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포에버’ 분노한 소비자의 고발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텔레비전 포비아인, 아니 드라마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아니 센티멘털리 즘 기피자인, 그래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센티멘털리즘이 유포하는 ‘트렌 디’함과는 거리가 먼(그래도 뭐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나는 안재욱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는 그가 부른 <포 에버>라는 곡이 1위를 차지하는 사건을 접하지 않았어도 계속 무관심했을 듯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상했던 것은 직업적 뮤지션이 아닌 사람이 부른 노래 가 1위를 차지했다는 현상이라기보다는 ‘눈물범벅이 되어 앙코르송을 불 러야 할’ 가수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신이 지친 그는 지금 한국을 떠나 어디엔가 피신해 있다고 연예계에 정통한 이가 해준 귀 띔에 궁금증을 푸는 수밖에 없다. ‘가창력이 없다’는 발언이 화근이 되 어 한 라디오 DJ가 팬 클럽쪽으로부터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 어떤 팬은 “가창력 있는 가수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느냐”는 ‘논리 적’인 주장을 폈다는 말도 들린다.

어떤 음악이 음악외적 이유로 ‘히트’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여부를 떠나 현실이고, 비단 우리 경우만 그런 것도 아니므로 특별히 이땅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내심으도 일확천금을 마다하는 도덕적 인간, 윤리적 인간이 많지 않은 사회에서 모처럼 인기절정에 오른 기회를 타 내친 김에 음악에 서도 ‘탤런트’를 발휘하겠다는 걸 비난하는 사람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히트가요의 음악적 질을 문제삼는 일은 더욱 이상한 일일 것이다. 대중음 악의 질을 평가하는 명확한 음악학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에버>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곡 같기만 하다. 오해를 피하자면, 나는 지금 ‘표절이다’라고 우기려는 것이 아니라 이 곡이 히 트가요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스테레오타입의 단순재생산일 뿐이다

곡의 가사지 아래에는 곡의 형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있어서 음악을 들 으면서 메모하던 나를 무안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A-B-C-간주-A-B-C-C라 고 적혀 있다. 부연하자면 각 악절(period)은 8마디로 구성되어 있고 A와 B는 똑같은 코드진행과 유사한 멜로디(마지막 두 마디만 다르다)를 가지 고 있고, 간주 역시 두 마디의 연장(extension) 뒤에 C와 동일한 구성과 진행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버스(16마디)-코러스(8마디)-간주(8마디)-버스-코러스- 코러스의 구조이고, 그 위에 저음으로 부드럽게 시작하여 고음으로 거칠 게 절정을 맞는 멜로디 라인이 얹힌다. 코드(화음) 진행은 A와 B는 C-G-F -C-Am-Em-F-G이고, C의 경우도 뒤의 네 마디는 A 및 B와 동일하다. 코러 스에 들어가기 직전 드럼이 등장하듯 리듬은 가급적 절제돼 있다.

악기편성은 악기 소리를 ‘시뮬레이션’하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피아 노, 어쿠스틱 기타, 드럼, 전기기타 등이 차례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 그렇지만 각 악기의 특유한 이질적 음색은 중화된다. 예를 들어 간주 부분에서 전기기타의 솔로는 디스토션 이펙트를 조금 머금었음에도 전혀 록 음악의 감흥을 주지 않는다. 모든 사운드는 리버브(reverb) 볼륨을 높 이 올린 믹싱 과정을 통해 여과되어 균질화되고 ‘키치화’된다. 이렇게 키치화된 사운드는 절망, 방황, 이별, 슬픔, 눈물 등이 궁극적으로 영원 한 사랑을 위해 봉사하는 감정과잉의 가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A는 주인공의 절망과 방황이고, B는 이별과 재회 사이의 갈등이고, C는 영원한 사랑의 달성이다. 문제가 되었던 가창력에 대해서는 각자의 기준 이 있으므로 논하기 곤란하지만, 귀에 착착 달라붙게 의도한 듯한 창법인 듯하다.

음반에는 이 곡을 포함하여 총 8곡이 수록돼 있는데 그중 4곡은 연주곡이 다. 그 중 두곡은 채 2분도 되지 않아 끝난다. 이 ‘앨범’에 녹음된 시 간을 다 더해도 30분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이 음반은 다른 정규 앨범과 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졸속 음반으로 떼돈을 벌었다면…

이제까지 나는 이 곡이 히트가요의 스테레오타입의 단순재생산이라는 점, 그리고 이 음반이 적어도 ‘함량미달’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허비했다. 대중이 왜 실험보다 스테레오타입을 더 선호하는가는 문제는 단지 짜증을 부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제작에 소요된 비 용을 무시한 가격 책정에 대해서는 짜증이 난다. 또 내가 무지한 탓인지 는 몰라도, 나는 안내지에 적힌 section guitar, section piano…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만약 section이 session의 오기(誤記)였다면 성의를 의 심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히 급하게도 만들었다는.

외국 음악잡지를 뒤적이면 광고문안에 종종 ‘Buy or Die’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적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든, 더욱 교묘 한 상술이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문구를 보고도 안 샀 다고 죽을 사람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대중음악의 경우 평론과 광고가 별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 지면을 빌려 <AHN JAE WOOK VOLUME1 FOREVER>라는 음반에 대해 ‘Buy or Live’라고 적고 싶은 마음 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강하게 펴기에는 뭔가 용기가 부족한 듯하다. 우리는 구매한 상품이 함량미달임을 알고도 들고 가서 항의해봤자 별 수 없으리 라 지레 짐작하고 그냥 속으로 삭이는 데 익숙해 있다. 음반도 예외는 아 닐 것이다.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음반의 경우 표지에 ‘함량 ’이 표시되어 있기는 하다. 바랄 걸 바라자. 차라리 기획사나 음반사쪽 에서 이 음반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돈 안 되는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이라도 발매해 주길 바라는 게 정신건강에 좋 을 듯하다.

별은 내 가슴에? 그건 잘 모르겠지만, ‘돈은 저 주머니에’는 확실해 보 인다. 별을 돈으로 만드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이들에게 갈채를. 또 돈내 고 음반을 사서 별을 땄다는 놀라운 상상력의 소유자들에게도. 짝짝짝.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