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북에서 온 편지 ① 인민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한겨레21>은 한 북한 지식인이 육필로 보내온 처절한 고뇌를 공개합니다 . 그는 지금도 ‘인민’의 한 사람으로 ‘인민’의 고통을 고스란히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이 편지는 대기근 이후 그 자신이 몸바쳐 사랑했고 또 지 키려했던 이념과 가치 그리고 인간의 파괴를 담은 절망의 기록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실상과 관련해서는 무수한 증언이 있어왔습니다. 그 증 언은 대체로 기아로 인한 북한 주민의 굶주림 자체를 전하는 것이었습니 다. 물론 탈북자들은 남쪽 권력자들의 시각과 희망을 실어 북한 정권의 전쟁 준비와 전면적인 봉기 따위를 전하기도 합니다.

<한겨레21>은 그동안 아쉬웠습니다. 그 어디에도 대기근이 인민의 삶과 가치와 그들이 지켜온 이념과 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반대로 기 근이 얼마나 처절했기에 그런 변화가 가능했는지를 알려주는 증언은 충분 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버린 사람들이 쉽게 내놓는 대기근 의 귀결, 즉 전쟁이니 봉기니 하는 전망은 오히려 남아있는 대다수 인민 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어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우리에겐 철저하게 ‘인민’의 높이에서 ‘인민’의 실상과 판단이 필요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우리의 형제들이고 언젠가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일하며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권력이 전쟁을 포함해 인민 의 삶을 총체적으로 좌우할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해도 끝내 그 권력을 만들어내고 또 권력을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그 ‘인민’이라고 보기 때 문입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절망적 현실의 깊이와 폭, 그로 인한 변화 따위를 모른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북한돕기의 온정도 주변의 걸인에게 던 지는 한 푼의 동정과 한 순간의 연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의 편지는 굳게 닫힌 무지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식량난이 가져온 인간의 파괴, 제도의 왜곡, 절망적 사회 상 그리고 권력의 비인간화 따위가 그야말로 ‘인민’의 시각에서 몸으로 기록돼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우리가 왜 그리고 누구를 어떻게 도와 야 되는지 분명한 판단을 제공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겨레21>이 ‘발각될 경우 9족이 멸하는’ 참극이 우려됨에도 이 편지 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그런 연유에서 였습니다. 단 그가 어디에 사는 어 떤 인물인지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편지 속에 나오 는 지명과 이름 따위도 모두 익명 처리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한겨레21>에 이 절망의 기록을 전해준 그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여러 제약 때문에 기사로서 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로 이 글을 전하게된 데 대해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북한, 1997년5월, 절망의 기록’은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 다. 대기근이 가져온 사회상을 기록한 1부 ‘인민은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에 이어 2부 ‘이제 인민민주공화국은 없습니다’ 3부 ‘인간이 파괴되 고 있습니다’ 4부 ‘권력은 인간의 모습을 잃었습니다’로 이어질 것입 니다. <편집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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