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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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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두명의 `경식'이 문제다."
6월16일 이경식 한은총재(왼쪽)가 박성용 금개위 위원장과 함께 금융개편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두명의 경식(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이경식 한은 총재)이 중앙은행 독립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강 부총리가 지난 6월16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이 한은 총재와 박성용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한 가 운데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관한 정 부안을 발표하자 한은 임직원들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재경원은 한 은 독립이라는 말을 아예 하지 말라. 한은의 힘을 철저히 빼버리면서 허 울좋게 한은 독립이라는 말을 늘어 놓고 있다.” 재경원을 향한 직격탄도 쏟아졌다. 한은노조(위원장 심일선)는 정부안에 손을 들어준 이 총재의 퇴진을 요구함과 동시에 금융감독기구 통합에 반대하는 증권감독원, 보험 감독원 노조와 함께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독립전쟁'을 선포했다.
“95년 재경원안보다도 개악”
정부 개편안은 6월12일 저녁 강 부총리, 이 총재, 박 위원장과 김인호 청 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 4자회동에서 합의된 내용을 밑그림으로 한 것이 다. 금융정책과 감독기구의 틀을 재경원-한국은행-금융감독위원회라는 3 각구도로 재편한 정부안은 `금융빅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금융 권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표·그림 참조). 정부는 예상된 반발을 무 릅쓰고 개편안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물가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 을 강화하고 금융산업의 겸업화 추세에 부응해 복잡다기한 금융감독체계 를 일원화한다는 취지를 내세운다. 또 이번 안이 금개위가 제시한 △중앙 은행의 독립과 위상제고 △금융감독기능 통합 △금융감독기능을 제3기관 으로 이관 등 3가지 골격을 100% 수용했다는 입장이다. 김인호 경제수석 은 “적어도 50년 후를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한은은 정부안이 `중앙은행의 독립과 금융기관의 건전성 및 금융 제도의 안정성'이라는 제도개선의 기본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 며 반박한다. 정부안이 중앙은행의 기능을 대폭 약화시키고 금융감독체계 도 효율성이 크게 제약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특히 독소조항 으로 꼽는 부분은 한은에서의 은행감독원 분리 문제이다. 정부안은 사실 상 한은으로부터 검사기능을 모두 떼어낸 뒤 재할인·공개시장조작·지급 준비율정책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통화정책을 펴도록 하고 있다. 한은 은 이런 정부안이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 기능을 부인하고 있고 통화 신용정책과 은행감독기능간의 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그동안 은행감독권을 무기로 창구지도 등 직접 규제에 크게 의존해 왔다. 직접규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 간접 적인 방식만으로 통화정책을 펴라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한은의 한 간부는 “정부는 금융감독기구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이나 공동검사 요청권 부여 등을 내밀며 통화신용정책을 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은 보장됐다는 주장이지만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현실 에서 특정은행에 문제가 있다고 한은이 공동검사를 요청하면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제론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한은은 이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은행감독기구를 정부 관할아래 두려는 재경원(금융정책실)의 음모라고 규정한다. 한은은 지난 50년 출범할 당시 에는 제도적으로 상당한 독립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지난 62년 재무부 장관이 의장을 겸하는 금통 위가 신설되는 등 급속하게 예속화의 길을 걸었다. 정부주도의 불균형 성 장정책을 추진하는데 한은 독립은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은행감독 기구는 금융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은은 80년대말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정부의 완강한 저지와 3당 합당으로 결국 무산됐다. 정부는 지난 95년 한은으로부터 은행감독기 능을 떼어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은 개편안으로 오히려 역공에 나섰다. 한은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됐으나 야당과 여론의 반 대에 부딪혀 통과에는 실패했다. 한은 부서장들은 이번 개편안이 지난 95 년 재경원 안보다 더욱 개악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경원·한은 싸잡아 비난도
금융개혁에 대한 공감에도 이번 정부의 개편안은 추진과정에서부터 문제 점을 노출했다. 김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1월에 발족해 금융개혁안을 논 의해 온 금개위가 시안을 마련하는 과정부터 석연치 않았다. 또 이를 토 대로 강 부총리와 이 한은 총재 등 4인이 공청회나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심의 등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두차례의 밀실회동 만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결정적으로 모양새를 구겼다는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시장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중요 사안을 임기말에 무엇엔가 쫓기듯이 허겁지겁 결론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재경원은 그나마 금 개위안마저 개악했다”고 말한다. 재경원과 한은의 첨예한 대립 뒤에는 상호불신과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부서 이기주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며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감독기능 수행방식을 놓고 재경원과 한은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며 세계 각국 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아전인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94년 제6차 중앙은행 세미나에서 밝 혔듯이 통화신용정책과 은행감독기능간에 상호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그러나 은행감독기능을 어느 기관이 장악하는가 하는 문제는 중앙은행 의 독립 여부, 통화신용정책과 금융감독정책간의 조화, 인력 및 자원의 적적성, 금융국제화와 및 정보시스템의 발달 정도 등 각국이 처한 환경이 나 여건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라고 말한다. 또 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정작 금융감독을 받는 금융기관들이나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의 견은 철저히 무시됐다.
첫단추부터 잘못 낀 이번 개편안이 국회에 상정돼 관련법안이 통과되기까 지는 큰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6월 임시국회의 개회 자체가 여야대립으 로 불투명할뿐만 아니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부안에 반대하면서 다음 정부에서 신중하게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정부 관치금융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있는 것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