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주장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책값 할인 누가 막는가

사교육비가 공교육비의 몇배를 넘는 문제는 한국의 교육을 비난하는 주된 화젯거리가 돼왔다. 며칠 전 소비자보호원 조사에서는 이러한 엄청난 사 교육비 지출이 대학수능시험이라는 시험제도 자체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린아이들 숙제내주기라도 하듯 만들어내 입시생 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교육비의 비정상적인 지출은 한때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능하 게 한 높은 교육열(지금은 학벌중심의 사고와 사회체제의 문제로 지나치 게 과열되긴 했지만)과 공교육의 부실이라는 근본적이고 뿌리깊은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상대적으로 쉽 게 고칠 수 있는 부수적인 문제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재판매가격유지제도는 제조업자가 브랜드 이미지의 고급화라든지 특정상 품의 보호를 위해 도매업자나 소매업자가 상품을 재판매할 때 판매가를 유지하는 제도다. 편의점에서는 가격이 4백원인 라면이 슈퍼에서는 3백60 원, 백화점에서는 3백50원, 프라이스클럽 등의 대형유통할인매장에서는 그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현실에서는 재판매가격유지제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재판매가격유지제도가 금지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시에 의해 위의 목적(이미지 고급화 등)을 위한 몇몇 상품들이 이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서이다. 대형서점을 가든 동네 문방구를 가든 어디를 가든 책가격은 차이 없이 균 일하다. 이 제도는 초기엔 우리나라의 영세한 출판업자들을 보호하기 위 해 실시됐다. 그런데 과연 출판업자들은 영세하기만 한가?

고등학교 3학년 책상을 들여다보면 똑같은 과목의 문제집이 적어도 두 가 지는 된다. 학원교재, 내가 공부할 것, 학교교재 하며 참고서를 꼽아보면 족히 30권은 되고도 남는다. 서점에 가보면 쉽게 알겠지만 두께가 2cm도 채 안 되는 문제집 한 권을 사려면 만원짜리 한장이 날아간다. 천원짜리 한두장을 받으면 그것도 다행이다. 입시생 시절 문제집을 5천원에 사면서 책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투덜대던 것은 호사에 겨운 소리였던 것이다. 서점 매출액의 80% 정도가 입시용 참고서적과 문제집 판매에 의한 것이라 고 한다. 이것이 어디 영세한 출판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란 말인가 ? 이는 단지 예전 공정거래법의 구닥다리 규정을 뜯어고치지 않는 안일한 행정의 폐해에 지나지 않는다.

학벌만능주의의 폐해를 고치는 것도 중요하고 알맹이없는 교육제도 개혁 도 문제다. 사교육비 지출을 증가시켜 가정경제, 국가경제를 어렵게 하고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도서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

박현주/ 나우누리 pippin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