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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이탈리아 북부는 따로 살련다”

(사진/이탈리아 연합 지지자들이 분리독립에 맞서 수많은 깃발을 모아 놓은 산 마르코광장.)

이탈리아는 과연 남북으로 분리될 것인가?

지난 5월25일 북부이탈리아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 4백만명 의 투표자가 99%의 찬성표를 던지면서 이탈리아 ‘남북 분리문제’가 다 시 이탈리아 정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투표는 북부 독립을 주장하는 ‘북부동맹’이 밀라노 중심 롬바르디아지역과 베네치아 중심 베네토지역 등 북부지역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것이다. 북부동맹은 이 를 위해 2천2백만명이 거주하는 이곳에서 1천3백여개의 임시투표소를 마 련했다. 애초 1백50만명 정도의 참여를 예상했던 북부동맹의 움베르토 보 시 당수는 뜻밖의 호응에 득의만만 했다. 반면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이 투표가 “법적근거가 없는 선동행위”라며 진화에 바쁜 모습이 다.


4백여만명 참여, 예비내각도 발표

따라서 이날 투표에 앞서 수도를 만토바로 정하고 예비내각을 발표한 북 부동맹과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중앙정부 사이에는 앞으로 한차례 뜨거운 정치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연 2천2 백만명 중 4백만명이 참여한 이 투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물론 북부 주민 상당수는 “잘사는 북부가 못사는 남부를 먹여살리는”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4백만명의 투표를 과연 전체 주 민의 의사로 파악할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날 투표에 대한 해 석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연방제·자치확대 등 다양한 논의가 나오는 이탈리아 정체를 결정지을 핵심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9일 벌어진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 종탑점거사건에 대한 주민반응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북부쪽은 주장한다. 이날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각 산마르코 광장엔 페리호로 이동된 장갑차에 탄 8명의 ‘분리주의자’가 상륙했다. 이들은 광장의 모든 사람 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다음 99m의 종탑으로 올라갔다. 종탑에 오 른 이들은 2백년 전 멸망한 베네치아 공화국기를 종탑에 걸고 농성에 들 어갔다. 이들은 출동한 특수부대에 의해 오전 7시께 모두 체포됐다. 경찰 에 따르면, 이들은 베네치아공화국 멸망일인 5월12일까지 버텨 모든 사람 의 가슴에 베네토인의 정신을 부각시킬 계획이었다.

지난 5월15일 첫공판을 시작으로 기나긴 재판과정에 들어선 이들은 최소 15년에서 무기징역까지 형을 살 수 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테러 기도, 무장, 정부전복기도, 페리호 납치’ 등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들 테러범들이 지극히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데 우선 놀란다. 엔지니어인 바리송(39)을 비롯해 20~54세인 이들은 그 친구들조차 이런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정상 적인’ 생활인이었다. 그래서 베네치아 주민들은 이들에게서 동질감을 느 끼는지도 모른다.

지난 5월11일 저녁 한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 제작한 토론프로그램에 나타난 주민들의 의견도 대체로 이들에게 동정적이었다. 주민들은 이들이 산마르코로 가져온 장갑차는 무기거래상을 통해 산 것도 아니며 오랜 시 간에 걸쳐 화물차를 응용해 만든 것이라는 점, 페리호의 배삯을 지불했다 는 점, 이들이 3일간 먹을 빵과 포도주·연어를 가지고 종탑에 올라 단지 깃발을 달았을 뿐이며 몇시간 만에 아무 저항없이 체포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 이들에게 적용된 죄가 너무 무겁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또 북부실업 가연합에서는 이들을 위해 변호사 비용을 댈 것을 약속했으며 가족들을 돕기로 약속했다. 주위 이웃들의 온정도 쏟아지고 있다.


종탑 점거한 분리주의자에 동정적 여론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들에게 보내는 애정에는 역시 “가난한 남부와의 관 계에서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지역감정이 깔려 있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는 현재 보수의 60%를 세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이 어디에 쓰 여지고 있습니까? 정부는 확실한 성장 전망이나 정책도 없이 이 돈을 남 부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해 내 자식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8 시면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 북부사람들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움직일 준 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그렇게 해왔습니다.”

파도바에서 온 한 기술자의 말이었다.

지난 5월25일 분리독립 주민투표에 대해 정부는 “투표과정에 상당한 부 정이 있었다”면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장갑차 사건’에서도 확인된 베네치아 주민들의 분리독립 성향은 앞으로 북부동 맹 당수 움베르토 보시가 정치협상을 펴나가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될 것 임은 분명하다.

베네치아=김선아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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