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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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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루탄 연기에 휩싸인 한양대 정문. 정부의 원천봉쇄로 출범식이 무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강위원)의 출범식이 정부의 원천봉쇄 로 파행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지난 87년부터 시작된 전대협 6년과 9 2년부터 시작된 한총련 5년을 통틀어 11년만에 처음으로 출범식이 공식적 으로 치러지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연대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정 부의 강압조처다.
읍단위까지 경찰 배치 상경 원천봉쇄
이번 정부의 대응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강도가 높았다. “11년의 역사 동안 올해만큼 비열하고 부당한 탄압은 없었다”는 한 한총련 간부의 지 적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질만한 수준이다. 그는 또 “물리적인 힘에만 의 존한다면 억지로라도 뚫고 들어가서 행사를 벌일 수는 있겠지만 전체 국 민들이 한총련을 보는 시각을 고려해 무리한 진입은 시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물리적인 충돌을 피한 이 방식은, 재야운동세력 안에서 비교 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한총련의 자체 판단이다. 지난해 연대사태 이후 극도로 나빠진 한총련과 학생운동에 대한 일반국민의 인식을 돌리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둔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한총련은 지난해 연대사태 이후 손실된 조직역량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행사 직전에도 세명대와 강릉대 총학생회 의 한총련 탈퇴 선언과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출범식 불참 선언 등 한총련 으로서는 결코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이런 불리한 조건을 뛰어넘기 위 한 열차 강제 정차 및 게릴라식 거리투쟁 등 한총련의 대응 역시 강압적 인 것으로 비춰졌다.
출범식은 한총련이 벌이는 행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한총련 안에서는 범민족대회는 1만5천명, 출범식은 4만~5만명이 공식처럼 돼 있다. 올해 모인 학생들의 수는 다른 대학에 결집한 학생들과 거리로 나온 학생들의 수로 미뤄볼 때 대략 2만명 안팎이라는 것이 한총련의 자체 추산이다. 이 에 앞서 경찰은 이번 행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지방의 읍단위 철도역과 모든 버스터미널을 봉쇄해 학생들의 상경을 막았으며 이 과정에서 남총련 정기찬(24) 의장이 붙잡기도 했다.
한총련의 한 핵심간부는 “김영삼 정권의 탄압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 은 것은 대선자금 공개와 하야 요구를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집단이 한총 련이라는 사실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정권의 한계와 비민주성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제기하고 퇴진을 요구했던 것도 학생운동 이고, 현재 문제가 되는 대선자금의 공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 게 요구한 것도 학생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장 민감하고 대중적인 이슈를 전면에 제기했음에도 시민들 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또 오히려 한총련이 이들 문 제를 앞장서 제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중들의 움직임을 주저케하고 있 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만큼 한총련은 여전히 ‘모험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6, 7월 정권퇴진 운동으로 발전시킬 것
한편 한총련은 오는 6, 7월을 거치면서 김 대통령의 하야와 즉각퇴진 구 호를 전면에 내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총련의 한 간부는 “대선자금 과 한보비리에 연루된 김 대통령은 현행범이며 범죄자이며 따라서 조기퇴 진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총련의 방침이 얼마나 폭발 력을 가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대선자금 해법을 밝히는 김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에 국민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에 미뤄볼 때 앞 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보다 적극화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과연 한총련 이 이번 ‘퇴진 투쟁’을 통해 학생운동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정부 당국에서는 한총련 자체에는 큰 무게를 두고 있 지않지만 그들이 지필 불씨가 대중에게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 정도 로 대중의 정서가 인화점에 가까왔다는 점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눈치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