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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엽서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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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쉰들러에게 힘을 주자
커버스토리 ‘연변의 쉰들러’를 읽은 감동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겪는 애로와 난관은 이미 여러 매스컴에 소개됐다. 하지만 그 들의 목숨 건 탈출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오로지 배고픔을 면 하기 위해 ‘인민’을 등진 그들에게 중국은 결코 희망의 땅이 될 수 없 었다. 조·중 관계를 염두에 둔 중국이 그들을 도울 리 없다. 우리 역시 ‘식량난민’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처지다. 이런 가운데 스스로도 먹고 살기에 빠듯한 사람들이 ‘쉰들러’로 나서고 있다니 다행 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작은 힘을 모아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정이 흐르게 마련이고 안타 까움도 있을 수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인간 장사꾼’들이 활개치고 있다니 정말로 서글픈 일이 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물든 연변사회의 시커먼 그림자에 마음이 무겁다. 인간에 대한 정이 있고 예의가 있는 사회를 소망한다.
김경민/ 전북 군산시 나운동 837-24 LG화재 서해영업소
무너진 공교육 누가 세워야 하나
특집 ‘유치원은 없다’를 읽고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현주소를 새롭게 알 게 됐다. 우리나라 연 사교육비가 국가 1년 예산의 3분의 1이 된다는 사 실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높은 교육열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오전에는 유치원 오후에는 태권도, 영어, 미술, 피아노 학원 등지로 몰려다니는 규격화된 삶을 살고 있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에는 관 심이 없고 어릴 때부터 오로지 입시를 위해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런 잘 못된 교육행태를 부모들만의 탓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공교육체계가 바 로잡히지 않는다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고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불 황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엄청난 사교육비에 고통받는 학부모들이 안타까 울 뿐이다.
이재용/ 전남 여수시 수정동 여수고등학교 2학년 12반
언론이 정보 독점 막아야 한다
추적 ‘기업 정보력 안기부가 안 부럽다’는 한국 재벌이 가진 정보망의 실재를 보여주는 기사였다. 우리나라의 각 기업은 홍보실과 비서실을 두 고 비공개적인 정보수집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한국 정 치가 여전히 올바른 과정의 정책입안에 따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기도 하다. 정보의 득과 실을 따진 뒷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정보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보가 특정집단에게만 공유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럴수 록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려는 언론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가 어느 특정인에게 머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호수/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393-23
상업적 이익 노린 이중 잣대
문화 ‘이승희는 비상구가 아니다’는 일반적인 언론과 다른 시각에서 ‘ 이승희 증후군’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사였다. 이승희를 아메 리카 드림을 실현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추어올리는 국내 언론들에게 묻 고 싶다. 음지에 있는 국내의 누드모델이나 에로배우들과 미국의 누드모 델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이다. 이는 어찌보면 ‘미국’이라는 후광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씨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나름 대로 그 분야에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불굴의 한국인이다. 다만 국내와 국외용의 이중적 잣대로 여론을 부추기는 언론이나, 그런 와중에서 장삿 속을 챙기는 상업주의가 혐오스러울 뿐이다.
장재학/ 서울시 서초구 방배1동 908-19 서건주택 205호
그래도 이승희는 위대한 한국인
매스컴이 이승희씨를 집중조명하는 것은 누드나 누드모델을 동경하거나 선망해서가 아니다. 단신에 동양인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정한 미국 프로모델 세계에서 ‘인터넷의 여왕’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자랑스 러운 한국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누드모델 하면 먼저 음란을 연상하는 우리의 잠재의식이 문제다. 예술과 음란은 모델 자신과 보는 사 람의 시각에 달린 것이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누드를 유 교문화권의 잣대로만 바라보지 말자. ‘성은 중요하지만 음란은 안 된다 ’는 이중적 성의식에서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유교의식이 강한 우리나 라에서 성범죄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 부끄러운 현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뇌물과 떡값으로 나라를 망치는 정치인에 비하면 장하고 대견한 이 승희이다.
장윤재/ 대구시 서구 내당4동 340 광명아파트 3-602
대안 있는 시사SF 보고 싶다
조남준씨의 시사SF를 재미있게 보며 때론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 지만 그 통쾌함은 잠시뿐 다시 우리 현실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화를 통해 현실을 풍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방법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결책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 해결책을 나 타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일까. 독자들은 만화적인 풍자로 현실을 깨닫는 데서 만족할 수 없다. 날카롭게 문제를 지적함과 아울러 그 해결책을 어떤 식으로든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화는 시사적인 문제를 쉽게 전달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지면이다. 독자들이 통쾌함을 느낌과 동시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다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책을 다뤄야 하리라 생각한다. 조남준씨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재원/ 경북 경산시 대동 214-1 영남대학교 영대문화편집위원회
새로운 정치인 발굴할 수 없는가
<한겨레21>을 읽는 것은 삶의 한부분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 다. 지금도 <한겨레21>에 대한 애정과 연대는 하늘만큼 높고 바다만큼 넓 다. 그만큼 애정과 관심이 많아서인지 열(?) 받을 때가 많다. 정치기사는 여전히 추측성 기사가 많고, 여당과 야당의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솔 직히 이회창씨를 비롯한 대권주자들 모두가 똑같지 않은가. 한보사건과 김현철 비리에 대해서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정치인이란 솔직과 도덕성이 겸비돼야 하 지 않은가. 지금까지 과연 누가 문민독재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나 사과를 한마디 했는가. 어떤 면에서건 그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는 새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현대사의 질 곡과 부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걸 <한겨레21>에서 주도해야 한다. 바로 거기에서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김남철/ 전남 여수시 둔덕동 주공아파트 6-50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