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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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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월14일 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72%가 `국민후보안'을 지지했다.)
민족민주진영의 대선 전술이 국민후보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한총련(전국대학 총학생회연합) 등 부분별 조직과 지역별 민족민주조직을 아우르는 우리나 라 최대의 사회운동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지난 6월14일 서울 기독교연합회관에서 6기 1차 임시대의원대 회를 열어 올해 대선에 ‘국민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날 대회는 대 의원 3백18명(전체 재적대의원은 5백41명)이 참석해 이 가운데 2백28명( 찬성률 72%)이 국민후보안에 찬성했다.
8월부터 후보자 선정 본격화
이에 따라 전국연합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위원장 권영길) 등 다른 재야민주세력들과의 합의 과정을 통해 이른바 민주진영의 ‘우리 후보’를 내게 됐다. 즉, 후보를 내기는 하되 운동권만의 ‘독자후보’ 성격이 아니라 민주진영이 연합해서 야권 후보단일화를 강제해낼 수 있는 국민적 신망과 지지도를 갖춘 ‘국민후보’를 내기로 한 것이다. ‘독자 후보’나 ‘민중후보’라는 용어를 애써 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결정은 대선 때마다 각각 다른 주장으로 분열했던 민족민주진영이 하나의 결정 아래 뭉쳤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재야세력은 87년 대선에선 DJ 비판적 지지그룹과 후보단일화그룹으로 나뉘었고, 92년 대선 에서도 민주당 김대중 후보와 정책연합을 펼쳤던 전국연합과 백기완 독자 후보 추대파로 분열했었다.
전국연합은 이날 결정문에서 “민족민주운동 진영이 정치세력화와 민주적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대선구도에 효과적으 로 개입해 들어감으로써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 전국연합은 신한국당에 반대하고 민주개혁을 열망하는 광범위한 국민대중 과 모든 민주세력을 폭넓게 결집하여 힘있는 민주연합을 형성하고자 한다 . ‘우리 후보’가 폭넓은 민주연합을 대표할 수 있어야 기존의 정치지형 과 대선구도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범야권의 후보단일화 등 민주적 정권교 체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 수 있다”고 밝혔다. 결정문은 또 “범야권의 후보단일화 대상에는 신한국당에 반대하고 민주개혁의 실현과 새로운 정 치의 구현에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지금 까지 대선과 관련해 민주진영의 대표적인 두 가지 주장인 ‘독자후보를 통한 정치세력화’와 ‘민주대연합을 통한 정권교체’ 모두를 폭넓게 인 정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앞으로 민족민주진영은 공동의 선거기구(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를 제안해 여기에 민주세력을 결집하고 이 기구에서 ‘국민후보’를 추대하 는 절차를 밟게 된다. 민족민주진영 가운데 대중적 영향력이 가장 큰 민 주노총이 오는 6월19일 중앙위원회와 7월 하순의 대의원대회를 거쳐 늦어 도 7월 말까지 대선 방침을 확정하면 그 이후에는 후보자 선정이 본격화 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전국연합 산하단체가 아니고 참관단체이기 때문 에 이번 결정과정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은 전체 민 족민주진영의 이후 대선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민주노 총의 향배에 관심과 눈길이 집중적으로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전 선운동 조직인 전국연합과 가장 큰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민주노총이 단 일한 대선 방침을 정한다면 대선정국에 태풍의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노총 안에서도 국민후보안이 대세를 이루고 있 어 전체 진보민주진영이 국민후보로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도 높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민족민주진영의 대선논의는 ‘독자후보를 통해 독자적인 정치세 력화를 할 것인가’ 아니면 ‘광범위한 민주세력의 결집을 통해 50년 만 에 정권교체를 이룰 것인가’의 논란으로 진행돼 왔다.
“DJ 진보성에 기대 버렸다”
독자후보를 내자는 주장은 기존 정치권의 후보들에게서 바랄 것이 별로 없다는 상황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 특히 DJ에게 붙여졌던 ‘상대적 진 보성’이라는 평가도 이번만큼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진 측면이 독자후 보론자들의 입지를 크게 넓혔다. 이들은 최근 DJ가 보여주고 있는 보수화 경쟁, 또 야당 집권전략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는 DJP연합·저항적 지 역주의·수평적 정권교체론 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이 런 주장들이 ‘DJ대통령 만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DJ는 더이상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며 “민 족민주진영의 이념에 맞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담당할 정치의 주체를 조직 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민주대연합에 의한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이들은 ‘정권교체’ 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수평적 정권교체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분열과 대립 축이 되고 있는 것은 지역대결의 정치구조에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지역대결 정치구조의 해소, 즉 권력의 독점과 지역패권적 질서의 해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또 정권교체 자체가 민주주의적 개 혁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학민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조직위원장은 “시민 자신이 투표를 통해 정권교체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시민 스스로의 정치적 주체성을 고양시키는 가장 확실한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언론 공무원 검찰 경찰 등도 지배 권력 블록의 한 요소가 아닌 시민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며 경제주 체들도 더 이상 정경유착이라는 불명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제3후보론·저항적 지역주의·DJP연합·내각제 등 에 따라 견해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연합은 정치세력화와 정권교체 모두에 개방적인 국민후보 안을 받아들였다. 애초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 등이 중심이 돼 주장했던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 셈이다. 전농은 조직 의 지역적 기반이 호남권이어서 후보를 낼 경우 조직 안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다분했다.
결국 전국연합 대의원 가운데 국민후보론을 수용한 71%에도 내용적으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 섞여있다. 하나는 끝까지 사퇴하지 않는 그야 말로 ‘독자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야권후보의 단일화를 이루자는 주장이다. 후자의 주장을 펴는 이들은 운 동권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로 야권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입장 이다.
따라서 민주진영이 끝까지 하나의 정치적 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 지수이다. 제3후보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독자후보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시각차와 세력분포가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독자후보를 주장하는 진영은 진보정당 건설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대선 을 통해 형성된 정치적 역량을 토대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이어 98년 지 자제 선거와 2000년 총선에 나선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을 염두에 두고 있 는 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대선 전이라도 가능하다면 정당건설을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독자 후보를 추진해야 한다는 이들은 대의원 비율로 치면 30~40% 정도인 것으 로 알려졌다.
이런 주장에도 일정한 편차는 있어 일부는 시기상조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 인천연합 박세길 정책위원장은 “궁극적으로 민족민주진영의 정당을 만 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지역적인 토대가 미약한 상태라 시기 상조라는 판단이 많다”며 “이번 대선에서는 우리 진영이 단결하는 모습 을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는 장사는 못해도 쪽박 을 깨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부 조직갈등 커질 수도
이에 대해 단일화론자들은 제3후보를 통한 야권단일화와 정권교체에 무게 를 싣고 있다. 이를 통해 민족민주진영의 분열도 막고 야당도 견인해 내 자는 것이다. 이 주장 또한 보수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재의 야당이 제 대로 합의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예전처럼 자신감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 또 대중성과 신뢰를 고루 갖춘 후보를 찾기 힘들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 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족민주진영은 대선후보 결정을 앞두고서는 조직적인 갈등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진보정당 결성 시기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2000년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왔다. 이전의 한겨레민주당 이나 민중당의 경험 때문이다.
어쨌든 민주노총이 7월 말까지 대선방침을 정하게 되면 후보를 간택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과연 민족민주진영이 정권교체와 정치세력화라는 두 마 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