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섹시’를 파는 근엄한 언론

굳이 누드모델 이승희 신드롬을 거론하지 않더라고, 섹시함은 언제부터인 가 요즘 여성들의 절대 명제(?)가 된 듯하다. ‘섹시’자가 붙은 화장품 이며 샴푸, 패션 광고 등등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방송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섹시’라는 단어는 이제 더이상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듣기 에- 혹은 대화중에 사용하기에- 어색하지 않은 보통 단어가 돼버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랬을까. 방송 진행자로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90 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방송에서 섹시의 ‘섹’자도 꺼내지 않는 것이 불 문율로 여겨졌었다. 내가 처음 미국생활을 경험했던 지난 80년대 초, 나 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단어 역시 다름 아닌 ‘섹시’였다. ‘섹시 하다’는 것이 곧 여성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라니. 그 말 한마디 들으려 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그곳 여성들이 우습고 신기해보이기까지 했었는데 불과 6, 7년 사이 변해도 한참 변한 것이다.

이런 급속한 성의식의 변화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의 촌스러움 때 문일까?

원초적인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에 이의 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도 섹시한 여자가 안겨주는 야릇한 흥분에 쾌감을 얻을 때가 있다. 하긴 요즘 젊은 남자들도 앞다투 어 섹스 어필에 열중한다. 그러니 성차별이니 여성의 상품화라는 말로 ‘ 섹시’의 범람을 무조건 매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옷을 고르러 가서도 “엄마, 이렇게 입으면 섹시하겠지?”, “얘, 이 옷 좀 봐라. 섹시하다.” 이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현실 속에서 나 의 이의 제기는 별반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시대 흐름이라는 이유로 묵과하고 덮어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가 아니던가. 최근 화장실에서 혼자 출 산한 고1 여학생이 아이를 숨지게 했다는 기사 내용만 해도 그렇다. 교실 에서 출산한 여중생의 얘기가 충격을 안겨주더니, 불과 6개월 남짓한 사 이에 유사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보도 내용도 사회적 충격이 완화되고 있음을 아는지 요란한 톱 기사에서 슬그머니 3~4단짜리 기사로 줄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른다. 단 지 청소년 또래 딸을 가진 부모들만이 걱정의 한숨을 내쉬곤 할 뿐이다. 중학생 딸을 둔 내 입장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딸에게만은 그 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이기적인 부모일 뿐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 굳이 핵심을 피하려는 우리 사 회 어른들에게, 나는 진정으로 묻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이 먼저 섹시함 을 밝혀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이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인가 .

문제는 간단하다. 돈이다. 상업주의가 숨쉬는 곳엔 어김없이 ‘섹시’가 각광받는다. 고도의 상술은 십중팔구 그 속에 섹스 어필을 무기로 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성도덕 문란 현상과 관련해 돈벌이 에 물불 안 가리는 음란서적 출판업자나 포르노 비디오 업자가 이 죄를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것 만이 절실한 생존방법일 수 있다. 오히려 그들보다는 짐짓 근엄한 체 하 면서 장삿속만 차리는 언론매체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그들이 그 ‘근엄한’가면을 벗어던지고 신문, 잡지나 TV에서 섹시함을 선도하는 것은 오로지 구독자와 시청자를 늘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 은 당연히 돈이 벌리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이쯤되고 보면 언론이래봤자 악덕업자와 그리 별다를 게 없다.

이 가운데서도 텔레비전은 수훈갑(?)이다. 방송을 하는 ‘어른’들에게 바란다. 세상을 좀더 먼저 살아본 어른들이라면 그것이 기실 허무한 망상 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제발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앞장서 호도 하는 일만은 그만 두기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최근 누드모델 이승희를 둘러싼 방송사들의 경쟁적인 출연요청과 수준 이하의 대담 내용은 이승희 개인이 지닌 나름 대로의 가치를 떠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방송사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보 여주었다. 나 자신 방송인의 한 사람으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할 뿐이다.

오미영
1958년생, 한국외국어대 중어과 졸, 전 KBS 및 프리랜서 아나운서 ,
현재 프로덕션 영인터미디어 대표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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