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6월12일 제 161호 한겨레21

경선대회 ‘아수라장’될라

(사진/5월29일 열린 신한국당 전국위원회. 대통령 후보경선 출마 입후보 요건의 완화 등은 일부 주자들의 탈당을 막기 위해 노력한 흔적으로 읽힌다.)

“전당대회는 12월 대선을 앞둔 집안 잔치이다. 당의 단합과 결속의 계기 가 돼야한다.” 신한국당 대권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7월21일 개최 하기로 확정한 5월29일. 이회창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신한국당 의원 및 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회창 대표는 요지부동

하지만 경선을 앞두고 초반 대세를 장악하기 위한 예비주자들의 힘겨루기 는 신한국당을 오히려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대표직 사퇴 를 둘러싼 이 대표쪽과 반이 대표 진영의 대립은 전당대회를 온전히 치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마저 던지고 있다. 논란의 결과에 따라 일부 대 선주자들이 탈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이기 때문이 다.

현재 반이회창 진영은 “공정한 경선을 위해 이 대표가 조기 사퇴해야 한 다”고 한 목소리를 내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박찬종 이한동 두 고문은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고 있다.

박 고문은 5월29일 “대선자금 공개불가 입장을 주도해 국정을 농단한 사 람이 더이상 대표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수위를 높인 뒤 31일에는 “경선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 6월2일까지는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이 대표를 몰아쳤다.

그러나 이 대표 또한 요지부동. “대표가 경선에 나오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오히려 “구체적인 불공정 문제가 제기되 지 않는 이상 6월 중엔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반이회창 진영의 공세에 떠밀려 지금 물러서면 ‘대세몰이’라는 경선전 략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사퇴=탈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 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 사퇴하지 않거나 대표 프리미엄을 최대한 챙긴 뒤 경선에 임박해 사퇴하는 것말고는 선택의 여 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이회창 진영, 특히 공격의 선봉에 선 박찬종, 이한동 고문 또한 이 대표의 이런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 이 대표가 계속 대표직을 유지할 경우 ‘이 대표 대세론’이 굳어져 당내 경선은 무의미한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대표 대세론’을 방치하기보다는 다른 결심을 하는 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두 고문의 최근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박 고문은 “내가 탈당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천명했는데 탈당할 수 있겠느냐”던 원칙론에서 6월1일 “불공정 경선이 행해질 경우 들러리를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경선 포기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 대표에 결코 뒤지지 않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굳이 패배가 불보듯한 경선에 출마 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박 고문 진영에서는 “각종 여론조 사 결과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서 “당내에서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을 경우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낫 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른바 ‘4자 필승론’에 입각한 탈당론 인 것이다.

‘복수 부총제 제도’등 구체적인 대안까지 내놓으면서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해온 이 고문 역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 아니 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 고문은 5월29일 기자 간담회에서 “정국혼란 을 순리적으로 조속히 해결하지 않을 경우 정권재창출과 국리민복이라는 막중한 책무에 차질을 빚은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당 총재에게 돌아갈 것 ”이라며 김 대통령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여당의 생리를 잘아는 이 고 문이 탈당 등 독자행동을 결심하지 않고서는 대통령까지 걸고 넘어질 수 없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실제 이 고문쪽도 “이 대표가 조기사퇴하지 않을 경우 중대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계속 흘 려왔다. 이 고문의 한 측근도 이와 관련 “경선결과를 승복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단순한 협박 차원을 넘어선 게 아니냐는 추측을 가 능하게 하고 있다.


정발협의 선택, 일대 파란 부를 듯

여권 핵심에서도 이들의 탈당 징후를 눈치채고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한 흔 적이 엿보인다. 5월29일 전국위원회에서 이뤄진 대통령 후보경선 출마 입 후보요건 완화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당초 신한국당은 후보난립을 막는다 며 8개 시도 이상에서 대의원 50~1백명 추천을 받아야만 출마가 가능하도 록 했다. 그러나 28일 박 고문 등이 사실상 출마를 제한하려는 조치라며 반발하자 전국위원회 개최 직전 예비주자들의 회의를 통해 3개 시도 이상 으로 서둘러 수정했다. 경선에 출마하려는 모든 대선예비주자들에게 길을 열어줌으로써 적어도 1차 투표 때까지는 탈당 등 분열을 최대한 막아보자 는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또 김 대통령이 지난 29일 대선예비주자 9명을 청와대로 불러 페어플레이를 당부하고 당 총재로서 공정한 경선 관리를 약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대권주자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경선에 이르는 먼 도정에는 대표 사퇴론말고도 대권주자들을 탈당 과 분열로 내몰 수 있는 많은 덫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되 는 것은 범민주계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의 선택이다. 현재 정발협은 일 단 세 확산을 통해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뒤 6월 말 후보등록과 때를 맞춰 지지후보를 선택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군가를 선택하는 그 순간 대권주자 사이에는 일대파란이 시작될 것이다. 최근 정 발협 안 최형우 고문계열 위원장들이 이수성 고문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발협은 정서적으로 긴장관계인 이 대표를 배제한 채 지역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까운 이 고문을 추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은 이미 구문이다.

이 경우 신한국당의 분열사태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띨 전망이다. 이 고문이 정발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강력한 경선 주자로 부상할 경우 그것 은 바로 이 대표의 몰락을 의미한다. 결국 이 대표가 경선의 불공정성과 영남권 배제를 주장하며 탈당을 통한 독자행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이 대표는 ‘대선자금 공개 불가’ 천명을 통해 탈당의 기 회와 명분을 상실했다는 분석이 우세하긴 하다.

이 밖에 이 고문과 정치적 기반이 같은 김윤환 고문이나 박찬종 고문의 탈당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김 고문의 경우 이 고문이 대구·경북지역 의 맹주로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고사를 의미한다. 최근 민주계 모임인 정발협과는 별도로 민정계 위원장 70여명을 중심으로 한 ‘신정치 회’가 결성되기 시작된 것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가 능하게 한다. 결국 경선 전야의 대분열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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