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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성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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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선재(25)씨는 볶음밥을 먹을 때마다 중앙아시아의 한 할아버 지가 생각난다.
지난해 초 그는 러시아에 두달 가까이 있었다. 80년대 운동권의 현재 모 습을 그린 김응수 감독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찍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을 아는 이들이 한푼두푼 모아준 돈으로 만드는 영화인 데다, 내용도 시종일관 차분해 이국의 재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 감독과 배우를 뺀 모든 촬영진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공화국에서 온 이들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 사이에서 그는 외로움마저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젖어들고 말았다. 동북아시아의 작 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보여준 그들의 친절은 러시아의 매서운 겨울 바람을 이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촬영부 조수로 일한 바흐리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40년 동안 촬영부 조수로 일했다는 바흐리 할아버지는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인데도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넉 넉했다. 매일 트랙을 깔고, 렌즈를 닦는가 하면 식사준비까지 도맡아 했 다.
바흐리 할아버지의 장기는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이었다. 중국 영향을 받았 는지 기름기가 많은 볶음밥은 한국의 중국음식집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 었다. 입맛을 다시며 접시를 말끔히 비우는 김씨에게 바흐리 할아버지는 연신 “뽀스나?”(맛있어)를 외쳤다. 머리털이 검고 키가 작은 그는, 김 씨를 볼 때마다 “우리 딸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촬영감독 게오르기 잘라예프의 깊은 속내도 잊을 수 없다. 촬영팀 전체는 영화를 찍기 위해 근처의 집 하나를 빌렸는데 돈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게오르기는 그게 미안했던지 집주인을 위해 눈을 쳤다. 겨울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통에 눈을 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 그런데도 그는 영화를 찍는 내내 틈틈이 눈 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
김씨는 러시아를 떠나올 때 그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영화가 흥행 에 성공하면 현지에서 고생한 모든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하지 만 흥행은 실패했고 약속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들 을 보여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김씨는 그래도 이 한마디는 꼭 전하 고 싶다고 한다. “스빠시버”(고맙습니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