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북에서온 편지 ②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북에서 온 편지(2)

인민공화국에 인민은 없습니다

‘식량공급 안내표’는 귀맛만 돋우는 ‘안심표’

(사진/빈 들녘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아이. 편지는 닭모이 주듯하는 식량 배급을 타러 갔다가 어린아이가 압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한다. )

나는 종종 ‘안심표’라는 말을 듣는다. 허위와 기만으로 근로백성을 우 롱하여 주지도 않는 식량을 공급한다고 하면서, ‘식량공급 안내표’를 발급한다. 그것마저도 월에 20일뿐이요, 15일뿐이요, 8일뿐이요. 여론을 호도하면서 굶주려서 일만(하러) 나오는 사람의 귀맛을 돋구어준다.

출근한 자에 한해 4일분 2k200g씩 주니 먹지 못해 일 안 나온 이, 굶주려 병들어 못 출근하는 이 등등은 주지 않고, 한달에(97년 1월에 한함) 2k20 0g 준다고 그 누가 간부를 믿겠는가. 백성들은 행여나 하고 주려니 하면 서 병석에서 기어나와 출근하여도 그것마저 주지 않으니 누가 누구를 믿 겠는가.

출근하는 자에 한해 주는 것마저도 제 량이 다 구비되지 않아 한움큼의 썩은 강냉이 가루를 타려고 붐비며 싸우는 광경은 볼수록 가관이다. 오죽 하면 업었던 아이가 배급소에 갔다가 사람들의 혼잡과 압박에 끼여 죽었 겠는가. ○○배급소. 업은 아이가 죽어도 모르고 2k의 배급을 타려고 하 는 아이 어머니. 그는 배급도 떨어져 못 타고 불쌍한 아이만 저 세상으로 갔다.

어찌 이뿐이랴. ○○○○배급소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붐비고 밀치는 통에 54세의 안로인(할머니)은 손에다 배급카드와 주머니를 쥔 채 쓰러져 밟혀 죽었으니 밟혀죽은 안로인의 참상은 어떠하며, 그가 얼마나 굶고 허기졌 으면 제몸 하나 운신 못했겠는가.

민심은 한골로 흘러 주체철학의 인간중심을 과연 누가 믿으며 인민대중중 심의 우리 사회주의를 믿겠는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안 들을 것이요, 메주로 장을 지진대도 안 들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뿌려대는 ‘안심표’에 기겁하여 한움큼이라도 하면 ‘ 닭모이’ 주듯하는 배급은 차라리 주지 말았으면, 차라리 죽으면 또 이렇 지 않겠는가 하고 이 세상을 저주한다.

병원치료 받으려면 약 사다주고 뇌물써야

어느 하루 병원에 현장에서 일하다 다쳐 골절된 환자가 들어갔다. 그러나 병원은 환자를 받아놓고 환자의 주인(보호자)더러 환자를 치료하려면, 필 요한 소독제, 붕대, 페니를 사오라고 했다. 평백생이 생계도 유지하기 힘 든데 어디서 수백 수천원어치 약을 구하여 사온단 말인가.

주인은 “돈이 없는데 어찌한다” 안타까워하지만 병원의 의사는 “그럼 할 수 없지” 하면서 되는 대로 수술하니 그것은 보통 현상이고 례사로운 일이다.

주인의 안타까운 그 영상, 그 가슴에 피 타는 그 마음 누가 알아주랴. 장 에는 수다한 약이 팔리지만 병원엔 왜 약이 없는가. 한쪽에서는 환자의 약을 구하라고 호통치지만 관권과 직권이 있는 자는 병원의 ‘진료과’에 서 ‘간부치료’ 의사의 아부 아첨에 호의호식하면서 고급약을 쓰고 만포 식하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 돈 없는 자와 직권 관권없는 자의 모순 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수술한 뒤에는 (의사)선생이 수고했다 가산을 팔아 대접하고 약 써달라고 먹여주니 백성의 모습은 어떠하랴. 수술한 뒤에도 약도 없는 데다 땔 것 이 없어서 량(냉)장고에서 떨다 못해 석유곤로로 호실(병실)을 덮이자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석유도 없어서 장거리에서 암거래로 병당 25원씩 사 서 쓴다. 하루 한병 모자라니 어떻게 입원시키는가.

무상치료 허울은 어디로 갔는가. 결근자는 쌀을 주지 않으므로 외래의사 한테 진단서를 받으려 하나 병 걸려도 진단서를 떼주지 않아, 3일 진단에 30원짜리 술 한병씩 고여야(바쳐야) 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진단서의 자유란방을 막는다고, 공장의 단위책임자와 당 비서의 치료하여도 좋다는 의뢰서가 있어야 보아주니, 환자는 죽어갈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밤새 불시에 병 걸려 병원에 가도 의뢰서가 없어 진단 서를 떼주지 않아, 무단으로 휴가갔다 하여 잘리우고 쌀도 잘리우니 가련 하기 그지없다.

학교가 아닌 장터로 향해야 하는 학생들

(사진/대기근은 내일을 책임져야 할 아이들까지 좀먹고 있다. 한참 배워야 할 학생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들녘을 뒤지거나 `꽃제비'로 떠돈다. )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것이 의무이요 직책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학생 들은 기아로 인한 가정 파산으로 길가의 풀처럼 버림받아 막바지에서 허 덕이고 있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어린 것들은 낯에다 검댕이 칠한 부엌데기처럼 장마당과 대합실에 모여들어 쓰리 절도로 생계를 유지하니 어찌하랴. 다년간의 미공급으로 지칠 대로 지친 어린 것은 고사리 같은 손을 뜯고 먹을 것을 구걸하거나, 몇알의 사탕알을 쥐고 애처롭게 사달라 고 하는 그 정상 눈 뜨고 볼 수 없어 보는 이들은 혀를 찬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는커녕 장에 나가는 것을 생의 터전으로 여기고 눈 오나 비 오나 몰려서니 그 모습 가련하기 그지없다. 한 어린 것이 장꾼들 의 상품을 엎질러 놓으면 여기저기서 꽃제비들이 모여들어 덮치고 차고 그러면서 여윈 개가 똥 만나 싸우듯 물고 뜯고 쥐어박는 것은 볼수록 가 관이다.

어린 것들이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자동적으로 조직책임자가 나와 호의호 식하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니 누가 과연 단속한단 말인가. 안전원 책임 자가 절도품에 매수되어 춤을 추니 국가란 명색이요, 법은 만민에게 평등 하고 공정해야 하지만 특권권세자들의 부속물이 되었으니 어찌한단 말인 가.

대학생들은 먹을 게 없어 휴학하고, 땔 것 없어 휴학하니 이 나라 앞날의 기둥이 시들어가고 쓰러져가니 21세기 조선은 어찌 된단 말인가. 공부해 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이 세상, 세계 인류 문명 속에 자랑스런 조선의 내 일은 불보듯 뻔하다.

“배워서 무엇하니” 이것은 공통어로 되었다

유치원에 가야건만 유치원을 운영할 쌀이 없어 못 보내고, 학교에 가야 할 어린 것이 꽃제비가 아니래도 몇알의 사탕봉지를 쥐고 팔러 다니며, 중고등학교 학생은 원가가 먹지 않는 나무를 산에서 해다가 근근히 살아 간다.

대학생은 일공급 식량이 없어 휴학하지 않으면, 여름엔 7일간 시간을 주 어 일인당 칡뿌리 10k 회수운동하고, 겨울이면 땔 것이 없어 3개월간 방 학하니 나라의 과학인재를 어디에서 사오는가.

나이 많은 이는 통탄하고 땅을 치건만 듣는 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 있 는가. 종속정치에 얽매인 만백성이 하늘에 대고 하소연한들 무엇하랴. 왕 조세습으로 물려온 례습인가. 귀가 있어도 듣지 말아야 하며, 입이 있어 도 말 못하고, 눈 있어도 보지 말고 지나야 하는 만민의 피 타는 가슴 그 누가 풀어주랴.

해외로 빠지는 국가기간 산업의 동과 설비

사람들은 한끼의 강냉이도 없다보니 이래도 저래도 죽을 바에야 하는 심 정으로 국가 설비에 손을 대 해외에 팔고 있다. ○○에서는 동철 k에 70 원, ○○○나 ○○은 1백40원 한다고 하면서 돌아가는 전동기를 해체하여 구리를 뽑아 팔고, 용접기, 자동기의 라제따를 해체하여 파는 것은 상례 로 되었다. 특히 살아있는 전기선을 자르는가 하면, 전기기관차의 전원선 을 잘라 파는 등 무서운 일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라에서 포고를 내려 일체 전기선과 동을 팔게 아니 되었건만 막다른 골 목에 이른 도둑놈들은 공장과 기업소에 뛰어들어 훔쳐 팔아 생명을 연장 하고 있다. (97년) 1월20일 이 놈도 나라의 중앙정부선을 2백50m를 잘라 팔다 현지에서 걸려 충상당하였다.

한톤도 아니고 수톤의 동을 기차에 실어 파는 놈이 있는데 과연 혼자서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열차승무안전원을 끼고 변방경비대 병사와 군대를 끼고 자유로이 한다. 공장은 폐업되고 사람들은 실업에 불과하다. 련간 로임을 8개월 지나도 주지 않고 쌀은 배급기준량의 ¼뿐 아니 주니 어찌 살며, 살려 하겠는가.

나라의 동맥 철도에 널려 있는 죽음들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다. 철도의 정상화는 나라 생산의 정상화라 할 것이 다. 하나 조선의 철도 동맥은 마비되어 모든 경제는 파산되고 백성은 파 산 속에서 “실업되어” 거리에서 방랑한다. 하루면 오고가야 하는 손바 닥 같은 조선땅에 4일이면 정상이요, 7일이면 보통이고, 10일이면 괜찮다 고 하니 나라의 경제는 어떤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하여 며칠에 한번 달리는 렬차는 승객들로 차 넘쳐 창문은 출입문이요, 출입문은 쓰리 절도 강도의 문이라 하니 승객들은 오를 길 없어 창문으로 오르려 해도 돈을 쥐어주어야 하다보니 달리는 렬차의 유리가 있을 리 없 고, 려행질서야 어디로 가고, 매식과 식사는 상상도 못하며, 대소변을 보 려 해도 선 채로 해야 하니 이 세상 그 어디에 이런 세상망칙한 일 있으 랴.

승객들은 차가 넘쳐나 더 오를 길 없어 렬차 바구니 위에 타고 가다 얼어 죽고 고압전기에 감전돼 죽은 이 한둘인가.

어찌 이뿐이랴. 대소한에 차굴(터널)에서 떨어지는 관수가 얼어붙어 고드 름이 생겼는데, 렬차 위에서 가던 자 고드름에 걸려 떨어져 죽은 자 얼마 며 몸에 찔려 죽은 이 얼마이랴.

하여 1월 대소한, ○○~○○ 사이 차굴 한곳에서 단 하루에 7명의 죽음이 널려져 있었으니, 모두 몇명이나 죽었으며 이제 또 얼마나 죽어야 하는가 .

설 앞두고 숨진 효자, 살인자는 누구인가

북방의 겨울은 여느 때와 달리 더 추웠다. 1월4일 대소한의 겨울이라 자 기 본능을 알려줄 듯 칼바람을 몰아오면서 기승을 부렸다. 순찰을 하던 안전원이 ○○기계공장의 담장 옆 도로에 쓰러져 있는 정체불명의 기골장 대한 남자를 보았다. 전지로 낯을 보니 범상하게 동파되어 부풀은 낯과 피멍이 든 손이 보였다. 사체를 확인한 뒤 ○○○○병원으로 업고 갔으나 이내 정체불명의 남자는 숨을 거두었다. 더덕더덕 기워입은 남루한 옷, 신발도 없이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발, 피멍 든 손은 거렁뱅이 청년이었다 . 호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난감한 처지. 과연 죽은 자는 그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지 알길이 없었다. ○○시의 ○○만 인구를 조사하여 2일 만에 찾은즉, 과연 (그는) 죽어야 할 처지였던가.

그는 당년 25세 ○○○○의 ○○○○ ○○○○ 운전사 ○○○. 량부모를 모시고 사는 막내 세째인 그는 말없이 부지런하고 어리무던하여 사람마다 호평과 칭찬이 자자했다.

설을 앞에 둔 12월29일, 그는 부모에게 설에나마 밥 한끼 대접하려고 이 웃의 돈 1천5백원을 꾸어 ○○에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2월30일 되 돌아 떠났다. 과연 ○○○는 어찌하여 죽었는가. 1월6일에 장례를 치르고 보니 민심은 소란하였다. 누가 ○○○를 죽였는가.

민심에 못 이겨 도에선 의학감정을 시작하기로 하고 시체를 11일에 파내 어 동상된 ○○○는 다시 도살장에 올랐다. 부검하니 ○○○의 내장에는 풀 한 오라기, 쌀 한 톨이 없어 모수가 유착(맞붙음)되었다. 의학감정에 ○○○는 굶어죽었다고 선언됐다. 그러나 죽었다고 선언된 ○○○씨는 자 기가 입고간 옷은 누군가에게 다 빼앗기고 헌옷을 걸쳤고 현금 1천5백원 도 온데간데없었다.

자기 집을 4백m 가량 눈앞에 두고 ○○○는 눈도 감지 못하고 이 세상을 저주하면서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받고 저 세상으로 갔다. 죽음을 눈앞 에 둔 ○○○는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그 모든 것을 환상으로나마 눈에 담 고 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