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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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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새벽 4시 반 신한국당 대선주자인 ㄱ씨 자택.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를 헤치고 검은색 승용차 한대가 소리없이 다가와 멈춰섰다. 미리 연 락이 있은 듯 현관문이 곧바로 열리고, 차에서 내린 사내는 주저없이 안 으로 들어섰다.
ㄱ씨를 찾은 사람은 다른 대선주자인 ㄴ씨의 핵심 참모 A씨였다. 두 사람 은 정국 상황 등에 대해 얘기를 잠시 나눈 뒤, A씨는 ㄱ씨에게 ㄴ씨와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했다. 두 주자가 앞으로 공감대를 넓힌 뒤 7월21일 전 당대회 1차 투표에서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 지원하기로 하 자는 것이다. 새벽회동은 곧 두 주자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더 진전시키 자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겉으로는 부정해도 물밑접촉 활발
대선주자간의 합종연횡이 비밀 보고서 차원을 넘어 이제 실행단계에 접어 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전당대회가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옴 에 따라 각 진영간의 활발한 막후 접촉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어떤 후보도 합종연횡을 드러내놓고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합종연횡=권력나눠먹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합 종연횡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확실한 강자가 없는 혼미한 당 내 세력 판도 때문에 주자간 연대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선두주자인 이회창 대표가 얼마 전 총리에게 실질적인 힘을 부여하겠다는 책임총리제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민주계 모임인 정발협쪽이 나 다른 주자와의 정치적 연대를 의식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2위 자리를 향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다른 주자들은 합종연횡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역별로 지지기반이 나눠져 있어 혼자의 힘으로 는 어떤 주자도 당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보간 합종연횡의 구체적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까. 변수가 많아 구체화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대입해보면 합종 연횡의 밑그림이 어느 정도는 도출된다.
합종연횡은 우선 철저하게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다. 어차피 다른 후보를 밀게 될 경우라면 어느 쪽을 지원하는 것이 ‘`장래’ 정치 적 행보에 유리한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는 지 역 기반이 서로 겹치는 경우 합종연횡이 어려운 것이 정치 현실이다. 예 를 들어 TK(대구 경북)를 기반으로 하는 이수성 고문과 PK(부산 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박찬종 고문은 같은 영남권으로 한 사람이 앞서면 뒷사람 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 고문이나 이 고문 모두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대 대상으로 김덕룡 의원이나 이한동 고문 등 다른 지역 출신 인사를 선호하고 있다. 이 대표 가 박 고문이나 김 의원을 정치적 연대 상대로 상정하고 공을 들이고 있 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결선 투표에 들어갈 경우 3위 이하의 득표자가 하나로 똘똘 뭉쳐 2위를 미는 상황은 상정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합종연횡의 두번째 기 준은 정치적 명분이다. 지역 통합이나 개혁 연대 또는 보수 결집 등 정치 적 명분에 걸맞아야 연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분없는 연대는 야합이 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큰 것이다. 그러나 이한동 고문이 ‘보혁 연대 ’라는 이름으로 다른 주자들의 합종연횡 대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데 서도 알 수 있듯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도 있다.
주자들의 평소 친소관계도 합종연횡에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통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 있는 관계일수록 서로 결합하기가 쉬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 예로 이수성 고문은 평소 이홍구 고문을 ‘형’, 이한동 고문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만, 이 대표와 는 ‘선배님’이라는 딱딱한 관계에 있다. 이수성 고문과 이 대표와 연대 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명분 만들기 고심… 이한동·김덕룡 상한가
각 후보들이 희망하는 합종연횡 대상을 조사한 결과 몇 가지 재미있는 현 상이 나타났다. 우선 김덕룡 의원과 이한동 고문이 가장 인기있는 합종연 횡 희망자로 떠오른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개혁적인 이미지에다가 상당 한 당내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실력자라는 점에서 그의 도움을 기대하는 주자가 많다. 김 의원이 ‘킹이 되겠다’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 고의 킹 메이커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한동 고문도 보수세력의 대표 라는 점과 적절한 당내 세력 등으로 인기있는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 두번째로는 박찬종 고문과 김덕룡 의원, 이인제 지사쪽이 서로를 연대 대 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적인 색깔에다가 세대교체형 인물들 이라는 점에서 3인의 결합이 가져올 파괴력을 서로 인정하면서 연대를 원 하고 있어, 앞으로 `3인의 ‘젊은 연대’가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