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이근안 추적! 시효는 없다

(사진/고문경찰관 이근안(오른쪽)을 쫓는 고문피해자들과 민간단체의 눈길이 계속되고 있다. 양심수 가족들의 모임인 민가협은 현상금을 3백만원으로 올리고 국민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이근안 얼굴과 비슷하기는 한 데 나이가 너무 젊은 것 같은데….”

지난 5월27일 오후 1시께 강원도 정선군의 한 오지에 있는 주유소 내부를 쌍안경으로 주시하던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 보좌관인 원순용(35)씨는 같이 간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 잔뜩 실망감이 묻어있었다. 원씨는 동료 와 함께 오전 11시부터 주유소 건너편 산에 엎드려 고문경찰관 이근안씨 가 쌍안경 망원렌즈에 포착되기를 기다리며 2시간이나 잠복해 있었다. 그 러나 렌즈에 잡히는 인물은 이근안씨와 옆 얼굴모습 및 큰 손은 비슷했지 만 진짜 이근안은 아니었다.

강원도 정선에 이근안이 있다

원씨는 동료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이근안이라고 제 보받은 인물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을 조사했으나 역시 이근안이 아닌 것 으로 확인됐다. 의심했던 사람은 나이도 49세인 데다 이 마을에 온지 13 년이나 됐고 이름도 달랐다. 고문경찰관 이근안씨는 현재 59세로 9년 전 부터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유소에 기거하는 사람과 동일인일 수 없 었다.

원씨가 강원도 정선의 오지에 있는 주유소에까지 내려온 것은 며칠 전 한 시민으로부터 이씨가 주유소에 은신해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를 검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원씨는 피곤함도 잊은 채 이날 새벽 5시 서둘러 쌍안경과 카메라 등을 준비해 서울에서 승용차를 끌고 내려왔 다. 원씨는 “비록 이근안이 아니어서 실망했으나 아직도 이근안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근안이 국민들 사이에서 절대 잊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근안 체포에 대한 강한 집념을 포 기하지 않았다.

고문경찰관 이근안씨를 잡기 위한 고문피해자들의 추적은 그동안 소리없 이 계속 돼왔다. 일반인들로부터의 제보도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씨에 대한 제보는 이번 처럼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 등 김씨로부터 고문을 당 한 피해자들에게 직접 오거나 언론사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의 이씨 관련 제보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로 들어온다. 민 가협이 지난 89년 2월 이씨에 대해 현상금 1백만원을 걸고 자체 공개수배 를 하는 등 끊임없이 이씨를 추적해왔기 때문이다. 민가협은 이씨에 대한 현상금을 그 뒤 3백만원으로 올렸다.

이근안씨가 지금 88년 12월 잠적한 이후 지금까지 민가협으로 들어온 제 보건수는 모두 10여차례이다. 민가협에서는 지난 91년 4월 경기도 민통선 지역에 이씨가 숨어 있다는 제보를 받아 7~8명이 즉시 출동하기도 했으나 역시 이씨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이전에도 민가협은 10차례의 제보에 대해 현장확인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민가협은 올들어 이씨를 체포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씨의 공소시효가 오는 99년 8월 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민 주주의에 대한 고문의 상징 이씨는 법적 처벌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 난다.

“검·경 못믿는다” 민가협 국민감시 9년

민가협이 이처럼 이씨 검거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범죄자 검거에 1차 책 임을 지고 있는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검찰은 김 대통령 취 임 초기인 93년 3월초 서울지검에 특별검거 전담반을 구성해 이씨 검거에 나서기도 했으나 그뒤\ 시들해졌다. 경찰도 지난 95년 1월 서울 강남구 안마시술소와 94년 서울 구로구 개봉2동에 이씨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 고 출동했으나 허위제보로 밝혀졌다. 그 뒤 이씨를 검거하기 위한 검·경 찰의 특별한 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검·경의 이런 소극적 태도로 인 해 수사기관들은 국민들로부터 이씨를 ‘안 잡는 것인가, 못 잡는 것인가 ’라는 불신을 받아왔다.

이씨는 경기도경 공안분실장이던 지난 88년 12월 전기고문기술자라는 사 실이 밝혀진 뒤 잠적해 지금까지 행적이 묘연하다. 이씨는 지난 89년 1월 6일 경찰에 의해 전국에 공식 지명수배됐다.

민가협에서는 시민들의 제보없이는 이씨 검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가협은 이씨 검거를 위해 ‘이근안 제보전화’(02-763-2606 )도 가설해 놓고 있다. 민가협 총무을 맡고 있는 남규선(여·35)씨는 “ 제보가 들어오면 반드시 출동해 확인을 한 뒤 제보자에게 그 결과를 알려 주고 있다”며 “공소시효 이후에도 이근안에 대한 추적은 계속될 것”이 라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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