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주사파’가 아니라는 확인받았죠

“박홍씨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판결이 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십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또다시 케케묵은 ‘주 사파 타령’을 되풀이하니 이젠 분노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95년 6월 한국통신노조의 파업 당시 노조 교육홍보실장을 맡았던 그 러나 지금은 해고 노동자인 도남희(49)씨. 그는 비록 1심에서 승리를 거 뒀지만 지난 2년여 동안을 ‘북한의 배후 조종을 받는 세력’으로 매도당 해온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울화가 치민다.

“박홍씨로부터 ‘주사파 배후’ 운운하는 폭력을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 닌 것 같아요. 우리 노조 사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할 때면 모두 속이 후련하다고들 그래요.”

파업 당시 한국통신노조는 한통의 사실상 첫 민주노조였다. 그래서인지 교섭기간임에도 회사쪽은 노조 집행부를 고소·고발해 버렸고 졸지에 수 배자 신세가 된 그들은 사흘간의 잠적끝에 명동성당과 조계사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고달픈 기간중에 그들에겐 엄청난 언어폭력이 가 해졌다.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전복세력’이라는 ‘거창한’ 예우를 받는 가 하면, 대학총장이자 가톨릭 사제인 박홍씨로부터는 ‘주사파’ 라는 세례(?)를 받기도 했다.

명동성당에 대한 경찰 진입과 연행에 이어 회사쪽의 무더기 해고가 뒤따 랐다. 그것도 서른한명이 동시에 잘렸다. 그는 해고 노동자라는 현실적 고통 위에 업무방해죄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집의 아이들은 아빠가 체제전복세력이니 주사파니 해서 겁에 질려 있었고 회사에서 잘렸으니 당장 생계가 문제되고.”

그러나 그와 동료들은 패배감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박홍씨에 대해 5 만 조합원의 이름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 지난 5월2일 드디어 7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그는 박홍씨의 항소심에 보수 인사들이 대거 나서고 있지만 결국 진실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시 해고된 동료들과 함께 다시 옛 직장으로 돌아가는 꿈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전국해고노동자원상복직투쟁위 사무 실 마련을 위해 집회 현장에서 음료수 좌판을 벌이는 것도 그래서 그에겐 소중한 일이다.

김상준/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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