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
|---|
(사진/반세기 만에 허물어진 금녀의 벽. 공군사관학교의 여생도들.)
지난 2월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는 보라매를 꿈꾸는 여자생도 19명의 입 교식이 있었다. 49년 공사가 개교한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5주 동안의 고된 기초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입교식을 마친 이들의 눈에는 자부심과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
남성중심의 역사, 뿌리깊은 여성 편견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사관학교가 여성들에게 문을 열고 있다. 공사뿐만 아니라 육군사관학교도 내년부터 25명의 여자생도를 모집한다. 해군도 내 년부터 여군사관후보생 과정을 신설해 18명 정도를 선발할 예정이다. 여 성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으로 무장했던 군대에서 여성의 금기가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징크스가 깨지는 것이 기도 한다.
철강업계도 군대와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옛날부터 철은 남성다움의 상징이었다. 쇠를 다루는 곳은 국가의 주요시설로 신성시했을 정도다. 이 런 곳에 여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철강업계에선 최근까지도 용광로나 풍로 근처에 여성이 접근하는 것을 금 기시했다. 용광로나 풍로의 생김새가 남성의 성기와 비슷해 여자가 접근 하면 (발기해) 폭발한다는 어이없는 징크스 때문이었다. 이런 징크스는 9 1년이 돼서야 깨지기 시작했다. 포항제철에서 91년부터 여성 엔지니어들 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포항제철의 여성 엔지니어들은 용광로 바로 옆에서 뿌리깊은 남성의 편견을 녹이고 있다.
해운업계에도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여성 해기사(선원) 2명이 등장했다. 여성은 외항선에 승선시키지 않는다는 해운업계의 오랜 징크스가 깨진 것 이다. 해운업계의 여성에 대한 징크스는 악명이 높다. 신입사원의 해외승 선 연수에도 엄격한 남녀차별이 존재했을 정도다. 남성사원들이 배를 타 고 연수를 할 동안, 여성사원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 현지에서 대기하는 식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연관된 징크스는 많다. ‘ 정초에 여자가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면 재수가 없다’‘여자가 누워 있는 남자를 타 넘으면 재수가 없다’‘차에 첫손님으로 여자가 타면 재수가 없다’ 따위가 그것이다. 이런 생활 속의 여성 관련 징크스도, 비록 뿌리 가 깊기는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 고 있는 세태와 궤를 같이하는 변화다.
출산이 부정적 선입관 낳았다?
여성과 관련된 징크스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에서 비롯했다. 징크스나 금기 는 성스러움과 속됨, 깨끗함과 더러움, 낯선 것과 친숙한 것이라는 이분 법으로 세상을 나눈다. 이런 이분법에 따르면,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 성은 속되고 더러운 것, 오염된 것에 속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성과 관련 된 회피나 기피의 징크스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여성의 출산 행위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출산 행위는 한편으로는 생명력과 창조력의 원천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지 만, 다른 한편으으로는 고통 또는 죽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전파한다. 따라서 ‘여성=출산 행위=고통=기피 대상’이라는 관념이 생겨났다는 것 이다.
일부 학자들은 집단의 징크스나 금기가 지배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라고 비판한다. 이런 틀로 해석할 때, 여성과 관련된 징크스는 남성 중심 의 사회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남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유대를 강 화하기 위해 여성의 부정적 이미지와 관련된 징크스를 생산·유포하는 것 이다. 여성과 관련된 징크스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런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이 성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