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성역 깬 검찰 국민 곁으로 한발

(사진/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심재륜 중수부장. 강한 외압에도 또하나의 성역을 깨는데는 성공했지만 `중립 검찰'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 아들에게 수의를 입혔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 구 속에 이어 또하나의 수사성역을 깬 것이다. `‘정권의 시녀’로 굳어져 있던 검찰이 모처럼 ‘국민의 충복’ 구실을 해냈다.

하지만 정작 검찰 내부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다. 대검의 한 중견검사는 “검찰이 미래를 향한 튼튼한 징검다리를 하나 놓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멀었다”라고 토를 달았다. “이번 수사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원칙, 수사팀의 고집과 권력의 외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절충 ’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외압 존재 밝히며 ‘외압’에 압력 행사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외압과 내압이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중립 검찰’로 가는 길은 아직도 산 넘어 산이라는 평가다.

외압이 가장 노골적이었던 때가 정치인 소환조사 및 형사처벌 과정이었다 . 1차 한보수사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는 거듭 얼굴을 붉혀가면서 “정태 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을 소환하지도 명단을 공개하지도 않겠다”고 강조하곤 했다. 범죄혐의가 없는데 어떻게 청사로 정치인들을 불러들이느 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검찰의 소환불가 논리가 법과 양심보다 외압 에 떠밀린 것이었음은 얼마 뒤 심재륜 중수부장이 들어서면서 사실로 확 인됐다.

심 중수부장은 33명의 정치인들을 모두 불러들이면서 “죄가 되는지 직접 불러 조사해봐야 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더욱이 정치인 수사결 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외압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33명의 정치인 명단을 공개하고 모두 소환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 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생각해달라.” 실제로 청와대는 소환조 사불가 압력을 강하게 행사했다.

형사처벌 대상자 선정과정에서도 중수부 수사팀은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서 한때 “문정수 부산시장 등을 형사처벌 할 근거가 없으니, 차라리 여야 정치인 모두를 불기소하고 국회윤리위에 조사내용을 통보하는 정도로 수사를 마무리하자”고 압력을 넣었던 것이 다. 당시 중수부의 몇몇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며 외압의 존재를 공공연히 알렸다.

외압의 절정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구속시킬 때였다. 백방으로 손을 써놓았던 안기부는 막상 김씨가 구속되자, “뒤통수를 맞았다”고 불쾌해했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이 검찰공화국이냐”며 수사검 사들에 대한 보복가능성을 흘리기도 했다. 실제로 검찰은 안기부의 입김 을 의식한 듯 김씨를 현철씨보다 나중에 소환했으며, 구속되기 바로 전날 까지도 김씨의 구속 가능성에 대해 함구하는 등 철저한 연막작전을 폈다.


안기부 “지금이 검찰공화국이냐”

(사진/죄수복을 입은 채로 검찰에 재소환되는 김현철씨. 7명의 검사들이 4개월 동안 수사를 벌인 끝에 구속할 수 있었다. )

이와 관련해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술자리에서 “나는 여자와 돈 관계가 깨끗해 뒷조사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전화가 도청당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등 외부기관으로부터 가해지는 견제와 압 박을 시사했다.

경제관료와 은행장 수사과정에서도 전방위 로비와 압력이 행사되기는 마 찬가지였다. 주로 경제논리를 명분삼아 가능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은행 장 구명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은행장을 더 잡아넣으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가 아예 무너진다”는 논리가 확산되자, 청와대에서는 급기야 전직 경제수석 및 은행장 처벌불가 입장을 검찰에 전달했다. 그 결과가 ` ‘메모지 누출 파동’으로 벌어져, 한때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일촉즉발 의 위기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심재륜 중수부장은 “경제논리는 경제 논리고 수사논리는 수사논리”라고 맞섰으나, 결국 은행장 등에 대한 애 초의 업무상배임죄 적용은 스스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의 정점인 김현철씨 구속과정에서의 외압은 가장 세련된 형태로 나타 났다. 소환대상자 중 누구도 속시원하게 입을 열지 않았다. 돈을 줬다는 기업인들이 하나같이 “동문 후배를 돕자는 순수한 마음”이었다는 식으 로 범죄구성요건을 피해나갔다. 중수부의 한 수사검사는 “기업인들은 현 직 대통령 아들로부터 닥칠 수 있는 후환을 두려워했지, 눈 앞의 검찰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몇몇 기업인들은 조사를 받은 뒤 정치권으로 달려가 “검찰에서 잠을 안 재우고 폭력적으로 답변을 강요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에 대해 중수부 관계자는 “중수부가 잡범 다루는 곳도 아니고 더욱이 그 들은 현직 대통령 아들의 측근들”이라며 “정치권의 힘을 업고 중수부의 공신력을 무너뜨려 결국 현철씨 수사팀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라고 말했 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 결과를 두고 “외부의 압력을 이기고 이만큼이 라도 해냈다”고 자부하기에는 아직 약점이 많은 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했다. 대선자금 수사를 포기하고, 돈받은 정치인들을 한명도 구속시 키지 않는 등 주요 대목에서 수사외(外) 논리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내 압’의 존재가 외압 못지 않게 검찰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이 확인된 것 이다.


법과 논리보다 대통령 지시가 앞선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지금까지 검찰총장직은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치는 최고권력자의 최측근 자리였다”며 “검찰총장에게 법과 양심을 따르는 수사논리는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친 다음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들 스스로가 법보다 대통령의 지시를 먼저 따르는 구습을 여전 히 떨치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의 일선조직들 또한 그런 굴레에 묶여 있 다는 것이다.

김현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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