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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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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삼성은 자동차 포기하라." 보고서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기아차 노조원들이 6월13일 삼성본관에서 시위를 벌였다.)
“삼성자동차가 막대한 투자부담과 핵심기술의 확보난 등으로 빚어진 어 려움을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다. 외곽을 치고 빠지는 전 형적인 수법이다.” “업계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유감스럽고 책 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개인차원에서 빚어진 일을 회사차원으로 자꾸 비 약시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경쟁업체들 공격에 삼성도 강경대응
삼성자동차가 작성한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재편 필요성과 정부의 지 원방안’이라는 보고서의 유출경위에 대해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선 가운 데, 삼성과 경쟁업체들의 주장이 계속 팽팽히 맞서고 있다. 논란의 초점 은 삼성자동차가 이 보고서를 과연 정부쪽에 비밀리에 제출했는가, 아니 면 최소한 언론이나 시중에 그 내용을 의도적으로 유포했는가 여부이다. 우선 삼성쪽은 “검찰조사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불필요한 논쟁을 삼 가겠다.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며 다른 업계의 공세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또 “보고서의 작성과 유출과정에 아무런 `‘악의’가 없었던 만큼 공식사과 요구도 받 아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의 거센 반발에 이어, 노동자들조차 삼성을 규탄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음에도 삼성이 이처럼 강경일변도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가?
삼성쪽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보고서는 삼성자동차 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내부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을 경쟁업체의 대학선배 에게 건네줬다가, 우연히 언론에 유출됐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보안사고’라는 것이다. 삼성쪽은 그러면서 보고서 유출의 배 후로 아예 현대자동차를 지목하고 나섰다. 이에따라 주로 기아와 삼성 사 이에 벌어지던 감정싸움이 이번에는 현대와 삼성 사이의 책임공방으로 변 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성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제의 보고서가 작성·유출된 경위는 이렇다.
“보고서는 지난 4월초 삼성자동차 산업조사팀 김아무개 과장이 내부보고 용으로 만들었다. 보고서는 삼성경제연구소 등 일부에서만 회람한 뒤 내 용이 문제가 될 것같아 파기했다. 그런데 김 과장이 이 보고서를 대학 선 배인 현대자동차 산업연구소의 남아무개 차장에게 건넨 뒤 문제가 생겼다 . 김 과장은 지난 4월29일 `‘관련 보고서를 쓰는 데 참고할 것이 없겠느 냐’는 남 차장의 요청에 따라 이 보고서를 팩스로 보내준 것으로 밝혀졌 다.”
삼성쪽은 현대자동차의 남 차장에게 보고서를 전달받은 경위에 대해 이미 `‘확인서’까지 받아뒀다고 밝혔다. 확인서에는 “(남 차장은) 삼성자동 차 후배로부터 팩스로 전달받은 보고서를 갖고 있던 중 부하직원이 열람 하고 사내 정보채널에 보고한 사실을 5월31일 알았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자동차 등 관련업계에서는 이런 삼성의 주장을 단호히 일축한다. 현대자동차쪽은 “물론 남 차장이 보고서를 건네받았고, 현대 의 고위관계자들도 그 내용을 알게 됐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 만 보고서를 현대쪽에서 유출시켰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위기에 몰린 삼성이 사태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 애꿎게 우리를 끌어들이려 한다 ”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에게 보고서를 넘 겨받은 사람이 있다면, 삼성쪽에서 그사람을 데려다 놓고 그런 주장을 펴 는 것이 순리가 아니냐”고 따졌다.
그렇다면 삼성의 보고서는,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따로 정부기관에 건네 졌던 것일까. 삼성쪽은 경쟁업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 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보고서를 정부기관에 넘겼다면 작성주체가 그룹이나 회사가 아닌 일개`‘산업조사팀’으로 돼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이 언론에 처음 알려진 때는 보고서가 현대쪽으로 넘어 간지 한참 뒤인 5월21일이다. 삼성쪽은 이를 근거로 “개인적으로 주고받 은 자료가 악의적으로 유포되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오히려 “정부에 건네졌다면 이는 현대쪽이 유출시킨 것”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그러나 정부관계자들도 보고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기는 마찬가 지다. 한덕수 통산부 차관은 지난 7일 “삼성자동차의 보고서는 이전에 전혀 받아본 적이 없으며 삼성쪽의 구조조정 논리에 동조한 적도 결코 없 다”며 “기업의 인수합병을 돕기 위한 금융 세제 지원방안도 특정산업이 나 기업을 염두에 둔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새로운 사실 밝혀지기 힘들 듯
삼성의 보고서에 가장 발끈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쪽은 이런 정부관계자들 의 해명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기아자동차의 한 관계 자는 “통산부나 재경원에서는 발뺌하고 있지만, 정부기관업무를 담당하 는 대외협력부에서는 보고서가 정부기관에 나돌고 있다는 정보를 이미 입 수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작성주체가 산업조사팀으로 돼있 는 것에 대해서도 “표지는 얼마든지 바꿀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다. 하지만 기아쪽도 `‘소문’ 이상의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더욱이 기아자동차는 보고서의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난 뒤에야, 보고 서사본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문제의 보고서는 과연 누가, 그리고 어디로 퍼트렸는가? 지금으 로서는 삼성자동차에서 현대자동차로 건네졌다는 사실 외에는 어느것도 분명하지가 않다. 만약 검찰조사결과 삼성이 보고서를 정부부처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삼성으로서는 도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물론, 승용차사업 자체가 난관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반대로 경쟁업체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라면, 그 업체또한 도덕적 비난을 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에 대해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새로 운 사실을 밝혀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별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끝내 검찰수사로까지 번진 이번 보고서파문도 업체들 사이에 감정적 앙금 만 남긴채 또한 차례의 소동으로 끝나고 말 것인지, 검찰의 수사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