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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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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택시기사들 사이에선 "개를 치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금기로 굳어 있다.)
“승부차기를 하면 경기내용에서 이긴 팀이 꼭 진다.”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배가 뒤집힌다.”
“시험을 보기 전에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서 떨어진다.”
살다보면 불운의 쳇바퀴에 갇힐 때가 있다. 무슨 일을 하면 꼭 나쁜 일이 이어진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틀리고 마침내 경을 치기도 한다. 이런 불행의 연속에서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기란 애초 부터 난감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괜한 의심이 생긴다. 혹시 그때 그 일이 불운의 조짐이 아니었을까.
운전사들 “개를 치면 재수없다”
개인택시 운전사 최양우(51)씨는 일주일 전 택시를 몰다 작은 사고를 냈 다. 서울 응암동 백련사에 손님을 태워주고 내려오다가 그만 애완견을 치 고 만 것이다. 그때 동료 운전사의 말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개를 치고 나면 꼭 큰 교통사고를 낸다.” 최씨는 혼란스러웠다. 운전을 계속 할까? 집에 돌아가 쉴까?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런 속설 때문에 하 루를 그냥 공쳐버릴 수는 없는 일. 꺼림칙한 마음을 누르고 계속 운전대 를 잡았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개를 치고난 지 40분 뒤 멀쩡하던 차가 고장 났다. 카센터에서 자동차를 고치는데, 기다리는 데만 꼬박 2시간을 허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운전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이번엔 봉고 승합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봉고가 갑자기 제 앞으로 빨려 들어오 는 거예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섬뜩하더군요. 징크스가 이런 거로구나 실감했죠.”
징크스(jinx)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 사용하던 새의 이름(jugx )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마치 마술과 같은 힘으로 일어나는 불길한 일이나 운명적인 일을 의미한다. 사전적으 로는 ‘으레 그렇게 되리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일’까지를 포괄한다. 얼핏 보면 심리학이나 인류학에서 말하는 ‘금기’(taboo)와도 비슷하다. 징크스가 개인적인 차원의 금기라면, 금기란 집단적인 차원의 징크스라고 할 수 있다.
징크스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징크스의 그물에서 자유로운 사 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물건에 붙은 상표처럼, 개인이나 집단에는 고 유의 징크스가 따라붙기도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상황을 극복하거나 대비하기 위해 자기암시나 최면을 거는 것도 징크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징크스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은밀히 존재한다.
징크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다. 일단 징크스에 걸리면 저항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징크스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심리적 불안상태에 휩싸이게 되고, 웬만하면 징크스를 지키는 편을 선택하기 십상이다. 징크스는 모든 사물을 이분법 으로 나누고 각각의 것에 대한 기피나 선택을 강요하는 형태를 띤다. 시 험을 보기 전 미역국에 대해서는 ‘기피’, 엿이나 찰떡에 대해서는 ‘선 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미묘한 기피와 선택의 유래를 찾기란 힘들 다. 불교나 기독교, 혹은 토테미즘 같은 원시신앙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단순한 상징에서 생기기도 한다.
운전사들의 개에 대한 징크스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윤 회설에 따르면, 전생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업보로 인해 축생의 단계인 개로 환생한다고 한다. 불교의 <목련경>에도 부처의 수제자인 목 련존자의 어머니가 전생에 수도승을 때리고 욕을 한 업보로 개로 환생했 다는 대목이 나온다. 개와 인간은 윤회의 단계상 아주 가깝다. 이렇게 인 간과 밀접한 개를 죽이면, 죽인 사람에게 원한을 불러일으킨다. 개를 치 어 죽인 운전사들이 ‘재수없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바다의 징크스, 생명 유지해주는 구명줄로
징크스는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는 접착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운수업계나 건설업계처럼 특정 직업의 징크스는 그 집단의 규율이자 상징으로서 보편 성을 얻는다. 그리고 집단은 그 징크스를 지키도록 구성원에게 무형의 압 력을 가한다. 때문에 집단의 징크스는 생명력이 강하며, 그 질긴 역사성 으로 인해 뿌리를 더듬어 보기가 쉬운 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힘에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될 때 징크스는 위 력을 발휘한다. 어촌이나 해운업계가 그런 경우다. 인간은 용왕이나 바다 의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정해 의지하거나, 선원들의 특별한 행동 이 폭풍 등과 관련돼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곳에서 징크스는 생 명을 보호해 주는 구명줄이다.
고려해운 운항관리부 서구현(34) 과장은 해양대를 졸업하고 처음 원양어 선을 탔을 때 휘파람을 불었다가 선배한테 혼쭐이 난 적이 있다. 배 위에 서 부는 휘파람은 바람을 불러온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휘파람 징 크스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설명이 뒤따른다. “조용히 있는 상태에서 휘 파람의 음색은 다른 배의 기적소리나 엔진소리를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휘파람은 음색이 긴급 구난신호인 에스오에스(SOS)와 비슷해 절대 삼 가야 합니다.”
하지만 휘파람의 징크스는 과학보다는 금기에 가깝다. 심리학자 칼 융은 금기의 대부분이 상징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가령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는 ‘미끌미끌하다=미끄러진다’는 상징에서 비 롯했다는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 ‘4’가 한자문화권에서 꺼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4(사)=죽음’이기 때문이다. 휘파람도 마찬가지다. 휘 파람을 불기 위해서는 입안의 공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휘파람=바람’이라는 유사성이 징크스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어촌에서 생선을 뒤집어 먹지 않는 징크스도 비슷하다. 어촌에서는 생선 을 먹을 때 한쪽을 먼저 먹고 뼈를 발라낸 다음, 밑 부분을 먹는다. 만약 이를 어기면 고참 어부들에게 혼쭐이 난다. 생선은 생김새가 배와 비슷하 다. 그러므로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상징이 성립하는 것 이다.
터를 잡고 집을 지어야 하는 건설업계에서는 상당수의 징크스가 풍수지리 설이나 음양오행설과 얽히고 설켜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장사무실의 입 구를 낼 때 한사코 북쪽과 서쪽을 피한다. ‘서쪽에 사는 여자를 사귀면 망한다’는 징크스도 있다. 물론 남쪽이나 동쪽으로 입구를 내면 아침에 햇볕이 잘 들고, 겨울의 북서풍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북쪽과 서쪽을 기피하는 데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한국역리학회 부회장 박일우(58)씨는 “예로부터 북쪽은 사기, 도난, 흉년 따위의 나쁜 이미지와 연관돼 있어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일 에서 가급적 피한다. 또한 서쪽은 오행 가운데 ‘금(金)’에 해당돼, 건 축의 ‘목(木)’을 치는 형국이라 피한다”고 설명한다.
현대그룹의 ‘풍수 징크스’
(사진/조상들은 아기를 낳으면 부정타지 않도록 대문에 금줄을 쳤다. )
현대그룹은 그룹의 모태가 됐던 광화문 옛 사옥을 팔지도 새로 짓지도 않 는다. 삽을 대면 터의 좋은 기운이 다친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삼풍백화 점이 무너졌을 때 언덕 위에 진 백화점은 망한다는 속설이 업계에 돌았던 적이 있다. 백화점이 잘 되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언덕은 바람 잘 날이 없어 사람을 내쫓는다는 연상이 살아난 것이다. 모두 ‘풍수 징크스 ’에 해당하는 사례다.
자신감 따위의 심리적 요인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운동선수나 감독에게, 징크스는 그림자와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되풀이되는 승리와 패배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 이들에게 징크스를 강요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운동선수 가운데 86.3%가 징크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운동선수들의 징크스는 상당 부분 ‘깨지다=경기에 지다’라는 상징적 의 미를 띤 물건이나 음식과 관련이 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아침식단 은 대개 빵과 계란프라이, 우유로 차려진다. 하지만 시합이 있는 날, 계 란프라이는 그대로 잔반통에 버려진다. 계란은 ‘깨진다’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또 시합날이 잡히면 일체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접시나 컵을 잘못 건드려 ‘깨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포츠 세계의 징크스들은 전파력이 강하고 세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집 단 합숙생활이 많은 선수들은 동료의 징크스에 감염된다. 또 어릴 때부터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소속팀의 감독이나 코치, 선배의 징크스를 그대로 물려받기도 한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정용하(36) 코치는 “선수들 개개 인이 시합 일주일 전부터는 손톱을 깎지 않는다거나, 여러 유니폼 가운데 이겼을 때 입던 옷을 입고 나온다. 이런 징크스들은 대체로 지도자들한테 이어받은 게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광범위하게 퍼지는 ‘혐오의 상징’
혐오스런 것이나 낯선 것도 종교적인 맥락이나 상징과 상관없이 쉽게 한 사회의 보편적인 징크스가 된다. 이런 징크스는 특정 집단의 징크스보다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다. 검은 고양이나, 고양이 울음소리, 까마귀는 단순한 혐오감으로 징크스의 대상이 된 경우다. ‘까마귀를 보면 재수가 없다’거나 ‘고양이가 밤에 울면 불길하다’는 징크스가 여기에 속한다.
집단이나 사회의 징크스는 개인의 생활 속에 투영된다. 징크스가 정확한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인은 자연스럽게 무리의 징크 스에 순응한다. 개인은 상위집단의 징크스를 받아들인 뒤 수용·변형 과 정을 거쳐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집단에 반영시킨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 끊임없는 징크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징 크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왕성하게 살아 움직인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