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한겨레21

“얼굴 내밀고 요란 떠는 거 싫다”

(사진/97년 그룹 임원세미나에 참석한 회장단. 왼쪽부터 이정우 그룹 부회장, 이준용 명예회장, 김병진 신임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은 외부에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 외적인 감투는 전경련 이사와 기업문화와 관련된 기업메세나협의회 부회 장 정도가 고작이다. 성격부터가 다른 사람 앞에 나서고 요란 떠는 것을 싫어한다. 전경련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일부에선 지난 91년 자해소동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회장이 계면쩍어 그러는 것 아니냐고 추 측도 한다.

격식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룹 회장 취임 이후 임직원들과의 모임에서 권위주의와 불필요한 형식을 털어버리라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지난 95년 말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국내 30대그룹 재벌총수들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전전긍긍할 때였다. 이 회장에게도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 시간을 내서 하루이틀 안에 한번 다녀가라는 연락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 은 “지금 시간이 있으니 당장 가면 안 되겠냐”며 바로 검찰에 출두해 버렸다. 언론에는 이 때문에 전격소환이라는 오해까지 샀다. “다른 회장 들은 검찰소환에 대비해 변호사들과 리허설도 하고 취재진을 의식해 걸음 걸이까지 연습했다. 나중에 이 회장은 ‘이권청탁이나 로비와는 관계없이 준 돈인데 늦게 간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느냐’고 말 하더라.” 그룹 한 임원의 말이다. 그룹 기조실의 한 관계자는 “대림그룹에서는 회장실이나 비서실이 따로 없다. 수행비서와 여비서가 한명씩 있는 것이 고작이다. 전용 엘리베이터도 없어 직원들과 함께 탄다. 직원들이 쭈뼛쭈뼛하고 거 북해하면 ‘빨리 타지 않고 뭐하냐’며 다그치는 일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그룹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은 말이 별로 없 고 임직원들에게 호통치는 일도 거의 없지만 그런 만큼 아랫사람으로서는 모시기가 쉽지 않은 분이다”고 귀띔한다. 대림그룹과 거래가 많은 한 시 중은행의 임원은 “지난 95년 말 이재준 창업주가 사망했을 때 밑에 직원 들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자 이 회장은 `무리하지 말고 ‘낼 것 은 내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안다. 그는 욕심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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