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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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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성 가요계에서도 성가를 올린 노찾사.)
68년 프랑스의 변혁을 외치며 봉기했던 대학생들의 별칭인 이른바 ‘68 세대’는 이후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거대한 물결을 형성했다. 이들은 학 문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넘어 프랑스사회의 정신 적 지주로 성장, 현대 프랑스를 이끄는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살아남은 자의 혼란’을 뚫고…
1987년 6월을 전후해 한국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던 많은 젊은이들도 1 0년이 지난 이제 한 허리를 돌아 민들레 꽃씨처럼 사회 전체에 흩뿌려졌 다. 그들이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런데 6월세대는 여러 분야 중 특히 문화분야에서 상대 적으로 빠르게 그 성과의 싹을 내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평론부분 은 논리 체계에 익숙했던 이들이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주인석, 서동진, 김종엽, 백지숙 등이 그들로, 이들은 대중문화에 대해 처음으로 진보적 시각의 평론을 시도했던 70년대 후반 학번 세대들의 성과를 이어받는 형 태로 출발했다.
이들 중 맏형뻘에 속하는 주인석(34·서울대 국문과 82학번)씨는 ‘소설 가 구보씨’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살이를 통해 독특한 비평영역을 확보하 고 있다. 구보씨는 세상에 대한 환멸과 냉소가 심하고, 뒤에서 궁시렁대 는 타입이다. 대단한 분석력을 지닌 동시에 보통의 소시민적 행동 양태를 보이고 있어, 독자들은 조금은 가학적인 그의 세상분석에 탐닉하게 된다. 주씨는 구보씨의 시선에 대해 “87년 6월항쟁의 승리가 정치적으로 왜곡 된 데서 심한 내면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평하면서 “냉 소주의는 황폐한 심경으로 90년대를 맞이했던 세대들이 자기정체성을 유 지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금 아래 연배의 서동진(31 ·연세대 사회학과 85학번)씨는 문화비평, 영화·대중음악·시사평론, 동 성애운동 등 전방위에 걸쳐 다양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87년 학생운동의 노선상 NL(민족해방)진영에 있던 그는 7∼8월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하면서 PD(민중민주)노선으로 급선회해 PD진영의 공격적 논객이 된다(그는 이를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5년 대학원 재학시절 자신이 동성애 자임을 밝히면서 우리 사회에 동성애 담론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 다. 그는 6월세대에 대해 ‘정치적 보수주의’로 돌아설 수도 있는 ‘우 려할 만한 세대’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신세대논란이 일었을 때 가장 반발했던 이들이 30대였다는 점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6월세대는 “80년 대를 휩쓸었던 집단주의 의식의 영향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거의 본능적 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6월세대의 ‘혼란’은 문학분야에서 먼저 표현됐다. 새로운 시대 에 정서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 후일담 문학’의 형태로 이야기됐다. 94년에 나온 시인 최영미씨의 <서른 , 잔치는 끝났다>는 그런 정체성의 혼란을 대표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이제 그 세대들이 현실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에 발 맞춰 문학분야에서 도 후일담을 넘어선 글들이 나오고 있다.
전경린(35·여·경남대 독문과)씨가 최근에 펴낸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문학동네)는 80년대 젊은이들이 오늘날 존재의 상실감에 고통받고 있음 을 그려 외형은 후일담 문학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90년 대의 삶은 실패와 좌절의 가혹한 형벌이 아닌 80년대에서 이어진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품어안아야 할 의미있는 기억”이라고 강조한다.
독립영화 거쳐 상업영화로
소설가 김인숙(35·여·연세대 신방과 82학번)씨는 87년 당시 80년대 학 생운동권을 다룬 소설(<79∼80, 겨울에서 봄 사이>)을 쓰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문단에 데뷔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낭만적 연애소설이었다. 그 러나 그는 광주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 배경 속에서 심한 정신적 열병을 거쳐 새롭게 깨어났다. 후일담 문학에 대해 그는 “비전은 사라지 고 대안은 찾을 수 없었던 전망의 부재 때문”이라면서 “80년대를 따뜻 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문학에서 대두되고 있어 앞으로 80년대를 다룬 소설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6월세대의 문화활동 중 특히 돋보이는 분야는 영화와 대중음악. 대중에 대한 관심이 항상 그들의 사고를 지배했고 대중의 힘을 체험한 이들이었 기에 대중적 관심 분야에 몰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처음에는 운동의 ‘수단’으로 대중문화를 집어들었던 이들은 점차 그 문 화의 예술적 자기 완결성에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80년대의 ‘집단’과 상응되는 ‘개인’으로 초점을 돌리는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다양한 스펙 트럼을 내보이고 있다.
영화분야에서 이들은 또 ‘장산곶매’를 시점으로 한국영화의 검열폐지 주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분야의 첫 시도는 독립영화 집단이었다. 서울영상집단, 보임, 인디라인, 영화제작소 청년, 푸른 영상 등 우리 영 화지평에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던 게 이들이다. 변영주(31· 이화여대 법학과 85학번) 감독은 여성문제에 천착해 <낮은 목소리> 등의 작품으로써 정신대문제 등 사회성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들은 또 독립, 다큐영화를 거쳐 점차 상업영화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영화 <접속 ^gt을 촬영중인 장윤현(30·한양대 전기공학과 86학번) 감독은 87년 6월 당 시 대학영화서클 활동을 하며 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을 뛰어다녔다. 6월 항쟁 직후에는 고문을 다룬 <인재를 위하여>란 단편영화를 제작했고, 졸 업 뒤엔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을 연출했다. 그리고 지금은 ‘충무로’에서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접속>을 만들고 있다. 개인의 사랑이야기다. 그는 “사회가 중요한 만큼 개인도 중요하다 .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관심사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80년대 운동권의 90년대살이를 다룬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김응 수(32·서울대 심리학과 84학번) 감독은 87년 6월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 로 수배상태였다. 졸업 뒤 그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다 모스크바국립영화 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귀국 첫 영화로 <시간은…^gt를 만들었다. 그는 “80년대에는 관념론에 이끌려 지나치게 모든 것에 계몽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나 반성한다”면서 “80년대의 당위적 설명으로부터 자유로 워지고 싶어 ‘통과의례’로 운동권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만들었다. 하 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대중음악 분야의 활동도 외양은 영화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민중가요와 록이 그것이다. 90년도까지 ‘민중적인’ 노래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났으나 시대변화와 함께 대부분 자연소멸하고 현재는 풍물패 터울림, 꽃 다지와 최도은 등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84년 민중가요 진영에서 첫 공 식음반을 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민중가요를 기존 가요권에 삽입한 첫 성과를 얻어낸 장본인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 등이 실 린 88년의 2집은 무려 1백20만장이나 팔렸다. 노찾사를 통해 배출된 민중 가수들이 기성가수 진영으로 자연스럽게 편입해 들어가기도 했다. 고 김 광석(명지대 83학번), 안치환(연세대 84학번), 권진원(외국어대 85학번) 등이 그들로 이들의 노래에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주조를 이룬 다.
노동가요엔 꽃다지가 있다. 89년 노동가요패 예울림에서부터 그 맥을 이 은 꽃다지는 현장을 떠나지 않고 노동자들의 정서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 다는 점에서 이제는 독보적인 ‘전문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꽃다지 대 표 이은진(32·연세대 간호학과 84학번)씨는 안치환, 유인혁 등과 함께 연세대 노래패 ‘울림터’의 멤버로 87년 <한열아, 보아라>라는 운동가요 테이프를 제작하기도 했다.
저항의 음악, 록을 찾는 사람들
6월세대가 음악분야에서 새로운 꽃을 피운 부분은 록이다. 록은 90년대 신세대의 속성에 더 맞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6월세대는 록의 저항정 신에서 80년대를 ‘재확인’한다. 음반기획사 ‘뮤직센타 21세기’의 원 용호(33·고려대 전자공학과 83학번) 대표도 그들 중 한명이다. 그는 고 려대 애국청년학생회사건으로 87년 6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해 8월 석 방된 뒤에는 인천에서 ‘현장 운동가’로 활약했고, 87∼92년 사이에는 민중당에서 활동했다. 93년 ‘뮤직센타 21세기’의 전신 ‘좋은 세상’을 세워 음반제작과 공연기획에 힘썼고 민중록그룹 조국과 청춘, 메이데이, 이스크라 등을 규합했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자유’ 공연을 기획했 다. 그는 “기존 민중가요가 소수만의 향유물로 전락한 것이 가슴 아프다 ”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 각이 결국 저항 음악인 록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말했다.
안영노(31·연세대 사회학과 84학번)씨는 아예 록가수가 된 경우다. 대학 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일했던 그는 96년 10월 ‘허벅지밴드’를 결성했고 지난 2월엔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50여개 밴 드들을 규합, ‘개방적인 클럽연대’(개클련)를 조직했다. 그는 언더그라 운드 음악에서 대중문화의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6월세대는 이처럼 문화분야에서도 나름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6 월항쟁의 소중한 경험과 사회적 가치에 개인을 헌신했던 젊은 날의 기억 이야말로 여전히 이들을 밀고가는 힘이 되고 있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