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광덕산 더덕

포수의 총을 맞고 쓰러지는 꽃사슴은 죽으면서 자기의 아름다운 뿔을 한 탄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아마도 코뿔소는 자신의 코 뿔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반달곰은 자신의 쓸개와 발바닥이 한스러울 것 이다. 식물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더덕은 그 향이 독특해 아무리 깊 은 숲속에 숨어 있어도 나물꾼들의 날랜 손길을 피하지 못한다.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포천군이 만나는 광덕고개 마루턱에 나물전을 펴 는 광덕리 마을 아주머니들은 산에 더덕을 캐러갈 때 가느다란 지팡이를 들고 간다. 더덕이 있음직한 계곡을 더듬어 올라가며 수풀을 툭툭 건드리 면 막 실오라기처럼 돋아난 더덕잎이 금세 짙은 향을 뿜어내 자신의 은신 처를 알려준다.

더덕은 바람이 잎을 슬슬 건드리기만 해도 그 특유의 향을 내뿜어 주위를 향기로 가득 채운다. 특별히 곤충이나 짐승들의 후각을 자극해 자신을 방 어하려는 뜻도 없으면서 거의 숙명적으로 자신을 노출시켜 뿌리가 뽑히는 변을 당하는 것이다. 나물꾼들은 이같은 더덕의 속성을 사정없이 이용해 광덕산을 비롯한 인근의 화악산과 백운계곡, 좀 멀리 있는 대성산까지 올 라 더덕을 캐온다.

한참 더덕이 많던 시절에는 계곡 하나만 뒤져도 다 지고 내려오기가 힘들 정도로 포대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더덕이 실하고 맛이 뛰 어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과 경인지역에서 버스까지 대절해 캐러오 는 통에 지금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요즘은 야생생물 연구단체의 현수막까지 차에 걸고와 수십명씩 떼지어 산을 뒤져 채 크지도 않은 것까 지 모조리 뽑아가는 바람에 더덕캐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덕분에 더덕값 이 치솟아 수익만큼은 예전 못지 않다.

고개 정상에는 휴게소가 두곳 있고, 휴게소마다 한쪽으로 나물과 잡곡류 를 놓고 판다. 좁은 공간에 휴게소가 둘인 것은 한쪽은 강원도에 속하고, 또 한쪽은 경기도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한발짝 내려서면 민박촌과 식당들이 몇집 있다. 제일 위쪽에 있 는 산골식당(0363-441-6567), 일명 ‘샘 나오는 집’은 더덕이 한참 나던 10여년 전부터 더덕구이를 전문으로 내고 있다. 물론 광덕산 명물인 자연 산 더덕이다. 10년이 넘도록 나물을 대주는 마을의 나물꾼들은 더덕 중에 서도 5~10년에 가까운 실한 것들을 따로 모았다가 가지고 온다. 그래서 맛과 향이 남다르다.

주인 조간난(61) 아주머니는 이것을 흙이 반쯤 담긴 항아리에 소중하게 담아놓고 손님들이 주문을 해야만 꺼낸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껍질을 벗 기고 칼자루로 자근자근 두들겨 결을 부드럽게 풀어준 다음, 양념을 얹어 구이를 하거나 생채로 무쳐준다. 미리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놓거나 양념 을 해놓지도 않는다. 아무리 향이 강해도 껍질을 벗겨놓으면 향이 달아나 기 때문이다. 더덕은 향 자체가 풍기는 독특한 멋이 있어 아무리 바빠도 즉석에서 조리한다.

이곳에서 더덕구이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거의가 단골로 이 맛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어서 아무 불평없이 기다린다. 더덕을 요리할 때면 식당 안 에는 더덕향이 가득 배어나고, 그 신선한 향에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빨간 양념이 밴 포실포실한 더덕구이가 상에 오르고,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힐 때면, 쌉쌀하면서 단맛이 혀끝에 감치고, 그 향이 온몸에 배는 것만 같다. 마치 삼키기 아까운 귀물을 입에 담은 느낌이다.

더덕구이는 한 접시에 값이 무려 2만원이다. 산 아래 백운계곡에서 1만5 천원 하는 재배더덕에 비해 5천원이 더 비싸지만 이 맛을 잊지 못하는 단 골들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희색이 만연한 모습으로 찾아든다.

약효 뛰어난 산채의 왕자

두릅을 산채의 여왕이라고 한다면 더덕은 아마도 왕자격이 되지 않을까. 더덕은 구워먹는 산채로도 나물 중 으뜸이다.

더덕은 봄에 싹이 터 줄기가 뻗을 때 캐기 시작해 8월까지 캐는 여름 산 채다. 인삼처럼 뚜렷한 성분은 없지만 다량의 사포닌을 비롯해 무기질이 고루 들어 있으면서 약효가 뛰어나 예로부터 인삼처럼 다뤄오는 약재이기 도 하다.

사삼(沙參), 백삼(白參), 지모(知母), 가덕(加德), 현삼(玄參), 고삼(苦參) 등 이름도 다양하다. 효능은 거담, 건위, 강장에 뛰어나고 폐와 위, 신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덕은 먹는 법도 까다롭지 않아 그저 가장 맛있게 먹으면 된다. 생채와 찜, 산적, 자반, 무침 등 여러 가지 조리방법이 있지만, 가장 맛있는 것 은 역시 구이를 첫손으로 꼽는다. 잘 익은 더덕술이라도 한잔 곁들이면 어떨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