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미룰 수 없는 과학의 세속화

최근 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함께 모여 현대과학의 성격과 문제점을 논의 하는 학술회의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이 학술회의는 환경파괴와 생명윤리 침해 등의 이유로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높아가는 사회적 분위 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C.P. 스노우가 언급했던 ‘두 개의 문화’ 간 대화 촉진을 통해 바람직한 과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초 미국 캔자스대학교에서 열린 <과학과 그 비판>에 관한 회의 도 그러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리학자, 화학자, 생태학자 뿐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언론학자, 인류학자들이 다양하게 모여 과 학의 실천관행과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 그리고 ‘두 개의 문화’간 대화 가능성까지 폭넓게 논의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초빙강연을 한 영국 더럼대학교의 과학사회학자 스티 브 풀러는 4백년 전에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통해 권위를 버리고 ‘세속화 ’를 단행한 것처럼, 오늘날 과거의 기독교 못지 않게 권위를 누리고 있 는 과학도 세속화 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과학비판은 바로 과거 프로테스탄트개혁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중세시대에 기독교는 가장 권위있는 지식체계이자 정치적 권력의 원 천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17세기에 새로이 형성된 민족국가들이 교회의 재산을 탈취함으로써 시작됐다. 특히 1648년 베스트 팔렌조약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래 1백년 동안 유럽을 휩쓴 종교분 쟁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교회와 국가는 법적으로 분리됐고 종 교적 권위의 지배권은 그 종교의 신도에게 국한됐다. 이러한 세속화는 오 히려 국가에 의한 종교 개입을 막는 효과를 가져와 자유로운 종교생활에 유리했다. 국가도 종파간의 분쟁에서 초연할 수 있어 정치적 안정에도 도 움이 됐다.

그러나 18세기말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당시 유 럽 지식인들에게 “사회안정을 위해서는 과거 가톨릭 교회가 누렸던 신성 한 지위를 갖는 사회제도가 다시금 필요함”을 절감케 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연과학이야말로 그러한 자격을 갖는 제도라고 생각한 것은 과 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콩트였다. 콩트는 이러한 사 상을 가리켜 ‘실증주의’라 불렀다. 과학은 종교를 대신해 인류를 구원 할 새로운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믿었고 과학자는 따라서 과거 교회의 성 자 같은 존재로 추앙됐다.

결과적으로 과학이 종교의 세속화에서 행한 역할은 이중적이다. 즉 과학 은 단지 종교를 탈신비화하는 비판적 역할을 넘어서 자기 스스로 종교와 비슷한 새로운 권위적 지위에 오르게 됐다. 과학으로 하여금 이런 지위에 오르도록 만든 것은 국가의 후원이었다. 특히 2차대전과 냉전을 치르면서 국가는 막대한 자원을 과학에 투입함으로써, 거대과학의 출현을 비롯해 과학의 발전경로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그리고 오늘날은 세계적 경제전 쟁이라는 상상 속의 전쟁으로 과학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지금이야말로 과학과 국가간의 이러한 결합을 끊어야 할 때 라고 풀러 교수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국가 후원에 의해 특정 경로로 발 전한 과학이 오늘날 핵무기, 지구온난화 등 예측 못할 ‘위험사회’를 만 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과학이 좀더 작고 환경친화적인 대안적 과 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국가의 분리는 또 과학자들에게 다양한 사회집단의 지원을 요청하 게 만듦으로써 과학자와 대중간의 사회적 장벽을 없앨 것이라고 그는 주 장한다. 그는 또 여기서 과학 생산에 시민참여를 촉진하는 효과도 내다보 고 있다. 이렇게 신성한 권위와 국가의 후원이 제거된 ‘세속화’된 과학 이 오히려 현재 기독교가 그러하듯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그는 낙관했다.

김환석 교수/ 국민대 사회학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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