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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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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통해 의료정책 대안을 일구어가는 6월세대 치과의사 홍수연씨.)
5월30일 밤 8시, 서울 서교동 ‘일터사랑’(회장 권의철) 사무실에 30대 직장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왜 했는지 모르겠더라.” 누군가가 낮 에 있었던 대통령 기자회견을 꺼낸다. 너나 할 것 없이 “분위기가 써늘 했다”며 맞장구 쳤다. “자, 그만하고 공부합시다.”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대표가 끼어들어 말을 끊는다.
‘모여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한 세대
오늘의 주제는 ‘기업의 매수·합병’(M&A). 최근 이뤄진 국내기업의 매 수·합병에 대한 경제지 기사들을 복사한 자료가 나눠졌다. 분위기는 금 방 진지해진다. 신문기사뿐만 아니라 합병·매수 관련 경제용어들을 경제 사전에서 따로 복사해둔 자료도 돌린다. “쥬이쉬 덴티스트(Jewish Denti st), 적대적 매수, 수사이드 필(Suicide Pill), 데드 맨즈 트리거(Dead M an’s Trigger), 화이트 나이트(White Knight)….” 생소한 만큼 설명과 토론도 길다.
‘경제기사읽기모임’은 85학번에서 87학번 사이의 직장인들로 이뤄져 있 다. 6명인 이들은 각각 증권, 은행, 무역, 중공업쪽에서 일한다. 직장 3 년∼5년차인 이들은 대부분 대리이다. 오늘도 야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이 3명이다. 가정이 있고 피곤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기를 쓰 고 모이는 사연이 궁금하다.
“회사생활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 경제를 제대로 알고 싶은데 대학생 때의 틀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얻고 싶다. 같은 시기에 대학생활을 해서 그런지 동질감을 많이 느껴 모임에 나오면 항상 푸근해 진다.” 무역회사를 다니는 김동수(32)씨가 모임에 나오는 이유다. 일터 사랑은 ‘애국적 사회진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6월항쟁 세대가 ‘ 직장인운동’을 벌이는 모임이다. “직장생활에서 경제적인 요구를 충족 시킬 수는 있어도 사회정치적, 문화적 요구들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 송형진(33) 부회장은 6월세대는 “모여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한” 세 대라고 설명한다. 1백여명의 회원들은 독서, 영화, 답사 모임 등 소모임 활동도 벌인다.
‘신촌포럼’도 비슷한 모임들 가운데 하나다. 연세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 모임은 지난 95년 1주일에 한번씩 하던 시사토론이 출발점이었다. 시사토론 외에도 등산, 영화 등의 소모임이 조직돼 있다. 지난해에는 일 본을 방문해 일본 지방자치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올 7월에는 회원 들의 여름휴가 날짜를 맞춰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 방문까 지 마치면 아시아네트워크를 완성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키우고 있다. “ 서바이브 앤 리드(SURVIVE & LEAD)는 우리의 슬로건이다. 자신의 분야에 서 전문성을 확보해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 사회를 주도해 나가자는 뜻이다.” 회원 김상호(30)씨는 87학번으로 6월항쟁 때 1학년 새내기였다.
6월세대는 모이는 데 익숙하다. 해결방법도 함께 의논해야 직성이 풀린다 . 이를 두고 6월항쟁이라는 대중운동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결과라는 분 석이 지배적이다. 전대협동우회(의장 이인영) 오영식 부회장은 “6월세대 는 항쟁을 통해 대중에 대한 신뢰와 대중운동의 위력에 대한 생생한 체험 을 했다. 모여서 함께 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운 셈이다. 또 6월세대는 87년 정치상황을 통해 결정적인 시기에 분열하면 패배한다는 뼈아픈 진리도 새기고 있다. 작은 차이를 넘어 크게 단결해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궁극적인 승리가 온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분석한다. 응집력과 연대의식은 역사에 대한 낙관론적 견해에서 온다. 정의가 끝내는 승리하고 집단의 힘으로 뭉치면 뭐든지 해낼 수 있 다는 것을 세대의식 속에 녹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 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은 이들 세대가 금과옥조처럼 간직하고 있는 원칙이다.
6월세대 네트워크 전국 수백개
(사진/`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정기모임.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전국적으로 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런 문화는 10년 뒤인 지금에도 이들을 붙잡고 있다. 민주동문회 운동도 졸업 뒤에 자칫 흩어지기 쉬운 이들을 묶어세우려는 노력이다. 공동육아 역시 이들 작품이다. 비용이 더 많아질 수도 있고 귀찮을 수 있는데도 굳 이 공동육아를 고집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길러진다는 것의 장점을 경험 으로 알기 때문이다. 6월세대는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광고를 신문에 낼 때 한명도 빼지 않고 모든 이의 이름을 망라하는 식의 광고방식을 쓴다. 이들은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고민없이 동의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 물론 부담이 없을 정도의 모금운동 정도지만 이렇게 쉽게 동의가 이뤄 지는 세대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민족문제, 민중 문제 등에 대한 공감대가 별 무리없이 이루지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연구소 김광식 소장은 “직접 확인한 것만 해도 전국적으 로 6월세대의 이런 소규모 네트워크가 수백개에 이른다. 이들은 정말로 사회전반에 새로운 분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지역이나 관심 영역별로 중 층적인 구조를 띠고 있어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포럼, 모임 등의 이름을 가진 자주적인 성격의 이들 조 직들은 점점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
홍수연(31)씨는 치과의사다. 그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사업국 정책간사이기도 하다. 노인틀니 사업, 구강보건 행정전담 부서 설 치 등 구강정책을 연구하고 관계당국에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의 활동에 대해 “87년 이후 지금까지 10 년 동안 배운 것을 하나씩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85학번 으로 87년 당시 연건캠퍼스 학생비상대책위 정책실장이던 그는 치대 본과 2학년을 마칠 때인 88년 인천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평생 노 동자로 살겠다는 다짐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2년 뒤 캠퍼스로 돌아왔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현재 건치활동에 정력적이다.
홍씨말고도 보건의료계통에서 일하는 6월세대는 많다. 6월항쟁 때 의대, 간호대, 치대는 항상 시위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연세대 의대 87학번 이필휴(30)씨도 그런 경우다. 세브란스 레지던트 3년차인 그는 ‘평등사 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회장 강동진)에서 일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하 고 저녁 9시가 돼야 퇴근하는 생활에도 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 단 체는 의사, 간호사, 약사, 병원기기 기사까지를 아우르며 전국적으로 40 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씨는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변화의 가 능성이 적고 보수적인 곳이라 활동하기가 어렵지만 보건의료문제의 본질 을 제시하면서 계속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힌다. 의료계나 법조계처럼 상 대적으로 변화가 힘든 분야에서도 6월세대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단 적인 예로 지난 1월 날치기 노동법에 따른 총파업 때 27기 사법연수원생 3백15명 가운데 1백60여명이 집단적으로 파업기금을 모금했다가 법조계 내부에서 파문이 인 적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6월세대들이었다. 사법 연수원생들은 물론 연수생 생활을 마친 새내기 법조인들 중에는 6월세대 가 만든 여러 단체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무료법률서비스를 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끈질긴 민중지향성
6월세대가 보이는 이런 끈질긴 민중지향성 역시 6월항쟁의 경험이 크게 기여했다. 6월세대는 부분적인 권리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한 세대이다. 민주주의 완성과 함께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를 최초 로 대중적인 형태로 제시한 세대이기도 하다. 변혁적 사회과학이론을 운 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도 큰몫을 했다. 현재 재야운동단체나 시민 운동단체, 환경운동단체들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실무간사들 대부분이 이들 6월세대라는 점, 아직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 남아 있는 이들 가운 데 6월세대가 가장 많다는 점 역시 이런 데서 연유한다.
수도권의 한 대학교에서 강사직을 맡고 있는 박진도(33)씨는 85학번이다. 그는 기능인을 만들려는 최근의 대학교육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강의방식 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비판의식을 길러주는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시간에 주입식 강의 대신 토론과 발표가 많아 야 한다. 또 주류 서적과 비주류서적을 같이 보게 해서 균형된 감각을 길 러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박씨는 철학을 가르칠 때는 꼭 몇편의 비디오 를 보고 리포트를 쓰게 한다. <모던 타임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사 랑의 블랙홀> 등은 그가 단골메뉴로 쓰는 영화들이다. 10년 동안 강의노 트를 한번도 바꾸지 않는 교수가 흔한 대학 현실에서 박씨의 시도는 신선 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다보니 학생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도 다르다. “자신의 머리로 고민한 뒤에 창조적으로 쓴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는 것이다.
6월세대는 이제 거리에 있지 않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그들은 새로운 분위기와 기풍을 세우는 주인공이 되고 있다. 점차 사회의 허리가 돼가고 있는 6월세대의 다양한 움직임이 앞으로 한국 사회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된 원동력으로 성장해 갈지 주목된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