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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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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겨울 노동자의 총파업은 한국판 신자유주의의 전면공세에 대한 전면적인 항거였다.)
올해초 전국적인 총파업을 불러일으킨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통과, 그리고 결국 여야합의로 다시 통과된 개정노동법이 한국판 신자유주의가 전면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한총련 소속 일부 학생들의 이석씨 폭행치사 사건은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였다.
유럽인들엔 ‘부도난 복음’
그런 가운데, 지난 5월1일과 6월1일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좌파정당의 총 선승리를 계기로, 최근 몇년 동안 유럽의 정치지도를 크게 바꿔놓은 좌파 의 잇따른 집권현상에 대해 국내의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 유럽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유럽의 정치변동을 바라보는 우리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대처리즘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시 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모든 경제문제는 자유로운 시장의 기능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치 아래,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없애고 국유화된 산업들을 민영화하여 모두 경 쟁체제로 바꾸며, 각종 사회복지제도를 해체해 기업들의 세금부담을 덜어 주면 국가경쟁력이 커져 경제가 살아나고 그 결과로 실업도 자연스레 줄 어들 것이라는 주장. 그리고 성장의 혜택 또한 국민 모두가 받게 되리라 는 이데올로기는 이제 유럽인들에게는 더이상 믿을 수 없는 부도난 복음 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최장집(고려대) 교수는 “유럽에서 좌파의 잇따른 승리는 세계사적인 사 건임이 분명하다. 21세기의 유럽정치는 이제 좌파가 이끌어갈 수밖에 없 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의 이런 흐름은 아직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독일의 내년 총선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황태연(동국대) 교수는 “이제 신자유주의는 더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면서 “좌파는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패로 단순히 반사이익 을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복지국가 기획이 옳았음을 확인받았 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학자들은 “`‘인간’을 도 외시한 성장일변도의 신자유주의정책은 오히려 성장 자체마저 가로막았다 ”고 입을 모았다.
임영일(경남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거시경제지표로 볼 때 그나마 성장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던 영국에서조차 신자유주의 정책 아래서 빈부격 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각종 사회복지기금을 축소시켰지만 늘어난 실업자 때문에 국가가 지출한 비용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면서 “중산 층은 신자유주의정책의 결과에 불만을 느꼈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불 안까지 느끼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최고의 문제점은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의 제도적 기능을 해체시켜버린 데 있다”면서 “자본주의 아래서 국가의 구실은 여 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유럽은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김호기(연세대) 교 수도 “국제화는 국민국가를 해체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럴 수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좌파도 정치적 전망 구체화해야
(사진/유럽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징인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 속에 새롭게 떠오른 토니 블레어 총리.)
그렇다면 좌파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패의 결과로만 집권했는가. 좌파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있었던가? 학자들 사이에는 좌파가 현실의 변 화에 맞춰 스스로 노선을 수정해왔다는 데 대해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무엇보다도 좌파들은 그동안 시장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핵심 대안으로 생각해온 국유화정책을 포기했다. 좌파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국가사 회주의의 실패로 “국유화는 이제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완벽히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확실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이 이번 총선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정책을 내 놓은 데 대해서도 최장집 교수는 “기간산업의 국유화는 사실 사회주의와 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필요한 부분의 국공영화는 자본주의에서도 필수 적”이라며 “프랑스사회당이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단지 민영화 의 급속한 추진과정에서 발생할 문제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유럽좌파들이 기존의 이분법적인 계급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것도 선거승리의 한 원인이 됐다고 학자들은 지적했다. 김호기 교수는 “ 좌파의 변화는 유럽사회 내부의 계급구성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면서 “서비스부문의 팽창으로 계급구성이 크게 바뀜에 따라 좌파들은 특정계급의 이익만을 주장해서는 대안의 정치세력이 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세계화 추세 속에서 중산층을 포함해 다수 국민들에 게 혜택을 주는 복지국가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좌파의 새 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장집 교수도 “좌파는 전통좌파처 럼 시장논리를 국가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불평등과 실업문제 따위를 국가가 나서서 보완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면서 “이는 좌파의 우경화가 아니라, 새로운 조건 아래서 시장논리의 조정 보완에 나선 것”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승리한 좌파들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안 고 있다고 진단했다. 황태연 교수는 “국유화라는 대안이 더이상 통할 수 없다고 해서 시장을 다시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문 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좌파는 국가의 기능이나 소유권의 평등 문제에 대해 새로운 이론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 행(서울대) 교수는 한마디로 “좌파들은 평등, 민주주의, 연대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좌파들에게 닥친 가장 큰 과제는 유럽통합에 대한 대 처방식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임영일 교수는 “유럽통합은 여전히 우파 의 헤게모니 아래서 진행되는 것이며, 좌파도 유럽통합에 대해서는 아직 수정·우회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럽연합 차원에서 좌파정치적 전망을 구체화해야 좌파들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물론 “좌파의 승리를 결코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박호성(서강대) 교수는 “공산주의가 외부의 적으로 존재하던 시기 에는 묻혀질 수 있었던 자본주의 내부의 여러 문제점들이 공산권 붕괴 뒤 세계각국에서 개혁에 대한 요구로 다시 분출하고 있다”면서 “유럽 또한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서 좌파는 개혁의 대안세력으로 이제 겨 우 기지개를 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긴 하지 만, “좌파는 아직 확고한 대안세력이 아니다. 좌파가 앞으로 사회를 어 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는 것이다.
한국 정치현실에 대한 염려
정수복 크리스챤아카데미 연구실장은 “좌파에게 새로운 내용이 있느냐?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유럽통합과정서 오는 문제들에 대한 반대 때문 에 국민들은 좌파를 선택했다”면서 “좌파에게는 단지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좌파들은 이제 변화한 상황에서 다 양성, 연대, 관용, 평화 등의 가치를 어떻게 정책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따 라 미래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인 유럽에서 이제 신자유주의 정 책의 실패는 엄연한 사실로 증명됐다”는 데 대해서는 뜻을 같이했다. 그 리고 그것은 결국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대한 염려로 이어 진다.
“대선후보나 예비주자로 나선 사람들이 내세우는 정책방향을 보면, 정당 이나 개인차가 거의 없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 다.” 임영일 교수는 국가의 기능을 상황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 무작정 ‘국가경쟁력’을 강조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우리나라 정치권 의 정책방향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최장집 교수는 사회복지제도가 제대 로 확충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경제현실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다. “시장의 효율성과 국가경쟁력만을 내세우 는 논리는 결국 실패의 길을 갈 것입니다. 국민생활의 질을 고려하지 않 는 성장정책은 결국 참담한 결과만 낳게 될 것입니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