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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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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월항쟁 10주년 사업 범국민추진위 발대식. 6.10세대는 10주년을 맞아 `21세기 대안세대'의 구실을 적극 찾아나서고 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던 혁명 전야. 그 항쟁의 전위 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던 ‘젊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6·10항쟁세대. 대학 학번으로는 82∼83학번에서 87학번. 10년이 지난 지 금 연령으로 30대 초반에서 중반. 훗날 사가들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뤘던 그때의 대학생들을 이렇게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
‘넥타이부대’가 쏘아올린 신호탄
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운동의 승리의 절정을 맛본 세대였고, 동시에 현 실 민주진영의 분열과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으로 인한 전망의 상실 속에 서 환멸과 냉소로 파편화되어간 세대였다. 비록 아무도 내세워 기억해 주 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적 이상에 대한 믿음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해지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이 10월항쟁 10주년을 맞아 “21세기의 대안세대”로서 구실을 적극 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난 5월29일 6월항쟁 당시 학생운동 지도층이 중심이 돼 열린 ‘21세기 청년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한 토론회는 그런 움직임의 하나였다.
사실 지난 1월 노동자 총파업 투쟁을 선도했던 ‘넥타이부대’는 이런 움 직임을 알리는 상징적 신호탄이었다. 6월항쟁 당시 넥타이부대의 복사판 이었던 이들의 주력은 10년 전 6월항쟁의 선두에 섰던 학생들이었다. 한 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시민사회 형성의 계기를 만들었던 6월항쟁의 ‘전 위대’가, 이제는 시민사회의 성장한 역량을 보여주는 세대로 한국 사회 의 전면에 나타난 것이다.
6월세대. 기성화의 초입이라 할 30대 생활인으로서 이들이 지난날 자신들 의 열정을 불태웠던 가치를 높이 세우고 추구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 고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학자들은 6월세대를 70년대의 유신세대와 90년대 신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대로 구분짓는다. “사회 어느 분야를 가도 80년대의 치열했던 투 쟁경험과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유별난) 청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장노동운동가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인 그 리고 평균적인 샐러리맨에 이르기까지 이 세대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 . 그러나 6월항쟁 경험을 원형질로 하는 어떤 ‘지향’에서는 균질하다. 그것은 집단주의, 정치지향성 그리고 민중적·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믿음 이 다른 세대보다 강하다는 점 따위로 표현될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6월세대의 세대론적 특징을 “해방후 한국 사회 에서 최초로 형성된 공공의 윤리, 집단적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공감대로 가진 세대”로 분석한다.
“이들은 대학생 신분의 프티부르주아로선 처음으로 자신의 이해보다는 민중 또는 민족이라는 총체적 대상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한 첫 세대였다. 둘째 이들은 누구보다 5·17 광주민중항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컸던 세대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들의 보편적 정서였고 강렬 한 저항의지의 원천이었다. 또 광주와 민중·민족주의의 결합은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반외세 반미 슬로건을 대중화시켰고, 집단적 해방의지와 공 동체 가치를 우선으로 내세우는 문화를 생산했다. 그리고 이들은 6월항쟁 을 통해 이 가치가 현실적 승리로 구현되는 현장을 목격한 세대였다.” 이런 경험은 기질에서도 잘 나타난다. 6월세대들은 자신들의 세대적 성향 으로 “낙관주의 경향 그리고 무언가 조직하고 만들어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87년 6월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던이인영씨는 “80년대 세대가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뚜렷한 정 체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냉소주의 속에서도, ‘투표 날 놀러는 가도 투표는 꼭 하고 간다’는 말이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 가장 양보운전을 잘하고 질서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30대 젊은이들”이라 는 이야기 따위는 비록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해도 이 세대들이 가진 ‘ 사회개혁’에 대한 남다른 책임의식과 윤리성을 드러내는 편린들이다.
프랑스 68봉기 세대의 교훈
그러나 이 세대에게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도 많다. 현실정치의 분열에 그 자신도 휩쓸렸던 체험과,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른 전망 상실은 이들을 환멸과 냉소에 젖어들게 했다. 높은 정치의식에도 정치적 냉소주의가 강 한 세대로 평가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세대만이 가진 체험의 차별성이다. 70년대 세대가 이미 구세대의 일원이 돼버렸고, 뒤이은 20대는 대중적 문 화주의 자장에 손쉽게 빨려들어가는 상황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적 가치 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세대라는 점이다.
프랑스의 1968년 학생봉기가 좌절되자, 그 세대들은 실망과 환멸을 안고 기성 질서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연대감을 잃지 않고 다양한 분야 에서 나름의 전문화를 추구하며 자신들의 이상을 확산시켰고, 결국 미테 랑의 사회당 정권이라는 새로운 정치 사회 질서를 창출하는 토대가 되었 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6월세대들에게도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 을 것이다.
“6월세대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화혁명 1세대와 통일 1세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세대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큰 명예와 자부심은 없다.”
6월항쟁 10년을 맞으며, 한국 사회 개조운동의 정치적 주체로서 청년운동 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인영씨의 이 말은 단지 한 개인, 한 세대의 희망 사항을 넘어서는 것으로 들린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