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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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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저지형도는 해저케이블 설치를 비롯해 과학 경제 군사적 용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컴퓨터로 바다 속 지형을 디자인한 단면도.)
최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바다 속 지형 탐구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이에 대한 국내 연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선진국들은 ‘다중채널 음향측정기’ 등 최신 수중음파탐지기를 이 용해 바다 속을 좀더 깊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 다. 이는 인류 최후의 경제전쟁터가 될 ‘바다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선진국의 국가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해양학과 박용안 교수에 따르면, 현재 미국 등 선진국은 수중 2천 m 정도까지의 해저지형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최근 더 깊 은 바다 속까지 지도의 범위를 넓히려는 것은 그만큼 해저지형도가 갖는 과학·경제·군사적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중채널 음향측정기 등 신기술로 접근
바다 속 지형은 고대부터 내려온 인류의 관심사 중 하나다. 바다의 깊이 를 재려는 인간의 노력은 기원전 8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포시도 니우스라는 그리스인은 바다 속 깊이를 재기 위해 지중해 한가운데에 배 를 세우고 2km나 되는 로프 끝에 돌을 매달아 늘어뜨렸다. 비록 수공업적 인 방식이었지만, 그뒤 수세기 동안 그보다 나은 방법을 알아낸 이는 없 었다. 이런 원시적 방법에서 한걸음 나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뤄졌다.
1920년에 등장한 메아리현상 응용법이 그것이다. 이는 소리를 바다 밑에 쏘아 음파가 바닥을 맞고 반사돼 나오는 시간을 재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 이다. 해양지리학자들은 이 방법을 씀으로써 불충분하게나마 바다 밑의 진짜 모습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바다 속 지형 연구는 이후 냉전시대의 군사적 요구와 탈냉전 시대의 경제 적 고려 속에서 급속하게 발달해왔다. 특히 지난 81년 미국에서 시작된 전세계 해양국가들의 ‘200마일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는 이런 현상에 속도를 보탰다. 미국은 지난 93년에 이미 태평양·대서양·멕시코만을 아 우르는 20만㎢ 지역을 해저지형도로 완성했다. 이는 남한의 크기와 맞먹 는 넓은 지역이다. 섬나라인 일본도 컴퓨터를 이용한 해저지형도 확보사 업을 국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다중채널 음향측정기다. 이 측정기는 이전까지 한 탐사선이 한 채널의 음파만을 발사했던 데서 벗어 나, 한 탐사선에서 수십개의 음파를 발사함으로써 여러 지역을 동시에 측 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음파 발사와 함께 컴퓨터가 입체적으 로 지형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로까지 발전해 바다 속 지형 연구의 시간 과 비용을 훨씬 줄이고 있다.
선진국들이 이렇게 바다 속 지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최근 급속도로 늘어가는 통신 수요는 해저케이블 증설을 요구하고 있다. 해저지형도는 케이블 설치에 필수적이다. 케이블을 마구잡이로 깔면 해양 생물이 들러붙어 몇년 안에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식이 잘되는 지형 에 설치해도 비슷한 결과를 빚는다.
또 원유생산국들이 시추선을 옮겨놓을 자리를 결정하는 데도 필수적이고, 바다 속에 폐기물을 버리기 위해 좀더 안전한 곳을 찾을 때도 지형도는 중요하다. 이 밖에 인공어초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항의 구조에 따라 고기가 사는 조건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처럼 적당한 지형에 어초를 형성해줘야 물고기들이 집단적으로 몰려와 살 수 있다. 지형도는 또 항구 나 방파제 건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형을 적당히 이용해야 파도를 막을 수 있고 배들이 안전히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해저지형도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 활용 가 능성이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특히 길이 1~2km, 너비 5백여m 모래톱이 며칠 만에 생길 수 있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경우, 이 해저지형도의 가 치는 매우 높다. 해저지형도가 갖춰지면 바닷길을 잘 아는 뱃사람들도 가 끔 걸려든다는 이 모래톱 발생에 대한 상시 모니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 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해저지형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해저지형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잠수함 보유국 이지만 이들 잠수함이 제기능을 발휘하려는 바다 속 지도는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형도 없이 행한 여러 공사 등에서 이미 커다란 불이익을 보고 있다. 동해의 주문진항이 대표적 사례다. 주문진항 은 방파제 안에 쌓이는 모래 때문에 해마다 막대한 돈을 들여 모래를 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형도를 이용해 방파제 공사를 했다면 미리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해안 군산 외항도 마찬가지다.
해안선과 가까워 수심이 앝은 곳이 이런 상태라면 수심이 조금만 깊어지 는 곳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 한 학자는 “우리나라의 항구 중 실 패작들이 많지만 쉬쉬 하고 밝히지 않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군사분야의 허점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해 저지형도가 없는 한국해군은 해저의 정확한 길과 위치를 주한미군이 관리 하는 ‘공역도’에 기대야만 한다. 만일 주한미군이 이를 보여줄 수 없다 고 하면 한국해군은 거의 눈뜬 장님이 되고 만다.
해저지형도 없이 해양주권 찾을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과학기술처 산하의 한국자원연구소, 해양수산부 산 하의 국립해양조사원, 그리고 정부출연기관인 해양연구소가 각각 해저지 형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그러나 아직 지형도를 본격적으로 만들 계 획은 세워져 있지 않다. 다만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지역들에서 물이 빠져나간 만큼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정도다. 간조선에서 수심 2백m까지 의 바다인 대륙붕의 지형도도 아직 없는 상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서해안 은 전부가 대륙붕이다.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