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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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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네틀턴 지음, 조효제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1만4천원
현대인의 최대 관심사는 아마 십중팔구 건강일 것이다. 건강제일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건강지식과 의료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건강과 질병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어떤 의사 와 의학 교수들은 언론을 타고 일약 스타가 되기도 한다. 그런 한편에서 병원은 불신의 대상이다. 막연히 현대의학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환자를 무슨 실험대상인 양 여기는 의료체계에 대한 불만이다. 이반 일리치의 <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또한 치매와 같은 중병에 대한 사회적 백업시스템도 거의 없다. 한번쯤 자신이나 가족이 막대한 치 료비가 드는 심한 질병에 걸렸을 때, 또는 큰 병원의 병실을 잡기 위해 고생해 본 사람이라면, 질병도 계급의 문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의료사회학은 이런 문제를 포함해 의료체계와 인간, 질병과 사회와의 관 계를 다루는 학문으로 영미 사회학계에서는 가장 큰 분과학문의 하나다. 건강과 질병만큼 중요한 사회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 서는 거의 미개지나 다름없다. 의료사회학을 제대로 전공한 전문 사회학 연구자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의료사회학의 표준교과서로 활용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한울아카데미 펴냄)은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번 역서이다. 1995년 영국 의료사회학자 사라 네틀턴(요크대 사회정책학 교 수)이 저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추천을 받아 펴낸 책으로 현대 의료사회학의 ‘표준 교과서’라는 호평을 얻은 개론서이다. 옮긴이는 옥 스퍼드대학을 거쳐 현재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의료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효제씨. 조씨는 치과의사의 가운을 벗어던지고 의료사회학 분야에 뛰어들었다.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은 모두 9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의 일관된 관 점은 일반인의 의료에 대한 견해와 경험이 전문가의 전문지식과 대등하게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환자는 단지 의료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은 물론 보건의료 체제의 변화에 공헌할 수 있는 ‘전인적 존재’임 을 거듭해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 서양의학의 관점들인 이원론 기계주의 의료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의학의 사회적 구성을 따져본 1~2장에 이어 3장은 현대사회에서 건강의 개념을 고찰해 본다. 오늘날 상 업주의와 결부된 건강제일주의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을 통해 현대사 회에서 건강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사회·문화적 맥락이 필요 하다는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에이즈는 그 대표적 질병이다. 4장은 만성질환에 관한 사회학적 고찰에 할애된다. 사람은 감기만 걸려도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 하물며 만성질환에 시달릴 경우는 말할 것 없 고, 치매증 같은 질병은 개인을 넘어 가족 구성원 전체가 경제·사회적으 로 막대한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고질병은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지은이는 만성질환이나 장애에 관 한 환자, 환자 가족·친지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강조한다.
5장 ‘몸의 사회학’편은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장이다. 오늘날 장기이 식, 외과성형수술, 생식보조시술 등의 발전은 의학적으로 ‘몸’의 개념 을 바뀌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을 의료적으로 잘 통제하면 할수록 몸이 무엇인지 더욱 애매해진다(영국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각종 기운동, 민간요법이 번창하는 것은 의학발전의 역설을 잘 말해준다) . 그리고 몸과 사회와의 경계도 모호해져 간다. 따라서 지은이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좀더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몸 자체와 사회적 영향 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더 중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 책의 중 심개념이며, 의료에 대한 사회학적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본개념이라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일반 사회학에서도 앤서니 기든스 같은 학자가 이미 이점에 주목한 바 있고, 푸코, 부르디외 등은 인간 신 체에 대한 정치적 규제의 문제를 정밀하게 분석해 보인 바 있다. 최근 대 두되고 있는 소비자주의의 차원에서 일반인의 의료참여 문제를 분석한 6 장에 이어, 7장에서는 사회계급, 계층 등에 따라 조직적으로 건강불평등 상태가 발생하고 있으나, 실제 의료서비스는 오히려 이런 불평등을 조장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8장에서는 이런 불평등 구조에 대한 비판을 토대 로 영국의 국립보건제도의 개편현황을 살펴보고 후기모더니즘 사회에서 공식적인 의료 업무의 변화를 다룬 사회학 연구 실적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9장은 새로운 의료정책으로 병원의료가 지역사회보호로 바뀌 고, 소비자 중심주의가 새로운 보건의료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태를 분석한다.
전인적 존재 위한 질병의 사회적 치료
요컨대 이 책은 ‘전인적 존재'로 환자 개념의 전환, 병원 같은 수용보호 시설보다 지역사회보호 개념의 필요성, 그리고 건강과 질병 및 의료에 관 한 ‘일반인 견해’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대 의료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국내에는 생소한 최근 의료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거의 망라하고 있어 전공자나 보건의료인뿐 아니라, 사회·공공정책 분야, 문화관련 분 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의료·사회복지 문제에 관한 시각을 넓히는 데 유용해 보인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