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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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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계란을 먹으면 시합에서 깨지고, 바나나와 미역국을 먹으면 정말
시험에 미끄러질까.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징크스는 쉽게 수용된다.)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고 시험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붙을 수도 있고 떨 어질 수도 있다. 미역국과 시험의 당락 사이에 인과관계란 애시당초 성립 하지 않는다. 옛날 농촌에서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낸 것도 마찬 가지다.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도 일부 사 람들은 이런 관계를 인과법칙으로 받아들인다.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것 인데 징크스가 쉽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종의 조건반사”
심리학자들은 일단 과학의 시대가 열리기 전, 자연현상 앞에 무력했던 인 간의 한계를 지적한다. 당시로선 기기묘묘한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학자들은 “징크스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의 원인을 찾으려는 인간의 고뇌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종교적으로는 초자연적인 힘, 일상생활에서는 단순하게 시간적으로 선행했던 일들이 원인으로 유추됐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역시 동일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는 ‘학습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징크스나 금기는 일종의 조건반사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이런 학습이론에 근거해 “개인이나 집단에서 보이는 미신행동의 발달은 우연적 보상의 결 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우제의 우연적인 성공이 기우제의 효험을 믿게 했고, 결국 제의적인 징크스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상에 의해 굳어진 징크스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설령 징크스의 예언이 한두번 깨질지라도, 다시금 징크스가 적용되는 사례가 생기면 금 세 복원된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들은 일반적으로 경기 내용에서 이긴 팀이, 승부차기에서는 진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징크스가 적중되지 않고, 경기 내용에서 이긴 팀이 승부차기에서도 이기면 징크스 는 약해진다. 그러나 경기내용에서 이기고 승부차기에서 지는 일이 한번 만이라도 재발하면, 징크스는 다시 부활한다.
개인이 어떤 집단의 징크스를 수용하는 과정을 사회심리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집단규범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 이는 정보 부족에 대한 대처방안일 수도 있지만, 규범을 지키라는 무언 의 압력을 느껴서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규범을 지킴으로써 특정 집 단에 소속하고자 하는, 또는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를 충족하는 것이다. 충북대 이봉건 교수(심리학)는 징크스도 이런 ‘집 단동조’ 현상의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집단적 동조압력은 특히 농경시대의 전통을 갖고 있는 동남아시아권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는 집단에서, 그 집단의 금기나 징크 스는 구성원들에게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심리적 안정’긍정적 구실도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징크스의 이면에 자신감의 결여와 같은 심리적 허약 함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감의 결여가 징크스라는 부정적 사 고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이나미 (36·신경정신과)씨는 “실패하고 좌 절한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서 징크스가 많다. 또 자기암시가 강한 사람, 히스테리컬한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에게서 징크스가 많이 나타난다” 고 말한다.
의사들은 “징크스는 그 내용에 따라, 징크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관념화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 한다.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징크스는 심리적 안정을 유지해주는 긍 정적인 구실을 한다. 어떤 행동을 미리 조심하게 하는 ‘환기’수단이 되 기도 한다. 반면,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과 결합하면, 일을 하는 데 심리적 장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징크스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정신적 강박 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나미씨는 “한번 실패한 것이 마 지막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설정을 하고 이를 성취하는 사람들은 정신적 태도에 별다른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