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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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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도덕관은 미국인 다수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 클린턴 부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정치적 동반자다.)
“성추행 행위는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클린턴 대통령 이 정치적 타격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지난 5월27일 미 연방대법원이 “현직 대통령이라도 성추행 사건 에 대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이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대 체적 시각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지난 91년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 대통령이 호텔에서 오럴섹스를 강요했다며 재판을 요구한 유부녀 폴라 존스(30)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민사소송에서까 지 면책특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다.
성추행 사실이라도 정치적 타격은 없다
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설 가능성을 연 이번 판결 뒤 양 진영의 설전은 실 로 대단하다. 폴라 존스쪽 변호인단은 “앞으로 1년 안에 재판을 시작” 하도록 하고 “재판과정에 클린턴에게 성추행을 당한 또다른 여인을 증인 으로 내세우겠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클린턴 변호인단도 “대통령이 존스양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법 원 판결로 클린턴 대통령이 양보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경대응 자 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양쪽의 주장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 는 것일까. 사실 클린턴 대통령이 엄청난 변호사비를 들여 ‘폴라 존스 스캔들’ 재판을 임기 뒤로 미루려 한 것도 국민들의 비판을 고려한 것이 다. 이는 경우에 따라 큰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 뒤 시민의 반응은 대체로 이 스캔들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쪽이었다. 사건이 무혐의로 조용히 덮여지기를 바라는 클린턴쪽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나는 폴라 존스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어요. 그러나 나는 그의 이 야기를 믿는 편입니다. 여성들은 성적 학대에 대한 부분에서는 거짓말하 지 않습니다. 어떤 여성이 그런 형태의 이야기를 지어내서 자기자신을 매 춘부로 만들겠습니까.”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는 트레이시 워드(30)의 견해는 이런 의견 중 대표적인 것이다. 남부 텍사스주 주도인 오스틴에 거주하는 여사원 미셸 해밀턴(37·여)도 처음엔 폴라 존스의 말을 의심했 지만 지금은 믿는다고 밝혔다.
“이번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처음에 는 폴라 존스를 의심했죠. 하지만 그가 대통령의 성기를 묘사할 수 있다 고 밝힐 정도니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로버트 채플(68·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 레스 거주)은 좀 색다른 각도에서 이번 스캔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 “폴라 존스는 꽤 맹하게 생겼고 차림새도 매춘부 같잖아요. 아무리 봐도 그녀가 정숙하게 처신할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저는 그래서 스캔들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맹한 폴라 존스이기에 이런 멍청한 사건 에 연루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하지만 성추행이 진짜라 할지라도 클린턴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채플은 “높은 변호사 비용 정도가 클 린턴이 받을 손실”이라고 말했다.
“성추행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타격은 없다”는 반응은 어쩌면 지극히 미 국적일지 모른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가정주부 마사 하든(52)은 오히 려 클린턴이 동정표를 얻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정치적 타격이라뇨. 아니 클린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클린턴과 같은 도덕관을 갖고 있을 것 아닙니까. 사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런 ‘ 부도덕한 행동’을 해오고 있어요. 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오 히려 클린턴을 동정하리라 생각해요.”
샌안토니오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크리스 번래디(48·여)는 이런 일이 어 디 한두번이냐고 반문한다.
“클린턴 대통령과 관련된 스캔들이라면 이미 여러 차례 있었잖아요. 지 난 94년 1월에는 <인콰이어리>라는 잡지가 가수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스 캔들을 폭로했고, 또 미스 아칸소 출신 샐리 밀러 퍼듀(38)도 클린턴과 밀애를 나눴다고 폭로했었죠. 그때 어디 정치적 타격이 있었어요. 저는 클린턴이 이 일도 무사히 넘기리라 생각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의혹… 공화당 음모설도
(사진/클린턴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폴라 존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이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클린턴보다 오히려 ‘성 추행의 피해자’인 폴라 존스에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샌안토니오에서 법대 박사과정에 있는 오드리 카(35·여)는 폴라 존스가 ‘사건 발생’ 뒤 몇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 문제를 ‘폭로’한 데 의문 을 제기한다.
“나는 왜 폴라 존스가 이 문제를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일하고 있을 때 터뜨리지 않았나 궁금해요. 나는 폴라 존스는 이 스캔들과 관련해 요 구한 돈과 공개사과를 받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텍사스주 캐스트로빌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마지 모라(39·여)는 폴라 존 스를 한마디로 이상한 여자라고 평가했다.
“폴라 존스는 돈만 밝히는 좀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몇번 텔레비전에 나온 그 여자를 봤는데 그의 태도 등을 볼 때 그 여자가 한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샌안토니오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드레이 노블(28)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폴라 존스가 요구하는 70만달러는 도대체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일이 ‘공화당의 음모 ’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폴라 존스의 요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공화당원들의 요구와 일치합니 다.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수치스럽게 만들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정 말 웃기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클린턴이 바르게 행동했다고 생각하 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전직 주지사 언론보좌관을 지낸 빌 크라이어(53·현 기업 중역)도 이런 의구심에 동의한다.
“폴라 존스의 존재는 여러모로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공화당원 그룹의 지원을 받기 때문이죠. 사실 이번 스캔들도 보수적인 공화당원 그 룹이 폴라 존스의 사례를 발굴해낸 것이지, 폴라 존스가 그들을 찾아간 게 아니거든요.”
여러 의견을 종합해볼 때 이번 사건이 ‘클린턴의 오점’은 될 수 있어도 ‘클린턴의 정치적 상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 건을 조용히 넘기려는 클린턴의 가장 큰 우군은 어쩌면 ‘정치적 무관심 ’일지도 모른다.
‘정치 무관심’도 클린턴을 돕는다
텍사스주립대학 산하 과학연구소 부소장 제이 휘트먼(35)에게 ‘폴라 존 스 스캔들’을 물었을 때 그는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폴라 존스를 생각하 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난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받고 폴라 존스가 누군지 빨리 떠올리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죠. 하지만 이 세상에서 권력을 소유한 사 람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던 일 아닙니까? ”
이런 면에서 오스틴에서 웨이트리스로 부업을 하며 대학엘 다니는 보니 머로(31)의 말은 아마도 ‘대통령의 성추문 스캔들’을 미국 서민이 어떻 게 바라보는지를 잘 드러내는 대답일 것이다.
“폴라 존스가 누군데요? 아! 며칠전에 제 룸메이트가 얘기해준 여잔 것 같군요.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상대자 말이에요. 전 매일 학교에 다니고 남는 시간은 웨이트리스를 해서 생계를 꾸려갑니다. 바빠요. 그 스캔들은 며칠전에 오스틴을 강타한 태풍만큼도 제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답니다.”
오스틴 샌안토니오=이성림/ 자유기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