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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반론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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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주로 정치기사를 보기 위해 구독하고 있는 독자다. 문화 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어눌한지라 평론에 있는 기사를 보면 항상 ‘그 렇구나’하고 수긍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 <산부인과>를 평한 글을 보면서 나는 허탈했다. 영화를 보면서 새언니와 우리 엄마를 생각했 다. 김정룡씨의 시각이라면 ‘우리 예쁜 조카들이 저렇게 세상에 나왔구 나. 나도 저렇게 해서 엄마가 되는 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어야 함에도 말이다.
둘째 딸을 낳은 우리 새언니는 병실에 나와 함께 들어선 어머니, 자신의 시어머니를 보고 ‘죄송해요, 어머니’라고 했다. 이 말은 영화 가운데 딸을 낳은 산모가 하는 대사와 똑같다. 내가 오빠, 언니들을 많이 둔 덕 에 조카들이 태어날 때마다 산부인과를 갔다왔는데 모든 산모들이 딸을 낳으면 앵무새처럼 되뇌는 대사가 바로 그것이란 걸 알았다.
영화 가운데 아이를 낳다 죽는 산모를 보면서 나는 울었다. 죽음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죽음을 무릅쓰고 낳은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 지가 중요한 이 사회,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의 본성이 모성을 왜곡시키 고 살기를 강요받는 이 땅의 여성들이 안타깝다. 앞으로 나도 저렇게 살 아야 하나 하는 수치심에서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 이전에 그 신비를 안고 사는 여성들에게 이중적 성차별이 얼마나 잔인하게 행해지는가를 먼 저 느껴야 할 것이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 따위는 처음에도 밝혔듯이 잘 모른다. 그러나 영화 <산부인과>를 보고 ‘선정적’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심란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출산의 비밀, 생명의 신비쯤으로 생각한 많은 남성들에게는 선정적인 장면이 없지 않겠지만, 나는 감독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식 성을 강요받고 자란 20대 관객으로서 참 많이 공감이 갔다. 성의 왜곡 , 여성들 삶의 왜곡, 그 가운데 하나인 모성으로서 여성성이 철저하게 파 괴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데 대해서 박수를 보 내고 싶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생명의 탄생 가운데 많은 부분을 여성의 몫으로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아들 낳기에 거의 병적으 로 물들어 있는 그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여성과 그 여성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가, 그리고 폭행이라는 고통과 그럼에도 생명을 낳아서 모성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게 강요받는 어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주어 고 마울 뿐이다.
나는 영화평을 한 필자에게 생명의 신비, 그 비밀이란 것들이 밝혀지고 존중받기 앞서 그것의 일차적이 주체인 여성들이 진정 주체로 설 수 있는 사회의 성통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영화를 많 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남성들에게 처지를 바꾸어 볼 것을 간 곡히 부탁한다.
김연기/ 인천시 부평구 십정2동 493-49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