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포르노와 표현의 자유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지난달 30일, 서울지법은 <내게 거짓말을 해 봐>의 작가 장정일씨에게 ‘ 음란문서 제조죄’로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의 소설이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원색적이고 상스러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돼 있”다는 것 이 유죄 선고의 이유였다.

발매 금지된 이 소설을 읽어 봤다는 재주도 좋은 몇몇 사람에게 소감을 들어보았다. 난잡하고 변태스럽기는 <거짓말>이 <사라>보다 더 “쎄다” 는 것, 그러나 확실히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문제의식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소감이었다. 이 소설이 하필이면 봉건적 가부장주의의 대명 사인 안동에서 한 중년 남자가 여고생과 ‘그 짓’을 하고 싶어서 여관을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점이 ‘괘씸죄’에 걸린 이유라는 ‘학설 ’도 나왔다.


국가권력의 폭거가 분명하지만…

우선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장씨에게 옥살이를 시키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 거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신 구속제도의 지나친 남용이며 분명한 인권 침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오로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 는 분노의 목소리들이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어설프다는 느 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인권운동가로서 나는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 라 현실에서 표현의 자유야말로 우리가 시급히 쟁취해야 할 권리 중의 하 나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의 표현의 자유가 소외된 제3자를 짓 밟고 획득되는 ‘강자의 권리’가 되지 않으려면 ‘표현의 자유’는 ‘평 등’이라는 관념과 항상 결합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권’의 기본축 은 자유와 평등이며 이 균형감각을 잃을 때 오늘 우리가 쏜 화살은 훗날 에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원래 ‘음란물’에 대한 지배권력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즉 통제와 부추 김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포르노의 지나친 범람은 기존의 도덕관·가치관에 대한 위협을 가져다줄 수가 있으며 이는 다시 그들의 지배질서에 대한 위협으 로 이어질 수가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는 포르노의 대한 일정한 수 준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비하와 상 품화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에 한 사회에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구조를 유지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는 남성이 패권을 잡고 있는 사회 의 지배구조를 지탱시키는 데 매우 유용하며 은근히 부추겨질 필요가 있 는 것이다. 이리하여 마광수 교수와 장정일씨가 법정에 서는 바로 그 순 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광범위한 여성의 상품화가 진행되고 청계천의 포 르노 시장이 흥청거리게 된다.

포르노의 이 이중적인 기능 때문에 나는 기존의 권위에 대한 장정일씨의 도전이 ‘포르노’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 생각한다. 이 자가당착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의 시도는 기존의 가 치관에 대한 공격과 그 사회에서 학대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 을 동시에 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를 인간다운 삶의 장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로서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였던 것이다.


‘반사회성’ 판단의 유일한 기준

장정일씨 소설의 반사회성을 가늠하는 잣대는 결코 권위주의에 젖은 판사 ·검사들의 ‘건전한 성도덕’이라는 관념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장정일 소설이 지니고 있는 ‘문학성’이 그런 잣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반사회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장정일씨가 아무 여성이 나 앉혀 놓고 그녀 앞에서 <내게 거짓말을 해 봐>를 진지하게 낭독할 때 그 여성이 “성적 모욕을 받고 있다” 혹은 “성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라고 느끼는가의 여부에 있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아마도 ‘평등’의 관점을 가지고, 즉 학대와 차별에 시 달리는 여성의 입장에 서서 포르노를 규제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란 사회적 불평등 위에 성립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우리 는 그러나 국가가 포르노를 규제할 수 있든 없든 평등의 관점을 가슴에 간직하고 표현의 자유를 쟁취해 나가야 하며, 바로 이 관점만이 싸구려 청계천식 포르노를 봉쇄하면서 가부장적인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성윤리 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평등의 관점 없이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는 영원히 해결 되지도 않을 것이다.

(캐서린 A. 매키넌의 에 자극되어 이 글을 썼다. 이 책은 < 포르노에 도전한다>라는 제목으로 곧 우리나라에서 출판된다.- 필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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