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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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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선자금 비공개 총대를 멨던 이회창 대표. 청와대쪽이 대선자금 언급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김심을 업고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이 대표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대선정국의 앞마당에서 정국이 다시 급랭하고 있다. 여당의 92년 대선자 금 불가 방침 천명과 대대적인 공직자 사정 착수에 대해 야권이 크게 반 발하면서 장외투쟁까지 계획하는 등 정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또 각종 정치·민생 현안을 다룰 6월 임시국회도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5월29일 오찬회동에서 직접 언급 예상
이와 함께 `92년 대선자금 ‘공개 불가’ 방침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혼 란이 극에 달하고 있어 정국의 풍향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여론의 외면 뿐만 아니라 이한동 이수성 박찬종 고문 등 신한국당 대선주자들조차 김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의 공개불가 방침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5월23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통해 공개 불가를 표명한 지 불과 사흘 만인 26일 오후 급기야 대선자금에 대해 김 대통령이 5월29 일 대선주자들과의 오찬회동에서 직접 언급하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1백8 0도 선회했다. 집권세력조차 대선자금이라는 폭탄을 앞에 두고 뇌관을 제 거하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일대 혼란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다.
김 대통령이 29일 오찬회동에서 언급할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확실 치 않지만, `사과하되 법정선거 비용 초과 여부 등 선거자금 내역은 불공 개' 원칙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청와대 기류이다. 이 대표가 걸머졌던 대선자금 총대를 김 대통령 스스로 되찾아 짊어질 뿐 내 용과 관련해 더 진전된 것은 없으리라는 얘기이다.
이 정도의 언급으로 야권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다. 야 권은 현재 비록 일각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언급 자체를 꺼려왔던 김 대통 령의 하야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야권은 그동안 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이나 대선잔여금 문제가 터졌을 때도 김 대통령의 `‘거취’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일에 야권으로서는 화가 치밀 대로 치민 것이다.
야권이 그럴 만했던 것은 한보 문제와 `‘현철게이트’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여권이 문종수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5월21일 느닷없이 대대적인 공직자 사정 방침을 밝히는 자리에서 “6월 임시국회가 꽤 시끄러울 것” 이라며 거물급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다수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더구나 청와대나 검찰쪽에서 내사 대상자들이 전원 야당 자치단체장들이 라는 사실이 흘러나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후보 당선을 몇차례에 걸쳐`‘축하’하던 청와대에 배신당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야당가에 파다했다.
청와대쪽은 이에 “임기말 중하위 공직자들의 기강을 바로잡기위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며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서는 한편 “민정수 석실에서 정치감각도 없이 지나치게 부풀려 화근을 자초했다”는 `‘자아 비판’을 야당쪽에 슬쩍 흘리기도 했다. 공직자 사정이 `‘잘못 꿰인 단 추’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야당의 화가 미처 풀리기도 전인 5월23일 이 대표가 다시 청와대 의 뜻을 받들어 대선자금 공개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것도 `‘자료 가 없기 때문’이라는 성의없기 이를 데 없는 이유로 말이다.
대선자금 언급없이 야당 공세 막기 어렵다
그동안 야권 공조의 틈새가 자꾸만 벌어져온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번 일을 계기로 5월26일 양당간 8인 공동투쟁위 회의와 27일 양당 총재 회동 및 양당간 합동의원총회를 잇따라 갖는 등 공조의 수준을 과거 이상으로 단숨에 회복했다. 두 야당은 대선자금과 관련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대선자금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양당 공동규탄집회까지 장 차 불사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5월23일 이회창 대표의 입을 통해 `대선자금 ‘공개 불가’ 입장을 밝힌 여권은 야당의 공세에 대해 당분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무대 응 전략’으로 일관한다는 계산이었다. 대신 5월29일 신한국당 전국위원 회 개최를 계기로 본격적인 경선체제로 돌입하는 등 대선국면으로의 전환 을 서두른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야권이 제풀에 지치기만 기다린다는 지구전 전략도 청와대쪽의 입장 전환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신한국당쪽에서는 “청와대쪽이 대선자금 공개없이 아무리 말을 번지르르 하게 늘어놓아도 국민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우며, 파죽지세로 밀고들어 오는 야권의 공세를 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한 번 무너진 방어선을 다시 세우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각 대선주자들이 대선자금 해법에 대해 총재-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적전분열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2차 방어선을 어디로 잡아야할지 망연 자실해하는 모습이다.
5월23일 이 대표가 김 대통령에 대한 주례보고 뒤 “해명 자료가 없어 대 선자금을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김 대통령의 `‘폭탄선언’을 호기있게 전한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여권이 “더이상 모르겠다. 해볼테 면 해보라”며 야당을 상대로 벌인 배짱 작전이 삼일천하로 끝날 조짐마 저 엿보이고 있다.
꼬일대로 꼬인 이번 공직자 사정과 대선자금 공개를 둘러싼 여야간의 대 격돌이 어디로 흐를지는 아직 예단하기 힘들다. 여권은 수순과 해법에서 질척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여차하면 야권의 92년 대선자금 도 물고들어간다는 물귀신 작전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여야 격돌은 본질적으로 3김간의 전쟁이면서 한편으로는 올 연말 대선 구도와 연결돼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대선정국 흐름을 좌 우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이회창 대표라는 대리주자가 등장 한 것은 단순한 3김싸움에 그치지 않고 다가올 연말 대선의 예비전에 돌 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회창 대표 자칫하면 낙마할 판
이 대표는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에 총대를 메고 나섬으로써 당내 대선구 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나아가 야권 양김씨와의 대립점에 자신을 세우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애초 대선자금 고백론에서 공개불 가론으로 입장을 바꾼 이 대표로서는 어쨌든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경우 당 내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찌보 면 야당이 아니라 김 대통령의 뒷걸음질에 채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낙마’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됐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