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3인조

최미애/ 영화평론가

감독 박찬욱/출연 이경영 정선경 김민종

박찬욱 감독은 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이래 오 랫동안 작품을 만들지 않고 영화평론가라는 직함으로 활동해왔다. 그가 첫 작품을 만들고 나서 5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후속작품을 만들지 못 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데뷔작이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 있다고 추정된다. 그는 신인감독다운 패기와 영화광적 인 열정으로 기존의 주류 또는 대중영화에 포섭당하지 않는 실험적이고 사적인 영화에 도전했지만 그의 진지하고 새로운 시도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번째 작품, <3인조>를 만들기 까지 여러 지면을 통해 영화에 대한 박학다식한 지식과 논평을 펼치는 것 으로 제대로 분출되지 못한 그의 욕구를 대체해왔다. 물론 그의 지향점은 소위 컬트영화 또는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3인조>는 박찬욱 감독이 그동안 글쓰기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개 인적인 영화적 관심을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만들기의 틀과 조합시켜 탄생한 산물이다. 이 영화는 결코 심각한 척, 난해한 척하지 않으면서 한 국관객들에게 아주 익숙한 남자2, 여자1로 이루어진 3인조 아웃사이더 집 단의 좌충우돌 난투극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 면 의외로 근친상간, 친자유기, 존속살해 등과 같이 일반 대중영화에서 금기시되어 온 까다로운 쟁점들을 건드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이 모든 쟁점의 발원지를 해체되고 일그러진 현대의 가족에서 찾고자 한다. <3인조>에 등장하는 세명의 주인공, 안(이경영)과 문(김민종), 마리아(정 선경)가 서로에게 쉽게 동질감을 느끼고 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 모 두가 가족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몰락한 색소폰 연주자인 안에게는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대낮에 낯선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아내의 외도가, 깡패조직의 조직원인 문에게는 어린시절 어머니에 게 버림받고 고아로 자란 어두운 과거가, 그리고 한때 수녀가 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카페 여종업원이 된 마리아에게는 자신을 강간한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기억의 원천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대중관객의 호응을 염려한 탓일까? 영화는 갑자기 왜 가 족의 해체로부터 생겨나는 엽기적인 금기위반의 문제를 들먹이는가에 대 한 대답을 잊은 채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세상에 대고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하는 3인조의 화끈한 액션과 아버지의 강간으로 세상에 태어난 마리 아의 아이를 찾아가는 3인조의 눈물겨운 행로를 묘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시외전화 082, 박카스 등과 같은 광고의 패러디, 예술영화전용관 에 대한 농담, 개그맨 서경석/이윤석 콤비의 출연 등을 통한 웃음과 재미 유발로 어두운 영화적 소재가 야기할 수 있는 중량감을 신속히 덜어내는 데만 치중한다. 이 영화의 영화적 상황을 빌려 표현하자면 마치 아이큐15 0선에서 문제제기한 것을 아이큐80선에서 해결하려는 것처럼.

설혹 우리가 박찬욱 감독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영화적 형식을 빌려 가 족의 해체와 관련된 진지한 주제를 탐색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십분 이해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더이상 전통적인 의 미의 가족이 존속할 수 없으며, 가족의 해체와 왜곡이 필연적이라는 사실 을 직시하자고 얘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에 대한 진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3인조>는 남편과 아이를 저버린 아 내를 가차없이 살해하고 딸을 범한 아버지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데 아무 런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문과 안, 마리아와 마리아의 딸로 구성 된 대체 가족을 구성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 적인 가정에 대한 강한 희구를 드러낸다. 믿기지 않겠지만 <3인조>가 들 먹였던 그 소름끼치는 금기의 목록들은 고작해야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의 복원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단순한 재료에 불과했 던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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