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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1997년06월26일 제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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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시인·상지대 교수
“현대는 개성시대”라는 말은 가장 진부한 표현들 중의 하나이다. 적극 적으로 해석할 경우, 이 말은 현대인들이 기존의 가치기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를 실현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할 줄 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개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확실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 는 자아의 변별적 특질을 의미한다. 사회제도의 억압을 극복하고 자신이 세운 원칙에 근거하여 실현하는 ‘자기다움’. 자유로운 자아의 독립적 자기 완결성.
‘튀는’ 게 정말 ‘개성적’인가
표면적인 여건만 살펴보면, 현대는 개성을 실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대 처럼 보인다. 종교며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 서사들이 사라지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적 억압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절대적인 물질적 궁핍도 사라졌다. 개인은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절대적인 기 준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전 시대에 비하면, 개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자 유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쓰이고 있는 ‘개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적 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신세대 용어로 흔히 “튄다”고 표현되는 바의 것이 대체로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 는 ‘개성적’이라는 수식어의 내용이다. 그런데 ‘튀는’특질이 정말 ‘ 개성적’인 것일까?
‘개성적’이려고 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모순에 가득찬 것이다. 현대인이 개성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자아의 존재감을 확보하 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그만한 생활을 매일처럼 계속하는 그만그 만한 사람들. 그런 흐릿한 배경으로부터 ‘나’라는 개체를 ‘튀게’만들 기. 그것이 이른바 ‘개성의 추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대인은 집 단적 일상성을 용감하게 떠나지 못한다. 남들과 다르고 싶어하면서도 남 들과 비슷해지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그것은 이미 사회의 상징조작이, 평범한 개인이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규모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 다. 도태를 각오하지 않으면, 조작된 상징의 벽을 뚫어낼 수가 없다. 진 정한 의미에서 개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극소수인 것은 그 때문이다. 모든 것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욕망마저도 대대적으로 조작되 는 거대 사회 안에서 진실로 개성적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 하다.
현대적 의미에서 개성의 추구란 가장 손쉬운 의미에서 감각적으로 ‘첨단 ’에 있는 느낌의 수준에서 머물고 만다. 그것도 가장 물질적으로 확인하 기 쉬운 ‘유행’, 즉 겉모양 꾸미기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다. 우리나라 에서 이른바 가장 ‘개성적’이라는 스타들은 유행에 맞는 옷차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 외에 아무런 다른 뜻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 개성은 움직임의 폭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전체적인 유행의 흐름 안에 서 조금 독특한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한번 눈여겨보라. 개성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똑같다 . ‘유행’은 개성이 아니라, 오히려 몰개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한번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십여명의 소녀들이 하나같이 앞머리의 똑같은 장소에 똑같이 하얀 핀을 꽂은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소녀들은 또 다른 이상한 교복으로 바꾸어 입기 위해서 교복을 벗어던진 것일까?
쇼프로 몽땅 없앴으면 좋겠다
‘패션’을 열심히 쫓아다니는 세대가 10대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의미에 서 두렵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법석이 실은 10대들의 자기정체성 확 보에 대한 욕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 이다. 현대사회는 그들에게 모델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이 기껏 베낄 수 있는 것은, 제 또래의 반짝 스타들 뿐이다. 사유가 빠진 텅 빈 푸대자루같은 스타들, 만화같은 옷차림과 행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 어대는데 생각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형편이니 그들이 오랫동안 장 수하는 스타들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들이 몸을 흔들어대는 동안, 누군가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번다. 그리곤 재빨리 버린다. 끊임없이 새로 운 스타들과 유행이 만들어지고, 10대들은 철없이 그걸 흉내내느라 정신 없다. 그 사이에, 이미 다른 유행은 준비되고 있다. 그래야 또 돈을 버니 까. 10대들은 분홍신을 신은 동화 속의 딱한 소녀처럼 영원히 춤을 멈추 지 못한다.
그리곤, 한쪽으론 그렇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문화만 만들어서 아이들에 게 제공한 어른들이, 그렇게 해서는 돈을 챙긴 어른들이 그 문화를 보고 자라 병든 아이들을 야단친다. TV의 쇼프로들을 몽땅 없앴으면 좋겠다.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어느 나라의 어른들이 그렇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이들 주머니를 털어먹는단 말인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