며 감동적인 장면과 상황을 곳곳에 깔아놓았는데 유치하다는 것말고는 봐줄 만하다. 만화같은 인물들이 등장 해서 만화같은 사건을 저지르는 영화다.

만화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면 <멘 인 블랙>과 <배트맨과 로빈>을 뺄 수 없 다. 로웰 커닝햄의 황당한 만화를 영화로 옮긴 <멘 인 블랙>은 미국 언론 에서 여름시즌 최고의 복병으로 꼽는 영화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제작 스필버그’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띌 듯. 스필버그는 <잃어버린 세 계>를 감독하느라 바빠서 <아담스 패밀리>의 감독 배리 소넨필드에게 <멘 인 블랙>을 맡겼다. ‘멘 인 블랙’은 지구에서 활동하는 외계인을 감시 하고 그들의 지구 이민을 관리하는 비밀조직. <인디펜던스 데이>의 윌 스 미스와 <볼케이노>의 토미 리 존스는 외계 행성에서 온 대사의 암살을 막 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멘 인 블랙>은 ‘코미디와 드라마, 액션, 모험 등이 부조리한 감각으로 결합된’ SF영화다.

팀 버튼이 불어넣었던 음침한 기운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형광빛으로 화려 하게 탈바꿈한 <배트맨과 로빈>은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 ‘배트맨’은 조지 클루니로 바뀌었고, 10대의 우상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배트걸이 되 었다. 자리를 지킨 것은 로빈 역의 크리스 오도넬뿐이다. 전통적으로 배 트맨을 압도해왔던 악역에는 진짜 거물이 등장한다. 80년대 이후로 처음 조역을 맡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미스터 프리즈 역을 맡았다. 신비한 기 운이 감도는 여배우 우마 서먼은 포이즌 아이비로 변신했다. 밝고, 경쾌 한 진짜 ‘만화’영화다.

정말로 진짜 만화영화도 있다. 디즈니의 서른다섯번째 만화영화 <헤라클 레스>. 역사물, 문학작품 등 소재를 넓혀가던 디즈니는 <헤라클레스>에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도용한다. 금실좋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 난 헤라클레스는 반란을 꿈꾸는 하데스의 계략으로 인간이 된다. 헤라클 레스는 힘을 길러 괴물을 물리치고 난세를 평정하는 영웅이 된다는 이야 기. 디즈니는 실제 신화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없이 이름만 빌려와서, 그리스 신화를 스포츠스타의 성공담으로 전락시켰다. 변함없이 디즈니 만 화영화를 즐겨왔다면 모를까, ‘디즈니는 항상 똑같다’라는 신념을 확인 시켜주는 영화.


원초적 쾌감 만끽하며 무아지경에 도달

뤽 베송의 <제5원소>는 프랑스제 블록버스터다. 칸영화제 개막작품인 <제 5원소>는 할리우드 흉내만 냈다는 비판에도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는 코 믹 SF영화다. 5천년마다 지구에 찾아오는 절대악을 물리칠 제5원소를 찾 는 브루스 윌리스와 밀라 요보비치의 모험이 B급영화 스타일의 유머 속에 서 휘황찬란하게 전개된다. 오락적인 요소로 잔뜩 치장한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즐거운 영화다. 이밖에도 미국 대통령이 테러범과 일대격전을 벌이는 <에어포스 원>, 짐 캐리의 재기작 <라이어 라이어> 등 의 블록버스터가 관객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아주 흥미로운 영화들도 있다. 아마존의 식인뱀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아나콘다>와 마이클 J. 폭스의 유쾌하고도 슬픈 공 포영화 <프라이트너>, 그리고 별다른 특수효과 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브레이크다운> 등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 흥 행, 또는 비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색적인 영화이다.

블록버스터의 장기는 눈을 붙들어 놓는 것이다. 머리보다는 감각적인 쾌 감으로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 원초적 쾌감을 주장하는 할리우드의 상술 이긴 하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순간 세상일을 다 잊어버리고 영화의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김봉석 기자/ 한겨레 씨네2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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