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선동열의 찬란한 부활

(사진/좌절을 딛고 부활에 성공한 선동열. 화려한 강속구로 일본야구계 타자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28일 일본 오사카 고시엔구장. 불펜에서 몸을 풀던 선동열(34)에 게 팀을 구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선동열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 으로 마운드에 올라섰다. 다 이긴 경기를 막판에 2점차로 뒤집힌 한신 타 이거즈의 선수들은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8회말 1사에 주자는 없는 상 황이었지만, 운동장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마침 대타로 나선 한신의 용병 하이야트의 눈초리는 특히 매서웠다.


선동열이 나서면 주니치는 지지 않는다

그러나 선동열은 흔들리지 않았다. 볼카운트 2 대 1에서 쳐보란 듯이 결 정구를 날렸다. 시속 1백32km의 슬라이더. 공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포수 의 미트에 박혔고, 하이야트의 방망이는 무참히 허공을 갈랐다. 이어지는 한신의 타선도 그의 강속구 앞에선 무력했다. 선동열은 이날 5명의 타자 를 맞아 한개의 사사구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팀의 승리를 지켰 다. 올 시즌 15번째 세이브를 챙기는 순간이었다.

‘나고야의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선동열이 화려한 부활의 강속구를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주니치 드래곤즈의 구 원투수로, 시즌 초반부터 쾌조의 세이브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나고야 의 태양’이라는 세간의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즘 그에겐 ‘나고야 의 수호신’이라는 말까지 따라붙는다. 지난해 지극히 부진한 성적으로 노장의 몰락을 점치게 했던 그였기에, 그런 부활은 눈부시기까지 하다. 선동열의 부활은 올 시즌 그가 일구고 있는 기록으로 증명된다. 그는 5월 31일 현재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15세이브를 구가하고 있다. 그동안 17 경기에 나서 21이닝 동안 2자책점만을 허용했을 뿐이다. 특히 5월에는 8 세이브를 올려 센트럴리그 월간 최다기록(9세이브)을 넘봤다. 방어율은 0 .86으로 철벽 마운드를 자랑한다. 지난 5월22일 처음으로 0점대에 진입한 이후 꾸준히 기분좋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때문에 요즘 일본에선 “선동열이 나서면 주니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불패의 신화가 번지고 있다. 선동열이 국내에서 활약할 당시 불펜에서 몸 을 풀기만 해도, 상대팀 감독이나 선수들이 지레 경기를 포기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다. 특히 나카야마에서 선동열로 이어지는 투수교체 는 주니치 필승의 카드로 통한다. 주니치의 한 관계자는 “선동열에 대한 다른 구단의 경계심은 공포에 가깝다”고 말한다.

선동열이 만약 이런 추세를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일본 야구사에 는 새로운 대기록이 새겨진다. 시즌 최다 구원, 첫 40세이브 고지, 그리 고 최저 방어율. 지금의 성적대로라면 선동렬은 이번 시즌에서 48세이브 를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88년 세워진 일본 최다기록(37세 이브)을 훨씬 웃도는 성적이다. 방어율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남은 경기 에서 방어율을 조금씩만 더 낮춰가면, 지난 43년 세워진 일본 최저기록(0 .73) 갱신도 가능하다. 물론 정규리그 1백35경기 가운데 42경기만이 치러 진 상황에서 그런 기록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섣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선동열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1년 전인 지난 95년 국내에서 0.49라는 경이 적인 방어율을 기록한 바 있다.


“부진 씻자” 스스로 혹독한 훈련 자청

하지만 그의 부활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부활 뒤에 숨어 있는 좌절의 상처다. 한국 야구의 자존심과 희망을 안고 일본에 진출한 선동열에게 지 난해는 돌이키기 싫은 악몽이었다. 한국에선 ‘국보’요 ‘폭격기’로 통 했던 그였건만, 일본에선 글라이더 수준에 그쳤다.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서 그의 위치는 초라하기조차 했다. 고작 38경기에 나서 54이닝을 던져 5 승1패에 3세이브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방어율은 5.50에 머물렀다. 성적 부진으로 2군으로 밀려난 그에게선 예전의 위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 야구전문가들은 지난해 그의 부진이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했 다고 지적한다. 먼저 일본 타자들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는 “일본 타자들은 현미경식 야구를 한다. 투수의 사소한 버릇 까지 철저히 분석해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다. 지난해의 선동열은 그런 미 세한 야구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당시 선동열은 투수로 서 훈련도 충분하지 못했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도중 모친상 을 당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팔꿈치 부상까지 입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한국의 최고투수라는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부 담감이었다. 심리적 안정이 필수적인 투수에게 그것은 처음부터 타자에게 지고 들어가는 시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동열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면서 사람들의 애정도 식었다. 일본 진 출 초기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매달렸던 언론들도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 져갔다. 대신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서 호투하고 있던 박찬호가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선동열은 퇴물 취급을 받았고, 한국 야구의 부 끄러움으로 전락했다. 야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선동열의 재기를 기대하 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야구해설가는 “대놓고 말은 못했지 만, 속으론 선동열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봤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노장의 부활 조짐은 올초 스프링캠프에서부터 느껴졌다. 스프링캠 프 내내 선동열은 ‘자신감’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스스로 공에 자신 감을 갖지 못하면 공이 제대로 갈 리가 없다”는 거였다. 선동열은 그 자 신감을 얻기 위해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이래 가장 혹독한 훈련을 감내했 다. 지난 2월1일부터 문을 연 훈련캠프에서 그는 유일한 외국선수였다. 주니치에서 외국선수가 캠프 첫날부터 나오기는 선동열이 10여년 만에 처 음이었다고 한다.


“선동열은 일본 프로야구의 보물”

그로부터 4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 선동열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같은 폼 에서 공의 속도를 늦춰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과 직구처럼 날아 가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도 힘을 더해가고 있다. 주니 치도 이젠 선동열의 손에 팀의 운명을 건다. 주니치의 한 관계자는 “선 동열이 일본 프로야구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선동열 은 이미 빛나고 있다. 좌절을 딛고 부활하는 노장의 투혼은 언제나 아름 답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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