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6월05일 제 160호 한겨레21

노벨상에 대한 ‘집착’

임석훈/ 독일 바일슈타인 화학연구소 연구원

서구인의 문화상식으로 볼 때 여러 가지 한국적 사유패턴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일등만을 선호하며 인정하려는 일등지상주의다. 또한 세 계 최고, 세계 최대에 대해서만 관심을 표시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며 우 러러보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두드러지게 형 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성향은 어릴 때부터 시험을 통해 일이등으로 선별함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상하관계로 규정하는 교육환경, 그리고 경쟁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경쟁 을 조장하여 일이등을 구별하는 데 주목적을 두는 것은 마치 승자와 패자 를 가려내려는 전투적인 발상과 흡사하다. 이러한 사고와 논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일등만이 승자로 남을 뿐이며 절대다 수를 차지하는 패자의 집단은 사회의 관심대상에서 제외되고 무자비하게 소외된다.


왜 일등에만 관심인가

독일언론에도 한국인의 일등주의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95년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은 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노벨상에 집 착하는 한국언론의 보도를 인용 기사화했다. 이 언론은 사설을 통해 한국 인이 아직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한 데 대해 노골적으로 자존심 손상을 드 러냈다는 것이다. 아직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이 서구 중심적인 가치평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는 데 뿐만 아니라 한국어 보급이 불충분한 데에도 있다고 보아 앞으로의 노벨상 수상 전략으로 우수한 외 국인을 선정하여 계획적으로 이들을 번역가로 육성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 왔다고 한다. 이 기사를 소개한 독일 기자는 한글을 창시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소개하면서도 한국인의 노벨상 집착증에 대해서는 시종 냉소적으 로 일관하였다. 이 독일 기사를 대하는 한국인으로서 낯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가간에 문화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관용 하는 태도는 오늘날과 같이 지구촌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중요하게 요구 되는 사항이다. 그러면서도 이 사례에서 보듯이 한 국가의 문화전통에서 표출되는 특수한 국민의식이나 가치관을 다른 국민이 부정적으로 평가하 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한국인의 노벨상 선호사상은 다른 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국내의 한 대 학에서는 앞으로 이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기를 기대하여 그의 동상이 설 자리를 잡아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노벨상 콤플렉스 는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한 한국 예술가와의 인터뷰가 약 8년 전 독일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당신이 노 벨상을 타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 는 2000년에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겠노라고 장담한 것이다. 독일 기자 는 슬그머니 질문방향을 돌리고 말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의 상식으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노벨 상을 목표로 하여 마치 마라톤훈련과 같은 방식으로 창의력을 개발하려는 발상이다. 이는 바로 주입식 교육의 틀에 박힌 사유에서 유래한다. 창의 성이 요구되는 지적 활동을 권위적인 폐쇄된 테두리 안에서 유도하려는 무모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인 노벨상 수상자의 교훈

이와 관련하여 수명의 독일인 노벨상 수상자의 성장과정을 보면, 창의력 이 결코 체력단련을 하듯이 계획되고 예측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약 8년 전 물리분야 수상자인 빈닉의 경우 그의 박사학위논문이 전 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아주 평범한 논문이었으며, 2년 전 의학분야 수 상자 윗슬라인-홀하르트는 고교 때 그의 주력과목인 생물에서도 80점밖에 받지 못했고, 또 그의 고교 졸업시험점수로는 요즘같이 성적순위로 대합 입학이 좌우하는 경우라면 생물학과에 입학조차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역시 2년 전 화학분야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첸은 고교졸업성적 미달로 대학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무직인 아버지와 식당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에 의존할 수 없어 직업전문학교와 아르바이트가 그의 사회 첫 출 발이었다고 한다. 또한 뒤에 그는 대학에서 두개 학과를 이수했으나 화학 분야에 노벨상을 수상했으면서도 정작 화학과는 다녀본 적이 없으며 35세 에야 화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예는 하나같이 도식 적인 사고의 논리방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 세 노벨상 수상자는 프랑 크푸르트 지역출신이기 때문에 지방신문을 통해 그들의 과거가 알려진 경 우에 불과하지만 이 예를 통해서도 노벨상 수상이 창의력개발과 틀에 박 힌 교육이나 사고력 훈련과 직선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상장이 학문의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학문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가시 적이며 행세를 위한 상장에만 연연하는 원색적인 가치관에서 탈피해야겠 다. 더욱 유념해야할 사실은 우리가 지향하는 정의가 구현된 성숙한 사회 는 상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 해서라도 좀더 고상한 가치를 추구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6월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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