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
|---|
(사진/왼쪽 손으로 글씨를 쓰는 어린이. "요즘 왼손잡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왼손잡이가 늘고 있다.”
최근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관찰’ 결과들이 심심 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과거 한반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 하던 왼손잡이들이 최근에는 학급당 2, 3명 많게는 3, 4명이나 되는 경우도 있다. 왼손잡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또 서울 강남과 신도시 지역의 일부 부모들은 자녀의 예술적 재능을 키운 다며 왼손 사용을 적극 장려하는 경향까지 있다.
군대서도 왼손잡이용 소총 보급
그러나 왼손잡이 증가는 그것이 광범위한 조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이 상, 교사들의 단순 ‘관찰’이나 ‘설’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특 히 생물학적으로 볼 때 왼손잡이 성향의 아이들이 어느 시기에 일시적으 로 많이 태어날 리도 없고, 오른손 중심의 사회에서 오른손잡이를 왼손잡 이로 교정하는 일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왼손잡이에게 특히 유리하 다 하여 왼손잡이 선수 비율이 높은 야구에서도 왼손잡이가 대폭 늘어났 다는 증거는 없다. 1983년 프로야구 출범 첫해 등록선수 1백43명 중 왼손 잡이는 28명으로 19.58%. 그리고 14년이 지난 올해 선수 4백96명 가운데 왼손잡이는 19.95%(우투좌타 2.21% 포함)로 83년도와 큰 변화가 없다.
교사들의 관찰은 그러면 ‘우연’일 뿐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런 ‘선례’도 있다. 20세기 이전만 해도 청교도 문화 의 영향으로 왼손잡이에 대한 금기가 강했던 미국에서도 1930년대 이후 왼손잡이들이 증가했다. 이 시기 들어 왼손잡이에 대한 속설이 학문적으 로 속속 바로잡혀지면서, 왼손잡이에 대한 억압적 교육관행이 점차 완화 됐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군대에서 왼손잡이용 소총이 보급되고 있 다. 소총을 따로 생산해야 할 만큼 신세대 장병 중 왼손잡이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금기가 서구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우리 사회에서 왼손잡 이가 증가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연구가 핵가족으로 인해 아동들의 정서불안이나 정신장애가 사회문제로까 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아동심리, 행동 발달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과 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학자 중 유일하게 왼손잡이 연구로 학위 를 받은 신경심리학자 강연욱 박사(삼성의료원)는 “손 사용 문제는 현대 신경심리학 분야에서 인간의 인지 지각 정서 발달과 대뇌기능과의 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나 일본에 비해 이 부분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 연구가 매우 소홀하다”며 연구의 중 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정신과 치료나 뇌기능 연구에서 검사방 법이 모두 오른손잡이 위주여서 환자가 왼손잡이 성향일 경우 제대로 된 치료나 연구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왼손잡이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5%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강 박사 등 극소수 전문연구자의 조사를 제외하고는 아직까 지 광범위한 왼손잡이 분포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5%란 수치도 순전 히 추정치일 뿐이다.
이에 따라 <한겨레21> 취재팀은 실제로 왼손잡이가 늘고 있는지를 알아보 기 위해 음으로 왼손잡이 분포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여자 어린이 분포, 특히 높아져
(사진/왼손잡이는 열중쉬어를 했을 경우 왼쪽 손이 밖으로 나온다. 박수를 칠땐 왼쪽 손이 위로 올라간다.) )
‘왼손잡이’의 범주는‘모든 손 활동을 왼손으로 하는 사람은 물론, 글 쓰기와 밥먹기는 오른손으로 하되 나머지 대부분의 손사용을 왼손으로 하 는 경우도 왼손잡이’라는 한국 학계의 일반적인 분류기준에 따랐다.
조사는 같은 지역권에 속하는 학교로 서울시교육청이 임의로 선정해 준 서울 영등포구 신길1동 영신고 2학년 남녀 6백39명(1980년도 출생자)과 영신초등학교 1∼3학년 7백89명(1988~90년 출생자)을 표본으로 됐다. 또 이 조사결과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서울 고려고 2학년 남학생 93 명에 대해 같은 조사를 했다. 조사 내용은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분포와 왼손을 쓰다가 혼나거나 교정교육을 받은 경험 여부, 실제 어떤 일을 할 때 어느 손을 자주 사용하는지 여부,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손 사용 여부 등이었다.
조사 결론은 왼손잡이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선 교사들 의 ‘관찰’은 실체적 진실에 근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영신고 2학년 남녀 6백39명(남자 3백5명 여자 3백34명) 중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27명으로 전체의 4.22%였다. 이중 남 자는 5.90%(18명)이고, 여자는 2.69%(9명)였다.
반면 영신초등학교 1∼3학년생 7백89명(남자 4백19명, 여자 3백70명) 중 왼손잡이는 55명으로 전체의 6.97%. 영신고 오빠 언니들보다 2.75%포인트 나 높다. 이중 남자 어린이는 6.92%(29명), 여자 어린이는 7.02%(26명)로 나타나 영신고 2학년 보다 1%포인트에서 4.33%포인트가 높았다. 특히 여 자 어린이의 왼손잡이 분포가 무려 4%포인트 이상 높은 것은, 다소 과장 된 응답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강했 던 왼손잡이 금기의식이 급속히 완화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고 있 다. 이와 관련해 어렸을 때 왼손을 주로 쓰다 놀림을 받거나 가족, 교사 로부터 혼난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 영신고 학생들의 5.32%가 응답한 반면 , 영신초등학교는 4.94%로 줄어 역시 왼손잡이에 대한 금기의식이 약화되 고 있음을 뒷받침했다.
서울 고려고 2학년 2학급 남자 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왼손 잡이 분포가 전체의 6.45%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나이 또래인 영신고 남 학생과 0.55%포인트의 편차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어린이, 청소년 중 왼손잡이는 1980년 출생자 의 약 4%전후에서 1990년대에는 약 7%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왼손잡이를 전체 인구의 5% 전후로 볼 때 대단히 급속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교육관·가치관 반영하는 세태
이에 앞서 강연욱 박사가 지난 93년 1970년 전후에 태어난 대학생 8백53 명(평균연령 20.9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응 답한 학생은 3.7%였다.
결국 1970년 전후 출생자 중 3.7%이던 왼손잡이가 1980년에 4.22%로, 다 시 1990년 전후 출생자에서는 6.97%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증가치는 성 장하면서 점차 오른손잡이화하는 경향이 강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왼손잡 이 성향의 한국인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우선 새로운 교육관의 형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1990년 대 들어 자녀교육에서 특히 개성과 창의력이 강조되고 그 잠재력 계발에 대한 관심이 학부모 교사 사이에 증폭되면서 왼손잡이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창의력연구소 이기우 소장은 “왼손잡이가 대체로 인 간의 창조성에 큰 영향을 주는 우뇌의 관장을 받고 있다는 점이 널리 알 려지면서 학부모 교사들이 왼손잡이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고 있는 것 같 다. 여기에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고등교육을 받은 신세대 학부모들의 자 유주의적 교육관이 왼손잡이 증가의 요인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
왼손잡이 증가는 또 일정 부분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집단주의 에서 개인주의로, 획일성이나 전체성에서 다양성과 개성화로, 점차 한국 인의 가치관의 등장이 수천년간 금기시되어온 ‘왼손의 가치’를 부활시 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돼온 한국사회의 서구화가 이제 ‘체화’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한 하나의 단초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조사가 미흡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보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왼손잡이 증가 추세는, 문화 적 사회적 영향보다는 아직 손 사용이 확정되지 않은데 따른 ‘혼란기’ 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렸을 때는 왼손성향이 높았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이나 도구가 거의 모두 오른손잡이 중심인 사회에 적응 하기 위해 성장하면서 점차 오른손 성향으로 전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10세 이전 아동과 성인간의 단순비교는 다소 무리가 따른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를 밝힌 전문가들도 최근 한국사회의 문화 적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 추세에 미루어 왼손잡이 증가의 가능성을 완전 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었다.
‘손 사용 혼란기’ 가능성 진단도
사실 이번 조사결과가 한국사회에서 왼손잡이 증가 현상을 확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왼손잡이 증가 경향 ’은 앞으로 심리학, 교육학, 인류학 등 각 분야 학자들의 심도깊은 연구 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