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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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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누가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손을 잡게 하는가? 최근 삐걱거리던 야권공조가 청와대의 대선자금 고백 거부와 야권 단체장에 대한 전면 사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DJ와 JP를 뭉치게 하는 데는 YS가 일등공신이다.’ 최근 이상기류를 보이며 삐걱거리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야권공조가 청 와대의 대선자금 고백 거부와 야권 단체장에 대한 전면 사정으로 되살아 나고 있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지난 5월19일 국민회의 전당대회 이후 김종필 총재의 독자출마시사 등으 로 �를 다짐하는 등 야권공조 대열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야권 단체장 에 대한 사정 등으로 공격해오는 YS의 위협 앞에 공동대응을 천명하고 나 선 것이다. 국민회의가 전당대회에서 내각제를 당론으로 확정하지 않아 빚어진 자민련과의 갈등도 일단 뒤로 제켜졌다.
그동안 YS는 DJ와 JP 사이가 소원해질 쯤이면 항상 강공책을 써 두 사람 을 뭉치게 해왔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안기 부법 재개정과 노동법 처리에 대한 이견으로 공조에 적신호를 보였다. 그 러나 12월20일 최각규 강원도지사가 자민 자민련 의원들이 신한국당으로 입당하자 자민련이 대여강경투쟁으로 바꿨 다. 자민련은 애초 당론을 바꿔 안기부법 개정안 정기국회 처리를 실력저 지하기로 하는 등 국민회의와의 공조강화로 돌아섰다. DJ와 JP도 바로 국 회 귀빈식당에서 회동해 야당의원 빼내가기 저지에 강력히 대응하고 나섰 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15대 개원국회가 열리자 JP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내각제 개헌 손짓을 보내는 등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며 DJ와 거리감을 두 려고 했다. 그러나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이 야당의 두 김 총재를 비난하 는 발언을 하자 JP는 DJ를 설득해 이미 예정돼 있던 청와대 영수회담을 거부해버렸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야권공조 시발도 따지고 보면 YS에 대한 ‘JP의 `배신감’ 때문이었다. 지난해 4월 15대 총선이 끝난 뒤 JP 는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따질 것은 따지돼 도울 것은 돕겠다’며 유화 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4월 영수회담에서 여야대화를 통한 정치를 강조해놓고 청와대가 자민련 의원 등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하고 나서자 JP가 DJ에게 공조를 요청하며 서울 보라매공원 장외집회에 나란히 섰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