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대통령 막 가면 우리도 막 간다”

(사진/`대통령 하야'에 대한 김종필 총재의 공세는 격렬하다. 이에 비해 김대중 총재는 신중한 편이다. 5월27일 양당 총재회담.)

야권은 요즘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정치적 약자로서 야당이 늘 하는 단순 한 엄포가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전의로 가득 차 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자민련은 특히 공식적으로 정권퇴진을 요구하기로 했다. 비록 ‘조건부 정권퇴진’이지만 대통령의 하야를 공식 당론으로 채택한 것은 자민련이 처음이다. 김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결단을 내겠다는 자세이 다. 김 대통령의 하야문제가 정치적 현안으로 서서히 전면에 등장하고 있 는 것이다.

김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이런 강공은 지난 5월30일 김 대통령의 대선자 금 담화 직후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김 대통령이 대선자금 공개거 부를 천명하자 야당은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대선자금에 대한 ‘고백’은커녕 ‘사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내심 대통령이 대선 자금의 진상을 밝히는 고백은 하지 않더라도 사과 정도는 할 것으로 생각 했었으니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더욱이 김 대통령이 ‘중대결 심’ 운운하며 사실상 야당에 대한 ‘협박’과 함께 대선자금의 여야공동 책임론을 거론하자 “어이가 없다”는 허탈감마저 나왔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김 대통령의 담화를 듣고는 “해도해도 너무 한 다. 틈만나면 저런다.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다”고 ‘막가파식’ 행태에 넌더리를 냈다고 한다.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는 “분노와 좌절 과 오기가 겹쳐진 담화에 불과하다”고 혹평했으며, 김원길 정책위의장은 “중대결심말고는 메시지가 없는 거의 협박성 담화”라고 규정했다.

자민련도 “김 대통령의 담화는 한마디로 국민에 대한 배반이자 협박”이 라며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용환 사무총장은 “아직 도 김 대통령이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며 “국민회의와의 공조를 통해 강도높은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야당은 이미 김 대통령으로부터 대선자금 진상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고 보고 김 대통령에 대해 총공세에 나섰다. 담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 론도 야당이 강경투쟁으로 나서는 데 큰힘이 됐다. 대통령으로부터 항복 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국민회의보다도 자민련이 특히 강하다. 자민련 은 김 대통령에 대한 하야를 공식 거론하는 등 초강도의 투쟁을 천명하고 있다. 자민련은 대통령의 대선자금 담화 발표 직후인 5월30일 오후에 예 정돼 있던 강인섭 청와대 정무수석의 당사방문을 취소하는 등 즉각적인 반감을 나타냈다. 강 수석의 당사방문을 거절한 이유는 “대통령의 담화 발표 내용과 상황인식이 야권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이다. 김종필 자민 련 총재는 6월2일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전국지구당위원장회의에서 “ 대선자금 문제는 대통령이 스스로 공개할 때까지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지속적인 공세를 강조했다. 자민련은 또한 이날 지구당 위원장회의에서 김 대통령의 ‘조건부퇴진론’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김 대통령에 대한 강도높은 투쟁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야투쟁, DJ로선 위험한 도박

자민련의 조건부 하야 공세는 당의 목표인 내각제 실현과 직결돼 있다. 대선자금 문제를 대통령제의 대표적 악폐로 부각시킴으로써 내각제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언론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내각제 지지도가 꾸준히 상승할 뿐 아니라 이미 대통령 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민련은 이런 여론조사에 매우 고무 돼 있다. 최근 들어 내각제 실시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강력히 요구하는 등 현 상황을 내각제 관철의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결국 자민련이 하 야를 주장하는 등 YS(김영삼)에 대한 맹공은 내각제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압력인 셈이다. JP(김종필)가 “대통령 중도퇴진을 헌정중단 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내각제 실현 가능성을 염두 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국민회의는 여전히 하야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 고 있다. 최근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김대중 국민 회의 총재는 하야론에 대해 “국민여론은 김 대통령의 담화발표에 대해 매우 불만족스럽지만 하야요구가 다수가 아닌 것은 사실”이라며 ‘하야 론 시기상조’ 입장을 펴고 있다. 아직까지는 여론이 하야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당이 앞서 나갈 수 없다는 태도이다. 국민회의가 이처럼 하야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론 여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YS하야가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DJ(김대중)로서 는 ‘3김청산론’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YS하야 주장은 너무나 위험천만 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DJ는 YS가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오는 12월 대선에서 엄정중립을 지켜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입장 이다. YS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결국 여론 향배에 달려 있다

YS하야에 대한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이런 인식 차이는 바로 최종 목표가 서로 다른 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내각제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자민 련으로서는 YS의 하야로 인해 정치판이 깨진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 는 입장이다. 그러나`‘DJ 대통령’을 기대하는 국민회의로서는 YS하야는 자칫하다가는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 문에 매우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의 적’인 YS를 앞에 두고 하야문제 등 일부 이견은 일단 제쳐둔 채 공동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공동투쟁의 깃발로 대 선자금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수사를 새로 내걸었다. 단계적인 투쟁을 통해 YS에 대한 압력을 높여가면서 하야 문제에 대해서는 여론의 추이를 보겠다는 입장이다. YS하야 문제는 결국 여론의 향배에 달려 있는 셈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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