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
|---|
(사진/도봉구 의회 동료 의원 하중삼.강정구(왼쪽부터)씨. 서울 북부지역 중심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에 젊은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강정구(32)·하종삼(31) 의원은 도봉구의회 동료 의원이다. 성균관대 8 5학번 동기인 이들의 인연은 86년부터다. 중문과와 사학과로 이웃 동아리 에서 활동하면서 서로 얼굴만 알고 지내던 이들은 86년 2월 서울대에서 열린 호헌철폐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될 때 경찰서 보호 실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
지역주민이 자식처럼 여기는 구의원
이들은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항의시위 때 또한번 경찰에 붙잡 혀 경찰서에서 두번째 밤을 새운다. 88년 대학 4학년 땐 학술부장과 사회 부장으로 총학생회에서 함께 일했다. 이후 강 의원은 노동운동에 투신, 서울 성수동에서 현장생활을 했고, 하 의원은 이부영, 장기표, 이우재씨 등이 발기한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 추진위원회’에서 일하 다 92년 총선시기에 둘은 유인태 의원 진영에 합류하면서 기성 정치권으 로 함께 들어온다. 그리고 95년 6�27 지방선거 때 기초자치단체 의원에 나란히 당선됐다.
당선 뒤 이들은 서울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바른 의정을 위한 젊은 의원 모임’을 조직해 풀뿌리 민주주의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들은 이제 민중이나 민주 등의 거대 담론 대신 지역의 상·하수도 문제, 북한 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 학교 앞 횡단보도 설치 등 생활·환경 문제에 신 경을 곤두세운다.
두 의원은 6월세대가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노원구 의회 유송화(31) 의원도 6월세대다. 85학번인 그는 88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이었다. 그는 이미 몇가지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노원구에 사는 정 신대할머니들에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예산을 앞장서 책정했다. 노인 복지기금 조례를 통과시켰고, 주민감사청구 조례와 시민단체지원 조례 제 정을 시도하고 있다. 주민자치문화를 형성하려는 노력으로 주민축제를 열 기도 했다. “지난 시기에는 기초의원직을 명예직으로 생각해서 지역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으로 그 구실을 제한했다. 그러나 6월세대들은 구 행 정을 직접 감시하고 견제하는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하려고 한다. 정책기능으로 대표되는 전문성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유 의원은 6월세대 의원들의 장점을 이렇게 정리한다.
“지역 내 이해관계에 민감한 유지에게 지역문제를 맡길 수 없다”며 풀 뿌리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실현단위인 기초의회에 진출해 헌신성과 전문 성을 무기로 지역여론의 호평을 받고 있는 6월세대는 적지 않다. 지난 95 년 지자제선거 당시 ‘참여 자치를 위한 청년 캠프’ 소속으로 당선된 기 초의회 의원 62명은 대부분 6월세대. 지역 주민들이 그들을 자신의 아들 딸처럼 여긴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이 들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세대의 집단적인 지 지와 지원을 뒷받침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야당의 분열에 따라 함께 분 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체 6월세대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속에 서 이뤄지는 정치적 진출이 세대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95년 6월세대의 지자제선거 참여는 세대적 공감대로 이뤄졌다기보다는 개 인적 결단에 기댄 측면이 크다.
현재 6월세대를 중심으로 한 청년정치 세력들은 새로운 세대운동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또 ‘6월세대 역할론’과 관련해 가시적 인 성과를 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올해 대선과 내년 지자제 선거에서 6월세대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운동 세력들은 올해 대선보다는 내년 지자제선거에 더 관심을 기울이 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은 시간적으로 얼마남지 않았고, 후보를 선 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전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 직 내부의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어 그것을 추스르는 데 오히려 더 큰 힘 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자제선거는 당선 가능성도 높을 뿐 아니라 6월세대가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또 의미 있는 세력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허공에 뜬 상태로 출마해선 안 된다
(사진/ 전대협 동우회 등 다양한 현태의 청년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6월세대들은 집단적인 정치권 진출과 관련해 몇가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먼저 세대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이나 공론을 미약하나마 형 성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80년대 학생운동 시절 내걸 었던 이념과 이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30대가 된 지금의 6월 세대들이 합의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상’에 대한 합의가 필수적이라 는 것이다. 또하나는 사회가 이 세대들에게 맡기고 있는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적 기반이나 토대없이 허공에 뜬 상태로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 진출은 개인적 출세 외에 큰 의미가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나선다면 4�19세 대나 6�3세대와 같이 세대적 정체성을 잃고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다.
한편 정치권 진출과는 무관하게 6월세대의 조직화는 이미 다양한 방식과 수준으로 시도된 지 오래였다. 먼저 가장 큰 청년조직인 ‘한국민주청년 단체협의회’(한청협·의장 유기홍)가 있다. 한청협은 70년대 말 학번들 이 주축이 돼 지난 83년 창립된 민청련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청년운동조 직이다. 이 조직은 6월항쟁을 거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뤄진 지역민주청 년회를 토대로 92년 2월에 창립됐다. 현재 한청협에는 80여개의 시군구 단위 지역민주청년회가 가입돼 있다. 행정구역으로 치면 1/3 정도를 포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지역의 민주청년회들은 대부분 민족자주, 민주주 의 실현, 평화통일, 청년권익 실현, 지역발전 기여 등 대략 5개 조직목표 를 가지고 있다. 이들 민주청년회에서도 회장과 간부 등 핵심활동가들은 상당수가 6월세대들로 채워져 있다. 한청협은 회비를 내는 정회원만 3천 여명이다. 김종원 부의장은 “6월항쟁 당시 적극적인 학생운동권으로 분 류되던 사람들이 10만명은 되는데 아직 이들의 조직화율이 너무 낮다”고 평가한다. 한청협은 최근 전국적인 청년 단일조직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 현재 한청협 가입 민주청년회들은 지역마다 조금씩 이름도 다르고 조직 의 위상도 다르다. 그러나 지역에서 청년회를 만들어 제대로만 활동한다 면 지역주민들과의 친화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운동이 지역에 가장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실 지역 청년회들은 그런 모범적인 사례들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다. 예 를 들면 서울 화곡동의 강서한물결청년회는 근처 우장산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들과 연대해 승리한 경험으로 6월세대를 구의회에 진출시켰다. 또 서 울 도봉청년회는 북녘동포돕기 거북이달리기 대회를 지역 안에서 치러내 기도 했다. 이 밖에도 지역의 조건에 맞게 청년회를 뿌리내린 성공사례는 수없이 많다.
1천2백만명이 6월항쟁 세례받아
한청협 산하의 지역민주청년회들이 확대되는 때와 시간을 맞춰 다양한 형 태의 청년단체들도 생겨났다. 청년정보문화센터, 포럼 2001, 전대협동우 회, 21세기전략아카데미, 한국정보통신센타 등이 다양한 요구를 지닌 6월 세대들의 요구에 맞춰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갖고 활동중이다. 96년도 인 구통계에 따르면, 6월세대로 통하는 30∼34세 인구는 약 4백20여만명이다 . 세대개념을 확장해 6월항쟁의 세례를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25∼29세와 35∼39세까지 치면 1천2백여만명이 된다. 6월세대의 정치적 실험이 성공 한다면 이들 같은 또래의 계층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청년운동세력은 이런 기대 속에서 98년 지자제선거를 정치세력화 의 첫번째 도약대로 삼을 생각이다. 그러나 동시에 6월세대는 정치세력화 되기엔 아직 많은 한계와 약점도 지니고 있다. 문화적 지체가 그 첫번째 이유다. 동기모임이나 학교모임에 가면 운동권 노래를 부르고 직장에서는 신세대 노래를 따라불러야 하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급변하 는 현실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 족하다는 것이다. 정보화사회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보의 수집과 활용 엔 무척 미숙한 면도 있다.
역사에서 한 시대에 진보적 구실을 했더라도 변화된 조건과 처지에 맞는 구실을 찾아내지 못하면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끼인 세 대’ ‘386세대’가 아니라 6월세대가 갖는 긍정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대중들은 이들 세대에게 더욱 많은 사회적 인 역할을 부여할 것이다.
권태호 기자·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