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대탈주. 목숨 건 구조자들

연일 탈북자들이 흘러들고 있는 연변은 지금 ‘인간 사냥터’다.

인신매매범, 중국 공안(경찰), 북한 특무(사회안전부 요원)들이 곳곳에서 숨어 탈북자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탈북자들은 필사적으로 그 덫을 피 해 몸을 숨기지만 끝까지 피하는 것은 요행에 가깝다.

요행을 가능케 하는 곳엔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건 소수지만 뜨거운 동족 의 헌신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연변의 쉰들러’라고 부르려 한다. 이 들은 인신매매의 수렁에 빠진 북한 처녀들을 구해 피난처를 마련해 준다. 국경을 넘어온 북한 주민들에게 먹을 것과 옷가지, 그리고 의약품을 쥐어 주기도 한다. 또 ‘불법’으로 중국에서 취업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벗 이 돼준다.

이들의 헌신은 그러나 중국의 ‘국경관리법’ 등 각종 법률에 위배된다. 언제든 적발되기만 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이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이들 탈북자들을 돕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는 같은 조선민족”이기 때문이란다.

글을 쓴 이상민씨는 최근 연변에서 이들 ‘연변의 쉰들러’와 가까이 지 내면서 쫓기는 탈북자의 피난에 함께 조력했던 인물이다. 기사에서는 ‘ 연변의 쉰들러’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사진/조선-중국 국경지대에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도우려는 정성들이 끊이지 않는다. 두만강 끝 도문해관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 양식.)

그였다! 분명 그이였다. 흐르는 눈물에 흐릿하게 비친 그 모습은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는 북에 두고온 남편이었다.

지난 4월24일 중국 동북 3성의 한 농촌 마을. 밭일을 하던 조순분(24·여 ·탈북자)씨는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 선 남자를 향해 마구 달려갔다.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판’ 북녘의 아내 와, 지옥문앞까지 끌고갔던 파라티푸스 열병을 이겨내고 아내를 찾아 국 경을 넘은 북녘의 남편.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눈앞의 위험보다 동포애가 먼저

“자 빨리 떠납시다.”

재회의 기쁨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서 있던 조선족 최영석(42)씨는 떨 어질 줄 모르는 두사람의 어깨를 떠민다. 아닌 게 아니라 괭이·낫 등을 든 한족 마을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벌써 상당히 가까이 접근했다. 같이 밭일을 하던 한족 여인들이 마을 장정에게 “낯선 사람들이 ‘팔려 온 물건’을 ‘도둑질’해간다”고 알렸음이 분명하다. 북녘 부부와 조선 족 최씨는 급히 대기시켜놓은 택시에 올라타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택시 뒷유리 너머 멀어져가는 마을사람들을 보면서야 조선족 최씨는 겨우 가슴 을 쓸었다.

‘도대체 이 숨막히는 탈출극이 언제나 끝날까.’

최씨의 입에서 안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 이 부부 를 포함해 그에 의해 구출된 조선처녀들이 벌써 몇명인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 탈북 부부만 해도 그렇다. 북한을 탈출한 남편 박성식(30)씨 가 조선족 최씨를 찾아나선 것은 지난 3월 중순. 오랜 투병생활 탓인지 핼쑥한 박씨가 털어놓는 사연은 정말 기가 막혔다.

“96년 11월부터 지난 1월 말까지 꼬박 60일 동안 파라티푸스를 앓았습니 다. 40도가 넘는 높은 열이 나는 이 병은 특히 몸이 없는(영양기 없이 마 른)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죠. 병석에 누워 있는 나에게 아내는 돈 5만원을 줬습니다. 뭔가 이 돈으로 먹을 것을 사먹고 살아보라는 거였죠. 그때는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뒤 아내가 팔려갔다는 것을 처형 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팔려간 아내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뒤 조선족 최씨는 이 ‘팔려간 아내’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연변 일 대 인신매매조직이라면 이미 어느 만큼은 감을 잡고 있는 최씨였다. 그러 기를 한달여, 마침내 그 부인이 이곳 외진 마을로 팔려왔다는 것을 알고 오늘 이렇게 ‘필사의 탈출극’을 벌인 것이다. 택시 안의 아내는 영영 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남편 품 속에서 “며칠 동안만 색시노릇 하다가 돈을 가지고 조선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 했다.


제2의 정신대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옆자리에서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져버린 조선족 최씨는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평범한 농민이었다. 농꾼 최씨가 팔려가는 북한 처녀들을 구하는 ‘ 연변의 쉰들러’로 변한 것은 지난 96년 말. 한 탈북자로부터 “팔려간 아내를 찾아달라”는 눈물어린 호소를 들으면서부터다. 평소 북한 처녀가 팔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피가 끓던 최씨였다.

‘꽃다운 조선 처녀들이 1만위안(약 1백만원)에 팔려가다니. 그것도 떼놈 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이건 ‘제2의 정신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

최씨는 곧 그 탈북자의 아내를 찾는 작업을 벌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 아내를 포함해 북한 여인 15명을 판 사람을 찾아냈다. 그러나 ‘팔려 간 아내’는 이미 여러 단계의 인신매매조직을 거치면서 ‘비싼 상품’이 돼버렸다. 결국 이 북한 처자들을 되사서 풀어줄 재력이 없는 그로서는 ‘탈출’만이 선택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최씨가 이런 탈출과정에서, 혹은 인신매매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당한 것만 도 한두번이 아니다. 또 중국 공안과 연변에 나와 있는 북한 특무(사회안 전부 요원) 등 주변엔 주의해야 할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어디에도 토로 할 수 없는 이런 울분과 위험을 최씨는 술기운을 빌린 눈물 한자락과 병 든 짐승의 절규로 털어버리곤 해왔다. 그러나 사연을 말할 수 없었다. ‘ 비극’이라는 말 밖에는….

“비극이다. 비극이야. 조선민족의 비극이야.”

하지만 최씨는 왜 우리 ‘조선민족’에게 이런 비극이 생겼는지 깊이 고 민할 시간조차 없다. 내일이면 또 팔려간 북한 처자 이야기가 들릴 것이 고, 또 어떻게 그를 찾아 탈출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최씨에게도 한 가지 위안은 있다. 최근 절박한 북한 식량 사정이 널리 알 려지면서 최씨와 같은 ‘연변의 쉰들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12일 연변.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중 한곳에서 조선족 한정국(38 )씨가 바삐 집을 나섰다. 의사 김정철씨를 부르기 위해서다. 어젯밤 인신 매매 직전에 구한 두명의 북한 여인 중 한명이 높은 열과 함께 사경을 헤 매기 시작한 것이다. 한씨는 경험으로 이들 탈북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병원을 찾는 것은 그만큼 중국 공안이나 북한 특무 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씨는 이럴 때면 늘 의사 김씨를 찾아갔다. 김씨는 한씨처럼 ‘일선’에서 움직이지는 않지만 병든 탈북자 의 소식만 들리면 소리소문없이 왕진치료를 해주고 있다.

한씨가 구해낸 두 여인은 언뜻 보기에도 애처러울 정도였다. 함경북도에 서 탈북한 최인숙(30)씨는 파라티푸스로 사경에 빠져있었고, 평양 남쪽 도시에서 왔다는 이정아(35)씨는 광대뼈와 늑골이 불거져 나올 정도로 말 라 있었다.

이들은 아사 직전의 상황에서도 겁에 질린 나머지 처음엔 한씨마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만했다. 이들은 이미 5명인가 6명인가의 인 신매매를 거친 뒤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씨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한씨의 도움이 아무 대가없는 ‘동포애’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하고 나 서부터였다.


탈북자 위해 동네 돌며 음식과 옷가지 수집

최인숙씨는 ‘한달 30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몇년 전 꿔준 빚을 받기 위해 집을 나서 먼길을 떠났다. 이미 농민시장 등에선 쌀 1kg값이 1백원을 호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최씨의 먼 여행길 은 허사였다. 돈을 꾸어간 집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씨 는 오히려 생후 7개월짜기 아기를 잃었다. 최씨 자신이 여행 중 아무 것 도 먹지 못한 탓에 최씨가 젖이 아예 말라붙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일곱달이었는데…. 50전만 있었어도, 물이라도 사먹고 젖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최씨는 그래서 자신이라도 살기 위해 중국 땅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기다 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둘러싼 ‘인신매매’뿐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다섯차례에 걸친 거래였고 이 과정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한씨의 말에 겨우 가녀린 미소를 지었다.

최씨와 이씨 앞에서 자신있게 말했지만 한씨 자신도 사실 그리 여유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의 가정은 이미 남한 사람의 초청사기로 거의 거덜난 상태였다. 하지만 한씨는 ‘나는 그래도 먹고 살지 않는가’라고 자신을 다독거린다. 사실 연변 일대에서 탈북자를 돕는 사람들치고 ‘잘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이들 중에는 가족이 먹고사는 일마저 빠듯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만강 강폭이 시냇물처럼 좁아진 한 조중 변강마을의 희선이네도 꼭 그 렇다.

지난 5월8일 밤. 늦은 시간인데도 희선이 엄마는 물품을 챙기기 바빴다. 이날 저녁 어스름을 틈타 두만강을 건너온 17세 된 북한 소년에게 주기 위한 것들이다. 냄새나는 남루한 옷을 입은 이 소년은 폐렴에 걸린 조카 를 위해 소염제와 쌀을 구하러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희선이 엄마는 소 년을 집에 들인 뒤 우선 따뜻한 밥 한그릇을 먹였다. 그리고 저녁 11시께 돌아가는 소년을 위해 짐을 챙기고 있는 것이었다. 희선이 엄마는 보퉁이 에 쌀을 담고, 준비해둔 밥과 돼지고기 가지볶음 따위를 가방에 차곡차곡 담았다. 옆에선 희선이 아빠가 잊지 말라는 듯 술과 담배를 내밀었다. 국 경 경비병들에게 줄 뇌물이다. 희선이 부모는 또 빗방울이 흩뿌리는 밤거 리를 나서는 소년에게 술 한병 찔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물을 건넌 뒤 추위를 녹이라는 것이다.

희선이네가 국경을 넘어온 북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한끼와 먹을 것을 푸짐히 준다는 사실은 두만강 너머 북한 땅에도 많이 알려진 듯했다. 도 강한 북한 사람들이 ‘용하게 알고’ 희선이네를 찾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요즘 희선이네는 바쁘다. 희선이 아빠는 낮 동안 온 동네 식당을 돌며 남은 음식을 거둬 들이고 마을사람들로부터 헌 옷가지를 모은다. 최 근만 해도 하루 1명 이상씩은 북한에서 넘어와 밥과 옷을 얻어가기 때문 이다. “국경을 넘은 북한 동포에게 속옷까지 다 벗어줘버린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다. 희선이네는 사실 변변히 입을 옷가지 가 없을 정도로 거덜난 상태다.

하지만 희선이 엄마도 어떤 때는 속이 상한다. 특히 최근 희선이 아빠가 일자리를 잃어 더욱 그렇다.

“요즘은 너무 많이들 와서 미운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막상 들어 오면 내쫓을 수 없어요. 우리마저 도와 주지 않으면 그들에겐 굶어죽는 일만 남는 거니까요.”

이렇게 “속옷까지 벗어주는” 정도는 아니라도 국경마을 사람들은 대개 인심이 좋다. 어느 집에 들어간들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타박하며 내쫓지 는 않는다. 크게 도와주지는 않아도 밥한끼 정도만은 꼭 먹고가게 하는 게 국경마을 사람들의 ‘동포사랑’이다. 조중국경의 또다른 마을에 사는 김00씨도 그 한 실례다.


한달 봉급 절반 선뜻 건네기도

김씨는 홀아비로 가끔 술주정도 하지만 얼마 전 통나무차를 운전해 받은 월급 4백위안(4만원) 중 절반인 2백위안을 ‘탈북 위장취업자’에게 선뜻 건넸다. 김씨는 이 돈을 돌려 받지 못할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외면하 기엔 그 북한 청년이 너무 불쌍했다. 이 북한 청년은 어떻게든 식량을 구 해볼 심산으로 지난 3월 국경을 넘었다. 북에는 이제 6개월된 아이와 부 인이 남았다. 그런데 한달 동안 일했던 제재소에서는 그가 ‘탈북자’란 약점을 잡고 월급을 주지 않았다. 빈손으로 북한쪽을 보며 아기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며 울먹이는 그에게 ‘주정뱅이’ 김씨는 선뜻 월급의 반을 건넨 것이다.

이렇게 연변 등지의 크고 작은 ‘쉰들러’들은 탈북자와 식량난민들의 큰 희망이 되고 있다. 특히 황장엽씨 망명 이후, 중국 당국이 북한 달래기 전략으로 ‘탈북자 색출’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만이 탈북자와 식량난민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만 조선족들이 ‘쉰들러’가 되기까지엔 큰 결단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이 일은 중국 국적인 이들로서는 ‘법’을 어기는 행 위다. 지난 3월14일 개정된 중국 형법 ‘국경관리방해죄’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주면, 비록 개인적인 차원이라 해도,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희선이네는 매일 밤 ‘5년 징역’의 위험 속에서 북한 동포에게 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 팔려온 북한 처녀를 빼내는 최영석씨와 한정국씨는 항상 인신매매범들 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또 중국 공안이나 북한 특무들 역시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정치논리로 동포를 버려두지 말라

그러나 이들에게 이런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이유는 먼데 있지 않다. 우 선 ‘우리는 조선민족’이라는 민족정신이 있다. 즉 현 상황에서 굶어죽 는 북한 동포를 도와줄 사람은 자기들 말고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을 도울 실질적 힘을 가지고 있는 남한 당국 의 무관심이다. 남한 당국이 ‘4자회담’이라는 정치논리 속에 북한의 굶 주리는 동포들을 외면하는 상황이 이들 ‘연변의 쉰들러’들을 위험 속에 뛰어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연변의 쉰들러’들은 결코 우리가 그저 관람만 할 영화가 아니다. 그들 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현실’이고,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연변=이상민/ 북한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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