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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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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경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34세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16세에서 성 장을 멈췄다. 물오른 나무처럼 쑥쑥 커야 할 소녀의 여린 심성을 짓밟고 간 17년 전의 몇개월이 그의 의식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16세의 나이로 시위에 참가해 유인물을 돌 렸던 그는 계엄법 위반으로 연행돼 3개월 동안 고문을 당한 뒤 징역 1년 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는 이후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 리다 8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어린 남경은 “다시 는 한국말을 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를 고문했던 키 작은 남자와 각진 얼굴의 남자가 쓰던 한국말, 고문실과 감방을 들락거리며 그를 괴롭 혔던 환청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떠났던 이 땅에 지난 5월8일 돌아왔다. 가족마저 외면했던 자신을 거둬주겠다고 나선 미 국 펜팔친구 에릭 칸사키의 품으로 날아간 지 14년 만이었다. 고문의 후 유증과 정신발작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를 사랑으로 감싸안아 아내로 맞아 들였던 동갑내기 에릭의 손을 잡고 오씨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기억마저 해서는 안 될 나라”로 저주했던 조국에서의 상처를 씻 고 화해하기 위해 최근 쓰라린 지난 세월의 기록을 모아 <다시 피어난 꽃 잎>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총소리와 신음, 비명이 난무하는 도시, 음험 하고 살기등등한 눈빛, 내려치는 방망이, 욕조 안에 붉게 번지는 피… 나 는 이제 그런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 상처들을 다 떨어내고 싶다. 그래서 이 여행을 시작했다.”
정부가 주관하는 5�18 공식 기념식에 참가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 그는 이번 고국방문길에 화해를 위한 힘든 제안을 했다. 감옥에 있는 전 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 자신이 쓴 책 <다시 피어난 꽃잎>을 직접 전해주 고 싶다는 뜻을 출판사쪽에 내비친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들로 그의 제안 은 실현되지 못했다. 다만 그가 쓴 편지를 넣은 책을 우편으로 부칠 계획 이다. 그는 이 편지에서 “당신은 자유와 민주의 이상을 위해 희생된 무 고한 시민들 앞에 먼저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또 “이 책이 80년 대를 산 세대에겐 상처를 치유하는 한 계기로, 젊은 세대들에겐 역사를 향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발화점으로” 읽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