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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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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세계그랑프리대회’가 오는 98년부터 한국에서 경기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난 5월25일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세계그랑프리대회 집행위원회(FIA) 버니 애클스턴 부위원장은 “1~2년 안으로 한국과 말레 이시아에 반드시 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FIA는 유럽 중심으로 열리는 세계그랑프리대회 주관기관이다. 따라서 FIA의 실력자로 알려진 애클스턴 부위원장의 발언대로라면 내년부터 한국 사람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 지는 ‘F1’의 호쾌한 자동차 경주대회를 안방에서 볼 수 있는 ‘기쁨’ 을 누리게 된다.
노동당 집권 뒤 담배업계 후원 막혀
하지만 그의 발언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본다면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동차 경주대회의 ‘아시아 진출’ 배경에는 최근 영국 집권당이 된 노동당의 ‘담배광고 금지조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이다.
영국 노동당이 집권한 지 채 3주도 안 된 지난 5월19일 영국의 보건부 장 관 프랭크 돕슨은 앞으로 모든 형태의 담배광고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 이 규제조처에는 담배업계가 제공하는 각종 스포츠 관련 스폰서도 포함 된다.
과거 보수당 정부 때는 연초업계의 강력한 로비와 끽연산업에서 나오는 세수입 및 고용문제 탓에 영국의 담배광고 규제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느슨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미온책이 공중보건을 중시하는 노동당의 취 임과 더불어 일거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당연히 의료계와 보건단체는 이 조처를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조처로 그간 담배업계로부터 막대한 후원을 받던 각종 스포츠계 특히 자동차 경주업계가 받은 타격은 결코 적 지 않다.
현재 영국에서 담배업계의 후원을 많이 받아온 스포츠는 크리켓, 골프, 아이스하키, 럭비, 스누커 등 주요 종목을 망라한다. 그러나 이중 담배업 계의 스폰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자동차 경주업계다. 영국의 자동차 대회들이 담배업계로부터 받는 후원액수는 해마다 1억파운드(1천4 백억원)가 넘는다. 이에 따라 윌리엄스, 페라리, 조던, 멕크라렌 등 유수 한 자동차 경주팀들로 이뤄진 ‘포뮬라1(F1)’은 이번 조처에 강력히 반 발하면서 담배광고 금지가 영국과 여타 유럽국가에 파급될 경우 그랑프리 경기의 유럽 내 개최지를 대부분 폐지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담배광고 금지조처는 F1쪽의 우려대로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갈 가 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유럽연합 내 담배광고 금지논쟁은 영국 등의 반대 로 실현되지 못했다. 영국 새 정부의 태도변화 이후 유럽연합은 담배광고 금지계획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선데이타임스>나 <BBC> 등에 따르면, 이에 따라 FIA쪽은 현재 유럽 12개 국, 기타 5개국에서 실시중인 세계그랑프리대회의 주체국 중 유럽국가 8 개국을 제외하고 아시아권을 대폭 늘릴 복안을 마련했다. 이미 유럽 전역 의 담배광고 금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 차원의 뜨거운 논쟁 예고
이중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아시아권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를 가장 유력한 대회 개최지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도 이 두 나라가 이르면 내년부터 그랑프리 세계대회의 개최지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해 이 뉴스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이런 계획은 담배업계의 입장과 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아시아 개도국은 선전효과가 높고 광고 규제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랑프리대회의 개최가 광고 및 자동차산업의 부양효과와 고용창출 이라는 장점이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영국의 보건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 이미 사면초가에 몰린 서구의 연초산업을 아시아권에서 스포 츠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받아들인다면 국민건강 차원에서 분명 역설이 아 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영국 노동당의 이번 담배광고 금지조처가 앞으로 세계 담배업계와 한국 금연단체들의 뜨거운 논쟁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