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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성, 큰기쁨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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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 남궁경숙(30)씨는 지난 5월 말께 회사앞 서울 강남 논현동 에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양재역에서 거래처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 했는데,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택시에 올라타서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날 따라 은행에 들르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 갑을 꺼냈다. 천원짜리 3장이 꼬깃꼬깃 들어 있었다. 평소 택시요금이 2 천5백원 정도 나오는 거리라 한숨을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런데 중간 정도까지 갔을 때였다. 갑자기 택시가 멈춰버렸다. 도로 위 에는 차들이 꼼짝달싹도 못한 채 죽 늘어서 있었다. 무슨 공사를 한다는 거였다. “요금이 1백원씩 찰칵찰칵 올라갈 때마다 가슴은 철커덕철커덕 내려앉더군요. 가까운 지하철도 없는 곳이었어요. 버스를 타도 막히기는 마찬가지구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군요.”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택시요금은 이미 남궁씨 전재산인 3천원까지 차오 르고 있었다. 무작정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약속장소에 도착해 운 전사로부터 당하는 창피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저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지갑에 3천원밖에 없네요.”
택시운전사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지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뻔한 거였다. “돈도 없이 택시를 타요? 이렇게 막히는 곳에서 중간에 내 려버리면 저는 어떻하라구요.” 좀 심하면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라 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릴듯 말듯 덧붙여지는 것이 보통이지 않은가.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뜻밖에도 그를 위로하는 말을 했다. “괜찮습니다. 얼마나 바빴으면 그렇겠습니까. 3천원만 받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드리겠 습니다.” 그리고는 남궁씨의 무안함을 덜어주려는 듯 “밖에 꽃들이 참 이쁘네요”“이제 여름이 다 됐군요”라는 말로 짐짓 화제를 돌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택시요금은 4천원이 나왔다. 운전사의 친절이 하도 고마워 지갑을 뒤적거렸다. 다행히 1천원이 넘게 남은 공중전화카드가 나 왔다. 그러나 공중전화카드도 정중하게 되돌려졌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때 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냥 편안히 가십시오 .”
남궁씨는 개인택시도 아니고, 매일 사납금 납부에 시달리는 회사택시였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단다. “돈 생각만 하느라 회사 이름과 아저씨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내린 게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빼빼 마르고 가무잡잡하게 탄,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같은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 다. 그 분의 말대로 언젠가는 만나 보답할 날이 있겠지요.”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